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도대체 내 편이니, 아니면 누구 편이니?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

[문화뉴스] 길가에 뛰놀던 어린아이 시절은 우리 누구에게나 있었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대중화돼도 고작 어린이집에 다닐 것 같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쥐고 뛰어놀지 않는다. 여전히 놀이터에서는 흙장난을 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고, 로봇 장난감 하나에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어린이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 누구 편이야! 왜 쟤 편들어?"

 아이들의 유치함으로 치부할 수 있으면 필자는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이 습관은 어른이 돼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연애할 때 듣고 해 보았을 말, "지금 걔 편 드는거야?" 라든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대기업 기득권만 편드는 금수저들 집단'이라든지,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야구인지 축구인지 다툰다든지, 심지어 탕수육 하나 먹는 방식에도 부먹과 찍먹으로 갈려 소스를 전부 부어버린 사람을 비난한다든지. 우리 삶 주변은 항상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것으로 나뉘어 있다.

   
여러분은 무슨파? 

하지만, 필자는 편 가르기를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하자면 어떤 집단에 소속되 있는 게 개인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에 내 편인 사람들과 지내고 싶고, 내 편이 아닌 사람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편 가르기가 나쁜 점은 내 편이 아니면 나의 '적'이라고 분류되는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측면 때문에 문제가 된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사람이 진보 측을 '앞날도 생각 안 하고 아무 논리 없이 표만 위해 선심성 공약을 팔아치우는 포퓰리스트'들이라고 비난하거나, 반대로 진보 측 사람이 '부패하고 비리를 일상처럼 저지르며 국민의 민심 하나 읽지 못하는 기득권층'으로 싸잡아 비난할 때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편을 갈라놓고 싸우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예전에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이 그렇게 발달한 편이 아니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편 가르기 문화가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들, 우리는 그렇게 피로감을 느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내가 겪고 있는 일들 외에는 크게 다른 일을 겪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현대사회는 기술적으로도 고도화되어, 서울과 부산을 당일로 오가는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으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의 활성화, 디시인사이드나 일베, 워마드같은 커뮤니티의 범람에 우리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정보들이 가득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이런 기술의 발달이 현대사회의 집단 간 대립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고, 우리의 삶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피로감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장시간 하다 보면 당연히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쉬고 싶다, 자고 싶다'등의 체력을 보충하는 행위를 생각하지 정신적으로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크게 없다. 진정으로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짜증의 상태가 지속되면서 그를 달리 해소할 방도가 보이지 않을 때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범람하는 정보들 사이에서 댓글로 키보드 배틀을 시작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생각없는'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욕하는, 일상 곳곳에 퍼져 있는 편 가르기는 단순한 선 이외에 이제 우리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발전한 것이다.

   
 

편 가르기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발전된 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경쟁 위주의 교육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예전부터 객관식 시험문제를 받아들고, 마치 인생이 정답이 아니면 오답밖에 없는 식의 교육 평가를 받아왔다. 2000년대 들어 이런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논술 시험 등 다양한 시험 방식을 도입했지만 효과는 '글쎄올시다'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 또한 그러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의 생각과 좀 다른 것 같으면 점수를 나쁘게 매기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 성적이 잘 공개되는 일도 없고, 공개된다 한들 그렇게 투명하지도 않다. 비단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이든, 자영업을 하든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취직한 사람이라면 자기의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잘 나가는 라인의 편에 붙는 게 좀 더 중요할 것이며, 자영업자라면 같은 상권 내에서 튀는 인상을 주는 순간부터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이 현실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를 타개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필자는 한국에 들어온 이후부터 급변한 사회에 여전히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답을 내리기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란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 망과 같기에 어느 한쪽의 말을 들어서는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인데다, 오랜 세월을 지나 관습처럼 굳어 버린 악습들을 한번에 철폐하기에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전히 개인의 힘을 믿고 꾸준히 이런 이슈와 생각들을 공론화하기 위해 펜을 잡았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네, 라는 말도 있지만, 걱정을 하지 않으면 해결책 또한 안 나오지 않겠는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니 편'과 '내 편' 가리지 않고 화합하는 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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