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현실 속에서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조형근 kareljay@mhns.co.kr 

[문화뉴스] 직장에 다니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단어, 그것은 바로 '칼퇴근'(칼퇴근은 사실 정시퇴근의 은어다).

정규 근무시간이 끝나고 나면 '퇴근하겠습니다'라는 힘찬 한마디와 함께 짐을 챙겨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순간.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이 매일 아침 꿈꾸는, 그러면서도 이루기 힘든 꿈이라는 걸 알며 씁쓸해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인의 성향과 문화 특성상 하지만 이런 칼퇴근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이라는 것을 제창하여 그날만큼은 정시에 퇴근해 가정을 돌보자는 제도가 생겼을까. 그마저도 대기업에서나 있을 법한 제도지, 대부분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제도일 것이다. 또한, 기자나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 같은 특이한 부류에게는 애초에 정규 근무시간을 산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멀게 느껴지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고등학생 때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것은 차후 야근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 "세상에!" ⓒ MBC 방송화면

안타까운 일이다. 칼퇴근이라는 말이 생긴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정규 근무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근무시간이 끝나게 되면 퇴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학생일 때는 등록금을 내고 교육의 시간을 산다면 직장인은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자신의 시간을 파는 것이다. 당연히 규정된 시간 외에 추가로 일을 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추가로 받아야 하며, 시간 외에 열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필요는 없다. '헬조선'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심하게 말하면 참담하기 그지없는 실정이다.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해서 자기 일을 정시에 끝마친 사람은 부서 내 다른 동료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해지고, 일을 끝내든 끝내지 않든 '오래 일하는 사람'에게 열심히 한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정말 심한 경우지만, 상사보다 먼저 가는 경우 '버릇없다' 거나 '이기적이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얼마나 상식적이지 않은 현실인가.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게 된다면 그렇게까지 억울한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허나 술자리도 아닌 직장에서 이런 '눈치게임'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이 얼마나 가엾은 생활인가.

   
▲ 한국에는 없습니다. 이 의자는 네덜란드산 ⓒ 채널A 방송화면

'눈치게임'은 몇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깔려 있는 그릇된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기에 '튀지 말고 중간만 해라'라는 말이 첨가되면 눈치게임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 형성된다. 남들과 비슷하게 가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분명 회사는 다양한 부서로 구성되어 있고,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팀의 역량은 중요하지만, 팀 또한 결국 개인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은 존중받아야 한다.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일을 아주 잘하는 후임이 들어왔을 때 부담스러워하거나, 업무 노하우에 대한 공유 없이 한번쯤 깨지기를 바라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 이런 상황은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으나, 의외로 빈번히 일어나는 경우다.

그리고 어찌 보면 가장 문제되는 부분일 텐데, 우리 사회엔 'NO'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 구조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경영진이나 관리자급이 결정을 내리면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거기에 일을 '빨리' 처리하면 유능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아이러니하게도 정말로 빨리 처리하면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간의 경계선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현실도 우리의 정시 퇴근을 막는 경우가 된다. 이 또한 흔히 겪는 상황이 아닌가, 팀장이 자료 몇 개를 던져주거나, 큰 그림을 주면서 '내일 아침까지' 또는 '이따가 오후에' 한번 보자는 상황이 오면 우리의 선택은 그 업무를 밤을 새서라도 처리해야 하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미 보고된' 사안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요약하자면 '빨리빨리'와 '다 같이 함께'라는 문화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칼퇴근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하고 멋있는 야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를 과연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자신 있게 짐을 챙겨 '퇴근하겠습니다' 한 마디를 외치기엔 나 하나의 행동으로 무엇이 바뀌겠어 하는 생각과 그러다 잘못 찍혀서 자리 자체를 뺏기면 어떡하나 하는 현실감 가득한 걱정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잡은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무엇인가를 하는 '척' 하며 저녁 식사를 하러 가자고 외치는 이 현실.

   
▲ 복면가왕에서나 볼 수 있는 '칼퇴' ⓒ MBC 방송화면

오랜 근무시간이 가족과의 대화를 없애고, 짧은 여가시간 동안 강한 즐거움을 선사해줄 자극적인 문화콘텐츠를 찾게 하고, 어차피 나 혼자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만들어낸다. 이런 상황 속에 우리 삶의 건강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바뀌는 것은 나 자신부터여야 한다.

물론 사회 구조의 문제기 때문에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지만, 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의 인식이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한낱 휴지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먼저 가방을 챙겨 외치려 한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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