[문화뉴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작품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3월 5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50년 미래를 배경으로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우연히 만나 올리버의 옛주인(이자 친구)인 제임스를 만나러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구형이지만, 내구성이 좋은 헬퍼봇5 올리버 역에 김재범, 정문성, 정욱진이, 조금 더 진화한 헬퍼봇6 클레어 역에 이지숙, 전미도, 최수진이, 옛주인 제임스 역에 성종완, 고훈정이 출연한다. 이지숙 배우는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가 예정됐다.

   
 

우선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건 김동연 연출의 뛰어난 연출력이다. 잘 채운듯하지만, 배경으로 만들어진 곳을 제외하고 실제로 연기가 주로 이뤄지는 무대 중앙에는 별다른 장치 없이 의자와 화분 정도만 놓여 있다. 그러나 무대는 세련된 연출을 통해 클레어의 방, 올리버의 방, 자동차, 모텔, 숲 등 다양한 공간으로 끊임없이 변신한다.

로봇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 역시 최고의 연기로 관객을 홀린다. 헬퍼봇이란 게 존재한다면 실제로 저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게 올리버와 클레어 역의 배우들은 걸음걸이는 물론, 팔과 다리가 고장 나는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제임스 역의 두 배우는 등장하는 비중은 적지만, 적재적소에 나타나며 사실상의 멀티 역을 훌륭히 소화한다. 시간의 흐름이나 캐릭터의 성격을 적은 분량 안에서 표현하는 일은 노련미와 센스가 없다면 할 수 없지만 훌륭한 연기로 메꾼다. 2016년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신인상을 탄 고훈정 배우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배우로 복귀한 성종완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고훈정 배우는 '팬텀싱어'에서도 보였듯 원체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로 유명하지만, 성종완 배우 역시 탁월한 '슈트빨'을 자랑한다.

   
 

'윌&휴 콤비'로 불리는 윌 애런슨 작곡가와 박천휴 작가 역시 제 몫을 다한다. 재즈를 좋아한다는 둘의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경쾌한 스윙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넘버 '우린 왜 사랑했을까'부터 마지막까지 능수능란하게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넘버와 함께 '로봇'이 사랑한다는 작은 아이디어를 통해 메시지에 더 깊은 울림을 담은 박천휴 작가의 대본은 극의 주된 힘을 만든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 이별을 기약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쓰일 수 있는 흔한 소재다. 하지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선 이 주인공들이 '로봇'이란 것만으로 그 힘이 달라진다. 기억을 잊지 못하는, 그래서 더 아픈 사랑을 해야 하는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로봇이기에 가능한 행복한 시간, 로봇이기에 겪어야 하는 내구성의 유한함은 인간의 그것과 대비해 더 극적인 연출이 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꼭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신선한 소재와 재치 있는 대사로 몰입도를 높이다 극 후반부에 관객의 감정을 터트린다. 마치 신파 코드를 더하면서도 우수한 완성도로 'K-좀비' 장르를 만든 영화 '부산행'처럼 'K-SF' 장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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