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올 여름 72초 드라마가 핫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질질 끄는 드라마는 이제 그만!'이란 슬로건을 내건 초압축 드라마라는 개념이었는데, 처음 이 말을 봤을 때 나는 몹시 당황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72초면 고작 1분이 조금 넘는 시간인데, 이 짧은 시간에 뭘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웬만한 드라마의 오프닝도 45초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그 짧은 시간 내에 상황 설정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72초 드라마를 봤을 때 그 생각이 기우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확히 72초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전달되어져 왔다. 물론 기존의 72분 정도씩 걸리는 드라마에 비하면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지만, 기존의 드라마를 '코스요리'에 비유한다면 72초 드라마는 '일품요리'에 가까운 느낌이었달까, 짧은 시간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테마'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해 그를 표현하고, 독자적 해석의 여지를 풍부하게 남겨놓는,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필자는 올해 4월 국내에 귀국하기 전까지 약 4년 남짓을 체코에서 생활하였는데, 한국을 떠나기 전인 2011년에는 지금처럼 소비속도가 크게 빠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간단하게 비교해주자면 그 당시 필자는 '최신폰'인 아이폰 4s를 갖고 출국했고 지금 아이폰 6을 갖고 귀국했다. 그리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은 아이폰 6s를 출시했다. 4년이지만, 1년마다 휴대폰의 기종이 바뀌었고 기종이 바뀔수록 휴대폰의 활용범위도 무궁무진하게 넓어진 것이다.

물론, LTE로 변환되면서 빨라진 통신속도는 덤으로 붙인 채로 말이다. 지금 갤럭시 S2를 쥐여주고 일주일을 사용하라고 하면 과연 현재 사람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소비속도가 급격한 속도로 빨라지는 것은 '한국'이기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한다.

비단 드라마뿐만 아니라, 우리는 전반적으로 문화 자체에 '빨리빨리'가 녹아 있는 사람이다.

고깃집에 자리를 잡고 음식이 20분 넘게 나오지 않으면 '뒷마당에서 돼지를 잡아오시나'라는 말을 하고, 업무의 기본은 오늘 저녁에 내린 지시를 내일 아침에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그나마 오늘 밤에 보자고 하지 않는 게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블리자드의 개발진들은 발매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 디아블로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LTE로 통신속도가 빨라지고, 휴대폰의 기능이 전보다 좋아지고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기본적으로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이런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예전보다 깊이가 떨어지고 자극적인 것만 찾는다고 비하해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문화의 시대가 찾아왔음을 인정하고 이를 즐겨야 할까? 어느 한쪽이 옳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72초 드라마든 72분 드라마든 기본적으로 드라마를 위한 시나리오, 배우라는 조건은 갖춰져 있다. 단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기법이 다를 뿐이다. 드라마가 짧다면 배우들의 미묘한 감정연기나 표정, 몸짓보다는 큰 동작, 직설적인 대사 등으로 시나리오를 표현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드립'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또한, 현재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방식인 웹소설이나 웹툰과도 유사하다. 요지는 '빠름'이든, '느림'이든 문화란 그 시대의 대중성을 반영해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지나치게 거부감을 갖거나, 지나치게 찬양하며 즐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문학이 죽어가는 이유? 간단하다, 그들은 자신을 순수문학이라고 자부하며, 장르문학의 시장성을 비판한다. 고고하고, 절제된 언어만이 문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예전에 '귀여니'가 최초로 문단에 등장했을 때에 비교하면, 지금 대중들이 즐기는 라이트 노벨, 웹소설 등이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문화는 대중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반영한다.

이런 자극성에 치우친 문학에 질리면 또 다른 장르가 대세가 되어 새로운 사조를 개척할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변화다. 그때도 오로지 정제된 순수문학만이 문학이라고 할 것인가? 문학을 예로 들었을 뿐이지만, 한국의 문화는 전반적으로 너무 경직되어 있었고, 그것이 급격히 대중화되어 지금 풀리고 있는 과정일 뿐이라고 본다. 고쳐져야 할 것은 쌍방 간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분법적인 사고다.

문화란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 예술은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 그런 것에 대한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허나 단지 '자극적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빠름의 문화만 찬양되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향락만을 위한 콘텐츠라면 그는 마약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린다.

문화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기 위한 수단이지 인간 이하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72초면 어떻고 72분이면 어떤가, 살아가면서 더 바쁜 사람도 있고, 덜 바쁜 사람도 있는 세상이니,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제각각일 것이고,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문화를 생산하는 방식도 제각각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옳고 그름을 함부로 재지 말자, '고상한' 재미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소소한' 재미도 있는 것이 삶 아니겠는가.

우리는 양쪽 모두를 소비하는 문화의 소비자이자, 잠정적으로 이제는 문화를 생산할 수도 있는 생산자와도 같다. 그런 김에 굳이 고어적 표현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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