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주말에 동네 동생을 만날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촉탁계약직으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그날 그 만남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귀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왜 헤어졌냐고 물어본 나의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너무나 가슴아픈 말이었다.

자기는 비정규직에 고졸이라, 여자 측에서 미래가 없는 남자의 현실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더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그녀는 그 말을 남겨두고 그를 떠났다고 한다.

물론 저 말만으로 사랑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 건 아닐 것이다.

서로간의 성격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남자가 상습적으로 여자에게 거친 말과 폭행을 일삼았을 수도 있고, 둘 중 한명이 바람을 피웠을 수도 있다. 남녀관계는 매우 복잡한 것으로 단 한 가지 이유로 헤어진다고 단순화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저 이유를 들어 헤어져야만 했을까.왜, 그토록 감정이 움직여 만들어낸 만남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가운 이유로 달아오른 감정을 차갑게 식혔어야만 했을까.

사는 것이 어렵다고들 한다. 취업이 되면 비정규직이고, 중소기업에 가면 월급이 쥐꼬리고, 그나마도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에 몸이 피곤하다고들 한다. 열심히 월급을 모아도 집 한채 사기 어렵고, 애들 교육비 대는 데 허리가 휠 지경이라 애를 안 낳는다고 한다. 지금 내가 열심히 내고 있는 국민연금은 내가 늙게 되면 이미 다 고갈되서 받을 수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 말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전 세계의 공통된 고민이다-).

그래서 젊을 때부터 노후대책 열심히 세워야 된단다. 그런 것 좀 생각 안하고 살 수 없는거냐고 하면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라고 한다. 미래에 대한 계획성도 없어서 어떻게 앞으로 살겠냐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설계가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에너지의 낭비 없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야'라는 말처럼, 삶이란 우리가 정의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무수한 독립변수들 사이에 놓여 있다. 내가 지금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바뀔 수도 있고, 뒤로 한 걸음 후퇴하면 또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른다.

큰 그림은 가져가되 그 안에서 생기는 무수한 변화들은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다. 인생이 자로 잰 듯 깔끔하게, 내가 의도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세상에 걱정이란 게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는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대중매체에 나오는 화려한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누리지 못함을 한탄하고, SNS를 통해서도 행복한 삶과 나를 비교하며 좌절한다. 비교만 하다가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사람이 연봉이 나보다 높으면 나는 왜 불행해야 하나. 그걸로 내가 불행해야 될 이유는 뭔가. 나도 저거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하겠다? 맞는 말이다. 당연히 못한다, 그럼 그걸 비슷하게라도 하려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어떻게 하면 그걸 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여야 하지 일곱 살 먹은 어린애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징징대는 건 올바른 성인의 자세일까?

사랑도 그렇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두고, 우리는 지금 '그땐 참 어렸지'라면서 가끔씩 그래도 그때처럼 불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탄하고 있지 않은가? 비싼 공연 보지 않고, 좋은 음식 먹지 않고 단지 그냥 옆에 있는것만으로도 가슴 뛰고 좋았던. 눈만 마주치면 입을 맞추고 싶고 손만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그런 시절이 왜 지금은 서로의 지갑과 몸으로만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만 할까?

   
▲ 미국 공익광고협의회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제작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Love Has No Labels)'라는 제목의 광고.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약 70살 정도쯤 되면, 치료에 돈이 많이 드는 병에 걸리면 필자는 그 병을 굳이 치료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 때쯤이면 신체적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젊을 때와 같은 기분도 많이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육체가 젊을 때 더 아무 조건 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좋으면 단지 좋은 것이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가난한 여자를 만나면 내가 돈을 더 잘 벌면 될 일이고, 백치인 여자를 만나면 내가 더 똑똑해져서 그녀를 가르쳐주면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줘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덧 우리는 사랑마저도 재미없게 하는 시대상에 놓여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가슴 깊이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 만나자고 말해라. 그리고 아무 조건없이, 후회하지 않게 사랑한다고 말해라.

사랑이란 내가 무엇을 받을 걸 기대하는게 아닌 내가 더 주지 못해 미안해지고, 더 주기 위해 노력하는 절실함과도 같다. 지금, 그 사람에게 말하자. '만나자, 보고싶어. 사랑한다.'

   
▲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에 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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