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무거움,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누구나 한번쯤은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죽은 뒤에는 무엇이 될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른바 '개똥철학'이란 것에 심취할 때가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소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이기에 자기 세상을 보는 관점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법. 지금 이 글을 보는 모두가 한번쯤 자신의 관점을 되짚어보면 좋겠다. 그것이 틀리든 맞든에 대해 싸우지는 말고. 다른 거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쓰는 표현 중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통적으로 살아가면서 원하는 가치인 이 '행복',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서의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지칭하고 있다. 즉, '충분한 만족'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족이란 무엇일까? 그는 모자람이 없고 충분한 상태를 의미한다.

의미가 중복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강조해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고 보면 결론적으로 행복이란 삶에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일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주변에서 행복하다는 말보다는 살기 힘들다, 불행하다, 미래가 어둡다는 표현을 더 많이 듣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지금 필자는 행복을 온전히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시간 내 정도라고 얘기할 수 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씻고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되니 딱 그 순간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업무 시간에는 날아드는 업무 메일과 산적해 있는 기존 업무를 처리하느라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고 그저 다음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씻고 나온 후 침대에 누워 책 한 권을 읽을라치면 어느덧 밤이 깊어 제대로 몇 줄 읽을 시간도 나지 않는다.

   
 

물론 필자도 예전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비단 필자뿐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가장 최근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때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고 난 후의 1주일 정도였다. 그 영화는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이 수없는 되돌림을 통해 하루 24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영화로, 필자도 관람 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행복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갔던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행복, 출근길에 풀잎에 맺힌 이슬이 손등에 떨어지며 느껴지는 기분 좋은 촉촉한 감촉, 점심 식사 후 회사 주변을 산책하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 그야말로 잠이 들기 전까지의 매 시 매 분 숨어 있는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고, 실제로 익숙해져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행복감이 높아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니체가 말했듯이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필자는 다시 주변 환경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고 곧 쉽게 싫증나버리게 되었다. 퇴근 후 먹던 잘 익은 포크립과 시원한 맥주가 주는 행복은 한계효용에 도달한 채 점점 작아지기만 했다. 그리고 곧, 불평으로 변질하였다.

포크립 말고 갓 튀긴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지만 왜 체코에선 한국식 치킨을 구할 수 없는지를 불평하게 됐다. 서울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했던 공간은 어느새 외로운 공간으로 바뀌어 사람을 만나기 힘듦에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까? 더 많은 돈을 월급으로 받게 되면 행복해질까? 외로움을 느낀다면 좋은 친구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 행복해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행복해질까?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뭘 해도, 그것이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필자는 지금 차가 없다. K3 정도의 차가 있으면 아주 행복해질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그 차를 갖게 되면 이제 A3 정도의 차를 타고 싶어질 것 같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6은 사용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질려 삼성페이가 된다는 신형 갤럭시를 사용해보고 싶다. 연봉을 2배로 올려준다면 다음엔 그 연봉의 4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실상 사람에게 '만족'이라는 단어가 통용될 지가 의문이다. 만약 만족하지 못한다면,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또 어느 때가 오면, 주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며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또다시 행복을 느낄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개인의 행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상호 보완적인 작용으로 봐야 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누구와 쓰느냐에 따라서 행복감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란 말이 된다.

그렇다면, 누구와 있을 때 사람은 높은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말할 나위도 없이 그것은 '좋은 사람'일 것이다.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와 같이 있을 때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또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그는 차후에 다시 잇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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