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즐거운 춤을 추로 와서 가끔 즐거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정말 최악이다. 사실 필자도 어찌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내일도 춤을 추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자기의 마음이 더 아프지 않게 거리를 지키는 수밖에…

춤을 배우고 나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하루하루 춤추는 날을 기대하게 된다. 낮에 일에 치이면서 정신이 흐트러지고,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해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은 더욱더 간절해진다.

그렇게 기분 좋게 춤을 추러 왔는데 갑자기 춤이 즐겁지가 않아졌다면 그건 정말 기분이 불쾌해지고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진다. 어떻게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더러워지고 몸도 마음을 따라서 안 움직인다. 그날 하루 공친 것이다.

그렇게 기분 나빠지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으나, 소셜댄스는 사람과 사람이 추는 춤이니만큼 가장 큰 문제는 아마 '사람과의 관계 '문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의 실수로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건 가볍게 술 한 잔 기울이며 풀어버리겠지만, 문제는 그 문제의 덩어리가 어디 안가고 자꾸만 내 눈앞에서 설친다는 것이다.

 

춤추는 이 공간이 내가 돈을 벌로 온 곳도 아니고, 즐겁게 춤을 추러 왔는데 즐겁지 않는다면 정말 댄서에게는 크나큰 고통이고 시련이다. 가끔 이런 시련을 이기지 못해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장소를 옮기면 잠시 회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더라.

일단 그런 상황을 선택하게 된 나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런 문제를 만들어준 남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박수는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문제는 그 박수가 닿을 듯 말 듯한 텐션이 존재하는 상황일수록 더더욱 불편해 지는 것이다. 매번 서로 신발을 바꾸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꽁기꽁기한 상황이 존재한다.

그래서 피하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진다. 옛말에도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지 않나? 서로 깔끔하게 상처 안 받는 좋은 방법은 가면을 쓰면서 적절히 선을 긋고, 피하고, 타인과 공유를 하는 것이다. 물론 가끔 사건이 커지면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참 사람관계만큼 복잡하고 애매한 것이 없다. 그것이 춤추는 세계에서는 더더욱 애매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런 민망했던 상황을 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소셜댄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 첫 번째 이야기
멀리 다른 바에 춤을 추러 갔었다. 그 당시 나는 실력이 정말 많이 부족했었고, 개인적으로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으며 사회성은 접어두었고, 자존감 또한 낮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춤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실력 차가 나는 사람들과 춤을 추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가지고 춤 신청을 했다. 춤을 추는 내내 나의 멘탈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그 사람의 굳은 얼굴에 나는 마음 둘 곳이 없어졌다. 순간 수십 가지의 생각이 겹쳐진다.

'내가 너무 잘 못 췄나?', '내 몸에서 냄새가 나나?', '내가 뭘 실수했나?', '말을 좀 해주면 편할 텐데 !!! (말을 해줘도 멘붕이었을 것이다.) 자존감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춤은 재미가 없어졌다. 그리고 길었던 3분이 끝나고 나는 삼십 분 동안 춤을 출수 없었다. 그러면서 체념한 것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나와 잘 맞지 않을 수 있겠나 싶었다. 그 후로 나는 그 퐐뤄들에게 춤 신청을 못 했다.

그런데 그 이후 내가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춤이 성장했다고 느꼈을 때, 그리고 멘탈이 조금은 단단해졌을 때 건강한 상태에서 춤을 신청했지만, 너무나도 예의 있게 "이번 곡은 쉬겠어요~:)". "지금은 제가 혼자 연습하고 싶네요" 하고 다른 분이랑 추더라. 하하하 나는 그들에게 민폐 리더였나 보다.

그 후로는 쿨하게 춤 신청 안 한다 :) 서로 불편하면서 까지 춤출 필요는 없을 것 아닌가?

▶ 두 번째 이야기
어느 리더가 있었다. 그 리더는 주로 혼자 다녔고, 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었다. 늘 춤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개념들을 조금 강압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편이였고, 나는 형님이라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맞춰주며 피하고 있었다. 물론 가끔 챙겨주는 따듯함을 느끼며 아 정말 마음속 깊은 곳까지 거친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지만, 이상하게 불편했다. 태도와 언행이 날카롭고 거칠었다.

그래서 피하고 다닌다 :)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간단하게 안부를 물어보고 적당히 선을 그으면 더 이상 마음 아플 일이 없을 것 아닌가?

▶ 세 번째 이야기
어느 팔뤄가 있었다. 평소에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성격이 쾌활하고 시원시원하여 주변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빠에서 만났을 때 춤 또한 잘 추는 편에 속했다. 그러면서 인사만 하면서 춤만 추다가. 어느 날 술을 조금 많이 마신 날이 있었다. 그 퐐뤄는 야한 농으로 쑥스러워 하는 나를 놀려댔고 그렇게 술자리가 끝났는데, 무척 강도가 심했었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도 다 있는 것 같았다.

다음번 빠 나갔을 때 저기 저쪽에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했었다. 지난번 어마어마하게 마셔댔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먼저 다가가며 춤 신청을 했고 그 팔뤄는 굉장히 어색해 했지만, 그런 일이 뭐가 대수냐며 춤을 췄다.

어색하면서도 더 재미있었고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다시 춤을 출수 있었다. :)

▶ 네 번째 이야기
다른 곳에서 우연히 어마어마하게 춤을 잘 추는 팔뤄를 발견했었다. 내 춤의 모든 언어를 이해하는 것 같아 신기했었다. 다행이 남자친구는 없었고 그래서 보통 이상의 관계를 쌓으려 노력을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 퐐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추후 애매한 관계가 되었지만 그런 것 쿨하게 신경 안 쓰려고 노력을 했다. 그 다음번 우연히 다른 빠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춤 신청을 했지만 예전 같은 느낌은 나지 않았다. -_-; 선배들이 항상 말하기로 춤판에서는 연애하기 힘들다는 말을 확실히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마련이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 것 같다.

리더들 세계에서 형 동생 간에 생기는 이야기들, 퐐뤄들 사이에서 언니 동생 간에 생기는 이야기들, 오해가 오해를 낳고 소문에 소문을 낳아서 결국 서로 마음이 불편해 지는 이야기들 등 이것보다 더 불편해 졌던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삶이 즐겁기 위해서 춤을 추는 것이다.

혼자 나 홀로 조명 아래서 음악을 타며 추는 춤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성을 가진 파트너와 추는 춤을 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마찰음이 생기는 것이다.

서로 성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살아온 경험, 성향, 세월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곳에서 모여 춤을 춘다. 당연히 부딪히게 된다. 불편하게 된다. 이것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서로 조금만 예의와 매너가 있어준다면 부딪혀도 조금 덜 불편해 진다.

그 시작이 바로 나의 밸런스를 지키고, 너의 밸런스가 지켜진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런 상태에서 춤이 시작되어야 부딪히지 않는다.

나의 몸의 밸런스를, 나의 마음의 밸런스를 스스로 인지하고 조절하지 못한다면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 힘들어지고 불편해지는 것이다. 서로 가까이 홀딩을 하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붙어 있으나 자신의 밸런스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나서 상대방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고 적당한 거리를 조정하고 음악에 맞춰 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밸런스가 지켜진 상태에서만 상대방과 교감을 할 수 있고,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좀 더 능숙하고 힘이 있는 쪽이 좀 더 약한 쪽을 맞추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바운스, 밸런스를 강요하는 것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그래서 불편해지는 것이다. 한쪽으로만 신호가 간다면 그것은 전달이지 소통이 아니다. 그러면 그것은 혼자 추는 것만 못한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알고 상대방의 밸런스를 알고 서로 적당한 거리로 춤을 시작하면 서로 음악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춤을 춤추다 보면 가끔 내가 미쳐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곳에서 무엇인가 부딪히는 때가 있다. 그때 내 몸을 내가 간수해야 한다. 그래야, 갑자기 흐름이 끊기고 깨지도 내가 내 중심을 유지한다면 금세 다시 음악의 흐름을 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바글바글 한곳에서 실수로 급소를 정확하게 맞았다면 한동안 춤을 출 수 없는 정도로 아파서 잠시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몸을 잘 추스르고 나면은 또다시 춤을 출 수 있다. 물론 전보다 조심하며 춤에 푹 빠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남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불편함을 만든 것도 결국 본인이 만든 것이다. 춤도 관계도 우선 '나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 상대방과도 적당한 선에서 머무르며 즐겁게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도 소셜댄스를 닮았다. 춤을 통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많아지고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 같다.

[글] 아띠에떠 신일섭 invuni1u@mhns.co.kr

문화뉴스 신일섭 기자입니다. 이 코너는 문화예술 기사라기 보다 스윙댄서 까요의 일상다반사입니다. 90년도에도 사람은 태어났습니다.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려 이것저것 해보면서 꿈을 찾는 중인 청춘백수 입니다. 총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잠깐 맛만 보았고 현재 딴따라 땐스홀 공연팀 '땐서즈'로 일상예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닉네임이 까요입니다! 그래서 [춤출까요?].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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