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취미를 찾는 것은, 삶에서 여유와 휴식 즐거움을 찾기 위한 발걸음 중 하나다. 보통 춤을 배우는 것은 직장에서 안정을 하고 나서 배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바로 필자의 사연이다.

 

나는 또래들 보다 남다른 선택을 했다. 클럽에서 혼자 춤을 추기보다는, 빠에서 함께 춤을 추는 것을 선택했다.

그 선택으로 나는 근래에 들어서 소셜댄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 그것은 내가 소셜댄스를 다른 사람들 보다 '일찍'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셜댄스를 배운다는 것.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일임이 분명하다.

춤을 배운다는 것은 보통 성인이 취미를 갖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일단 성인이 되어서 무엇인가 배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의 풍파 속에서 딱딱하게 굳은 머리와 몸으로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사실 마냥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춤을 더 멋지고 재미있게 출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말할 수 있지만 모든 댄서는 처음부터 잘 추지는 않았다. 아기가 걷기를 배우는데 부모의 도움 아래 수 천 번 이상 넘어지듯이 고수들의 화려한 표현과 탄탄한 기본기 속에 감추어진 인고의 세월이 있다.

나도 스텝을 처음 밟았던 시절이 존재했었다. 나는 처음에는 춤을 같이 시작한 동기 중에 단연 돋보일 만큼, 몸이 뇌의 명령을 거스르는 심각한 몸치들이 진지하게 "저 녀석은 아마 안 될 거야" 말하고 고민할 정도로 '어마어마'했었다.

나는 분명 다리를 움직이려고 했었는데 거울을 쳐다보니 웬 오징어 한 마리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자기의 뜻대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그런 몸치였던 나에게도 희망은 보였으니 바로 '시간'이 나에게는 있다는 점이다. 춤을 같이 시작하는 동기나 선배보다 센스도 없고 머리도 좋지 않은데, 유리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노력하는 시간만큼, 투자한 시간만큼 몸이 점점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예전에 비하면 정말로 내 몸이 내 말을 잘 듣는 것 같아 다행이다.

지금 현재 나의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는 필자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춤을 배웠다는 말을 듣고는 굉장히 부러워한다. 보통은 다음과 같은 대화 패턴을 보인다.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가 흐르고)

A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까 "하핫 제가 좀 어립니다 :)"

A "하핫... (잠깐 정적) 그럼 한 스물 여덞 (서른 초반이겠지 ?) 되세요 ?

까 "다들 그렇게 보시더라고요 :) 올해 다섯 입니다"

A" 네 ?!!!!? (이 자식 얼마나 고생을 한 거지? ) 꺄 ~ *-_-* 좋다 그럼 춤을 언제부터 시작한 거에요? "

까 " 군대 제대하고 스물 셋부터 시작했어요 "

A " 야 ~ 완전 좋겠어요 ~ 부럽네요 "

까 " 어떤 게 부러우신 거죠 ? =) "

A" 그렇게 어릴 때 춤을 배웠잖아요 십 년을 춰도 서른 중반이네요…"

그렇긴 하다 십 년을 춰도 서른 중반이다!! 보통 대다수는 서른 초반에 들어오는데 저 아이는 10년을 춰도 서른 중반이다. 뭔가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기만 했고 진작 알지 못했을까 억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비교적 어릴 때 소셜댄스를 배우는 것이 좋은 일일까? 사려심 깊은 분이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이십 대 초반에도 나름대로 사정이 존재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기백이 없다.
요즘 아이들이 싸가지가 없다.
요즘 아이들은 나약하다.
요즘 아이들은 낭만이 없다
이 말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청춘을 바라보는 말인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구절처럼 약한 청춘으로 대변되는 우리 또래들이 어떻게 소셜 댄스를 시작하며, 어떤 사정들이 있는가 살펴보자. 

내가 여태껏 춤을 추며 만나온 어린 친구들을 분류(?) 해보자면

첫 번째 아티스트형
음악, 미술 등 예술계에 전공하거나, 종사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남들은 소울을 가지고 있었고 음악과 춤에 대한 해석이나 표현이 남다르고 쉽게 춤에 빠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 춤에서 즐기고자 하는 태도가 그들을 성장하게 한다. 춤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자신의 작품에 불어넣는다. 주로 혼자서도 소셜댄스를 배운다.

둘째 조기 취업
남들보다 안정적으로 직장을 자리 잡은 친구들이 있었다. 사회생활에 익숙해지고 무엇인가 무렵 취미를 찾게 되고 남여가 손 붙 잡고 춤을 추는 게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춤으로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긴 하다. 주변의 권유와 추천으로 배우는 편이다.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셋째 심심한 모험가 백수형
정말 놀아줄 사람이 없어 심심한 사람 혹은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소셜댄스가 재미있다는 혹은 살이 빠질 수 있다는, 남여가 만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새로움을 찾는 사람들이다. 우연히 운명적으로 춤을 만나 깊게 빠져버리는 스타일이긴하다. 엉뚱하게 알게 되어서 호기심으로 춤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만나본 친구들은 모두 저런 범주 안에 들었고 그들이 하는 고민 또한 다들 비슷했다. 대다수의 이십 대 초반의 청춘들은 일단 소셜댄스가 재미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즐기는 음악인 팝이나 힙합, 일렉 혹은 인디밴드의 음악에 충분히 만족하며 거기에 맞는 춤을 춘다는 것도 드문 일인데 째즈나 블루스, 락엔롤을 즐기며 춤을 춘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일단 스윙댄스나 여타 다른 소셜댄스로 넘어왔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쏘울이 있다는것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춤에 빠질수록 주변 사람에게 '춤바람 난 놈'이라는 도장이 찍힌다.

시간은 있으나 돈이 없어, 이 재미있는 소셜댄스를 오래 즐기기가 힘들다. 일반적인 이십 대 초반은 놀고는 싶은데 돈이 없을 나이다. 형들과 누나들, 오빠와 언니들에게 귀염을 받으며 싹싹한 친구들이 있지만, 빠 안에서 춤을 추는 댄서로서 서로 동등한 관계가 되어버리니 춤을 추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재미는 있지만 재미있으므로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춤을 계속 춰도 될 까? 삶과 춤의 균형을 잡는 방황을 하게 된다. 내 미래를 생각하자니 춤이 너무 재미있고 재미를 즐기려니 내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그렇게 알바를 해서 춤을 추느라 모두 탕진해버리는 이도 있고, 아예 계획적으로 통장을 따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고민하면서 즐기다가. 어느 순간 더 넒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이렇게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하지만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답은 이미 본인들이 다들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춤을 배우면 춤이 어렵고 쉽게 늘지 않아서 고민인 사람이 있는 반면 나이가 어리지만 아직 춤 이외의 것들이 정리가 안 되어서 고민이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이밖에 춤을 추며 만나는 파트너만큼, 수많은 산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넘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소셜댄스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정말 애늙은이 같은 소리지만 춤을 잘 추는 것, 삶과 춤에 균형을 잡는 것 이 모두 '시간'에 흐름에 따라 해결된다. 모든 고민은 결국에 시간이 지나야 해결이 된다. 사람이라면 다들 말을 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출 수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크나큰 선물이고 행복이다.

'춤을 안 배운 사람은 있어도, 춤을 한 번만 추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인 '음주가무' 그중에서 춤이 빠질 수 없다. 

삶이 너무 각박해서 미칠 지경이라도 마음의 무거운 근심이 있고, 말 못할 고민이 있고 이별의 아픔이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고 환경이 힘들다고 해도 춤을 추는 시간 속 그 무게들을 던져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춤을 추자.

소셜댄스는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뿌듯하고 상쾌하다 포근하다. 그런 오늘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미래의 걱정을 불안한 마음으로 미리 앞당겨서 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빠에 들어갈 때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빠에서 나올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가진 짐을 바라본다면 어느새 내가 가진 고민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그대, 춤추는 자신을 자유롭게 바라보아 주라. 당신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춤출 권리가 있다.

[글] 아띠에떠 신일섭 artietor@mhns.co.kr

스윙댄서 까요의 일상다반사. 90년도에도 사람은 태어났습니다.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려 이것저것 해보면서 꿈을 찾는 중인 청춘백수 입니다. 총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잠깐 맛만 보았고 현재 딴따라 땐스홀 공연팀 '땐서즈'로 일상예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닉네임이 까요입니다! 그래서 [춤출까요?].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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