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그라운드는 교실. 담당구역 청소도 못하나요?

▲ 새벽 6시부터 출근하여 그라운드 정비에 임하는 이들이 있어 선수권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자.

1) 수업이 끝났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인원들은 전원 도서관으로 이동한다. 그 사이에 잠깐 시간이 있다. 이제 남은 학생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담당 구역 청소를 한다. 청소가 끝난 이후에는 각자 학원에 가거나, 야간 자율학습을 위하여 도서관에 간다.

2) 수업이 끝났다. 이제 야구 연습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선다. 그런데, 운동장 상태가 고르지 않다. 선수들 모두 누구랄 것도 없이 연장을 들고 야구장을 평탄하게 만든다. 그리고 연습에 임한다.

사실 학생 선수들에게 교실만 교실은 아니다. 그라운드도 교실이다. 그라운드를 정리하고 연습에 임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일종의 '담당구역 청소'와 같은 것이다. 담당구역을 청소한다고 하는 데 반대할 부모님이 전국에 몇이나 있을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공간을 청소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조차 싫다면, 학부모님들의 부담이 조금 가중된다는 가정 하에 청소 대행 업체를 부르면 된다.

그라운드 정리하는 것에 왜 선수들을 쓰냐고요?
아들이 담당구역 청소 하는 것이 그렇게 싫으세요?

그런데, 최근 SNS에 고시엔 야구장과 목동 야구장을 비교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업로드되어 참 씁쓸한 느낌을 갖게 했다. 청룡기 선수권이 한창인 목동구장에서 우천으로 인하여 그라운드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 펼쳐졌는데, 이를 선수들이 도왔던 장면을 누군가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고시엔에서는 그라운드를 평탄화 시키는 트렉터만 3대가 운영되고,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인원만 10명 가까이 되는데, 목동에서는 선수들에게 그 작업을 시킨다며 다소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 폭우 후 목동구장 정비에는 장시간이 소요된다. 감독 지도 하에 선수들이 도와주면 되지만, 볼멘 소리를 내는 일부 학부모들 때문에 그것도 못한다는 후문이다. 사진ⓒ김현희 기자

얼핏 보면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목동구장을 관리하는 인원은 별도로 편성되어 있고, 더구나 목동구장은 본인들이 자주 쓰는 학교 그라운드도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관리팀에서 알아서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동안 더그아웃에서 조용히 대기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따져봐야 할 사실이 있다. 고시엔과 목동 야구장을 비교하는 사진을 최초로 업로드한 주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양 국 선수권대회를 치르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이루어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선수들이 도왔다는 부분, 그리고 이는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일종의 담당구역 청소와 같다는 사실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었다. 운동장 정비 시간이 단축되면서 경기가 빨리 속개될 수 있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겨우 4~5명의 관리 인원들로 넓은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것에도 장시간이 필요한 만큼, 선수들이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관리팀은 해당 소식을 듣고 "스스로 그라운드 정비를 돕겠다 해도 이제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고시엔에서 보여 준 그라운드 정비 모습일 것이다. 대한야구소프볼 협회와 서울시에서 그라운드 정비에 조금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한다면, 우리 역시 짧은 시간 내에 그라운드를 정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시엔의 모습이 정말 부럽긴 하지만, 일본 현장 상황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부산고를 거쳐 일본 이이즈카 학원으로 유학을 경험한 바 있던 김동민(前 서울 해치)은 당시 고시엔을 경험한 바 있다. 김동민의 증언에 따르면,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것을 큰 자랑으로 안다. 그래서 대회가 열리면, 서로 앞 다투어 봉사에 나선다. 그만큼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과 대화할 때 '나 고시엔에 출전해 본 일이 있다'라고 이야기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리고 정말로 부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고시엔은 바로 그러한 상징성이 있다."라며, 100년이 넘는 역사에서부터 비롯된 전통이 지금의 권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시엔을 홈으로 쓰고 있는 한신 타이거즈 역시 선수권대회가 본인들의 홈구장에서 열리는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기꺼이 자신들의 집을 비워 주고, 심지어 각종 장비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다.

국내 선수권대회(청룡기) 역시 무려 7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만약에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대회가 계속 열렸다면 어땠을까? 동대문야구장 인근에 거주하는 동대문구민이나 종로구민이 과연 큰 자부심을 갖고 기꺼이 선수권대회를 위한 봉사에 나섰을까? 아마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직 프로구단 중에서도 선수권대회를 위하여 장비를 선뜻 대여해 주는 곳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많은 제한 조건 속에서 경기 속개를 위하여 선수들이 그라운드 정비하는 것을 너무 고깝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장마라는 악천후 속에서 선수들이 자신들이 담당 구역 청소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렇다 할 장비나 지원이 없는 가운데서 시행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믿고 싶다.

※ 참고자료 : 일본 고시엔 대회는?

흔히 '고시엔 대회'로 불리는 일본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의 정식 명칭은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일본어 표기 : 全国高等学校野球選手権大会)'다. 아사히신문사와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연맹의 주최로 매년 8월, 약 2주 간의 일정으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 야구장에서 열린다. 1915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무려 10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1921년에 부산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교)가 최초로 고시엔에 참가했고, 2년 뒤인 1923년에는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교) 역시 고시엔에 진출하여 8강까지 오른 바 있다.

102년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해당 대회 안팎으로 뿜어져 나오는 자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일본에서는 "프로에 입단했다!"라는 이야기보다 "고시엔에 진출해 봤다!"라는 이야기가 더욱 먹혀 들어간다는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닌 셈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지역 주민들의 협조. 상당히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학생 선수들을 성심껏 돕는다. 국내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해도 지역 주민들보다는 학부모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서울 목동,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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