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문송한 인문대생이 보는 인문학의 가치와 미래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

[문화뉴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줄인 말인데, 최근 기업들이 이공계 전공자를 취업에서 우대하는 경향이 뚜렷해지자 많은 문과대생들이 SNS 등지에 이와 같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과생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과를 자연과학과 응용과학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문과 또한 인문학(이른바 문사철)과 사회과학(경영학, 정치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경영학이나 정치학 같은 실용적인 면을 도입한 사회과학도들은 그나마 취업 일선에서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볼 수 있어서 문과에서 '문송'을 외치는 이들은 보통 인문학도들이다.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다시 말해 돈벌이가 안 되는 학문이라는 말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가 안 된다는 말은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일선 기업에서는 끊임없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채용할 것이다, 라거나 인문학이 없다면 과학의 발전은 없다는 학계의 의견이거나, 최근 들어 인문학 콘서트나 인문학 강의가 유행하는 것처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급증하는 면을 보인다. 약간 아이러니한 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면 정작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왜 문송해야 할까?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서두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은 '문사철'로 대변될 수 있다. 문학, 사학, 철학을 줄인말로 인문학계에서 주류로 분류되는 분과이기 때문에 편의상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분류한 것이지, 좀더 세분화해서 분류하면 언어학, 예술학(문학 포함), 사학, 철학이나 종교학 같은 사상학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흔히 심리학을 인문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초기라면 모르겠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사회과학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은 이런 여러 분과를 통해 '인간다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일례를 들어 설명하자면, 최근 층간소음의 보복방식에 대한 이슈가 있는데, 이공계에서 층간소음이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책을 분석하고, 사회과학에서 층간소음이 사람에게 주는 반응을 연구한다면, 인문학은 층간소음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성으로 스피커를 설치하는 것은 옳은가? 를 사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이 다른 학문과 가장 차별되는 점은,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대학교 4년 동안 내내 남의 나라 말만 배운 인문학도였는데, 한 외국인 교수가 기말고사에 낸 시험문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문제는 '체코 문학이 당신에게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였다(물론, 정답을 체코어로 서술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웠지 인문학도로서는 문제 자체가 어렵다고 볼 수는 없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른데 이 질문에 정해진 답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인문학의 핵심은 '사유'하는 것이지, '정답'을 찾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따라서 인문학에서는 웬만큼 논리가 엉망진창이 아니라면, 이런 소수 의견도 있다고 언급하지 이 의견은 틀렸다고 정의할 수 없고 학문이 이런 식으로 연구되다 보니 인문학은 새로운 가치 창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 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재를 채용하겠다는데, 바꿔 말하면 지금 기업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직원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인문학적 소양이 모자란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필자는 최근 나타나는 여러 사건 사고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스바겐 조작 사건, 코웨이 니켈 논란을 보면, 해당 기업은 분명 문제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을 생각해 보면 들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를 은폐했고, 결국 적발되어 문제가 드러나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 인간 전체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문학적 접근으로 보면, 해당 의사결정은 내려지지 않아야 했으며, 해당 기업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길 원한다면, 꽤나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실상 기업이 원하는 인문학적 소양과 실제 인문학이 갖는 괴리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은 신기술 개발이나 경영전략 같은 방법으로 일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실상 기업에서 인문학도의 채용을 꺼리고 대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길 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지 윤리가 우선되지는 않기 때문에, 기업 활동에 대해 진지한 고려를 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고, 인문학 요약본 한 권을 읽고 인문학적 표현을 그럴듯하게 도입해 회사를 성장시킬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주입식 교육과 입시 위주의 경쟁 구도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인문학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보면 돼지 목의 진주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의 기본은 사유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수능 시험까지 모든 시험을 객관식으로 평가받고, 대학교 입시나 되어야 논술이 좀 들어가는 편이고, 그나마도 논술의 모범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교육 구조가 '생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데, 비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기 전공을 공부하기에도 바쁜데 자기 삶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 본인의 행동이 올바른가에 대해 생각을 할 틈이나 있겠는가?

거기에 어쩐지 인문학이라고 하면 철학처럼 딱딱하거나, 역사처럼 재미없거나, 문학처럼 뜬구름 잡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 왠지 글을 읽으면서 화자의 마음을 고려하거나 A가 B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걸 생각해야 할 것만 같은 답답함이 드는 것도 인문학이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리기 어려운 점일 것이다. 또한,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 권으로 읽는 인문학 입문이나, 강연 같은 것을 유행시키려 해도 제대로 공부한 인문학도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인문학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성역화도 문제가 된다(물론, 이런 요약본으로 인문학을 전부 알았네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현대의 문학계가 갖는 폐쇄성 또한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미 인문학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까 말했듯이 인문학은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여름을 즐기고 싶은가? 그 전에 내가 이 행동을 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도 좋게 보일 만한가를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가? 그럼 과거의 나는 어땠는지, 그리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지, 달라졌으면 뭐가 다른지 생각해보자.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당신이 퇴근하면서 이어폰을 꽂고 야구 중계를 볼 때, 피곤함에 침대에 몸을 던져 이불 안에 웅크리고 휴대폰으로 웹툰을 볼 때, 아침 출근 버스 안에서 기절하듯이 잠들 때, 시간은 당신에게 언제든지 있다. 하고 싶을 때 하기만 하면, 인문학은 당신 곁에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인문학은, 가치 창출에는 별다른 효용이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학문이지만,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 줄 보조적인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반드시 인문학을 전공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본래 인문학은 통합적 사고가 중시되고, 모든 학문의 원류와도 같은 학문이다. 학문의 폐쇄성과 범용성을 감안한다면, 인문학을 진지하게 연구할 사람들은 소수면 충분하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는 편이 향후 인문학 발전의 토대 마련과 가치재고를 위해서도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진정 인문학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이 질문에 대해 본인의 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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