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하루' 김명민 "타임루프 영화, 두 번 이상은 못할 것 같다" ① 에서 이어집니다.

연기생활 중에 그동안 개인 경험담을 개입한 건 있었는지?
└ 여태껏 현실을 대입해서 연기한 적은 없다. 예를 들어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할 때, 내 주변 누군가가 죽었을 때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 눈물의 질감이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저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만 생각하면 된다.

딸이 죽은 씬에서, 조금만 빨리 왔으면 살렸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들을 생각하면, 그 순간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사례를 가져온다는 자체가, 감정이 동떨어지고 깨지기 쉽다. 감정이 안 잡히더라도 그 상황에 몰입해 감정을 잡아야지, 현실에서 유추해오면 더 힘들어진다.

여태껏 연기해오면서 자기 자신 안에 남아있는 인물은 있었는지?
└ 앞으로 나에게 올 대본이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매번 다른 이로 연기하는 데, 남아 있는 게 있을 순 없다. 과거에 연기했던 인물들로부터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겠지만, 같은 소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이번 같은 경우, 타임루프가 너무 힘들었고, 만약에 같은 소재를 또 하게 되면, 인물의 성격이 기존과 다르다면 약간의 할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다. 하지만 비슷하거나 일반적인 사람으로 같은 소재라면 두 번 다시 할 일은 없다. 일단 연기하는 데 있어, 나는 식상한 게 제일 싫다. 다르게 표현하고 싶지만, 개인이 가지는 한계점이 있다. 얼마나 다르겠는가?

의사는? 그동안 의사 역할은 많이 하지 않았던가?
└ 의사는 직업군일 뿐이지, 완전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면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작품 선택 기준이 '식상하지 않은 것, 새로운 것'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보일 작품들 포함해서 새로운 지점은?
└ 'VIP'에서는 형사 역할인데, 여태껏 시종일관 욕하고 담배를 물고 나오는 건 처음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감독님과 밥을 뭘 먹을까 얘기나 나눴을 뿐이지 작품 이야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루'와 극과 극이었다.

'물괴' 같은 크리쳐물은 처음 찍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오랫동안 싸우긴 처음이라, 한 번 해볼 만했다. 하지만 허공에다가 칼과 창을 던지고 활을 쏘는 거라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는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웃음)

▲ 영화 '하루' 스틸컷

'하루'에 같이 출연한 변요한에게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고 들었다. 왜 변요한을 택했나?
└ 요한이는 동년배 다른 배우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열정과 패기,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진지하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좋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기의 부피나 비우기는 알아서 되겠지만, 지금처럼 그 연령대에 우직함을 가지고 연기하는 사람 중에 요한이만한 이는 없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함께 할 때는 나의 호위무사였기에, 그때부터 눈여겨보고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에서 만나게 되었다. 같이 해보니까 '육룡이 나르샤' 때가 나았던 것 같다. 열정이 좋고 힘도 좋아서 멱살을 잡히니까 너무 아프더라. (웃음) 물론 그렇게 해야 더 현실감 있게 화면에 드러난다.

이런 면을 보면, 김명민이라는 배우는 참 좋은 선배인 것 같다.
└ 맞다. 정말 좋은 선배다. (웃음) 다른 사람들에게도 멱살 잡히긴 했지만, 요한이가 잡는 멱살은 다르다. 얘는 옷과 살을 적절하게 섞어 잡는다. 그래서 잡힐 때마다 매우 아프다. 게다가 잡힌 데를 또 잡는 정확한 스킬이 있다.

타임루프이기에 그다음 날 또 잡혀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요한이에게 슬며시 편하게 잡는 법을 알려주어도 잡은 데 또 잡더라. 그래도 나는 좋았고 화면도 잘 나왔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런 건 잘 참는다. 나는 후배에게 마음껏 해라고 하는 타입이고, 요한이는 정말 마음껏 하는 후배다. (웃음)

 

데뷔 초에 비교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 데뷔한 지 너무 오래되었는데(1996년 드라마로 데뷔했다). (웃음) 버리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소름'을 찍을 당시 감독님이 나한테 "버리는 작업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 후 연차가 점점 쌓이면서 채우는 건 쉬운 데 반해 버리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채운다는 것은 오버, 비운다는 건 모자라게' 연기를 한다는 건데 이걸 깨닫는 데 너무나 오래 걸렸다. 지금도 버리는 연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렵다. 지금도 항상 정점에 약간 모자라게 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 내가 연기를 해야 할 것 같고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될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촬영에 임하는 것인지?
└ 배우는 체력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리고 배우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가 있는데, 발음이 좋아야 하고, 몸을 잘 써야 하며 눈빛이 살아있어야 한다. 술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지만, 술로 인해 내가 원하는 데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대사나 눈빛, 몸이 따라주지 않게 되고, 그 후에 정신이 희미해진다. 술 먹는 씬도 웬만하면 술 없이 찍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다음 멀쩡하게 나오는 씬도 소화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연기할 때도 철저하게 계산하는 편인가?
└ 촬영장 오기 전에는 철저히 50%만 준비한다. 일부 후배들은 100%를 채워오는데, 그러면 감독님의 지시 등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머지 50%는 현장에서 호흡으로 채운다. 현장에 일찍 도착해 스태프들과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런 것들이 내가 그들과 같은 냄새를 맡고 공존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자 적응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오는 50%가 나머지를 채우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는 배우들을 만나 간단히 리허설한다. 리허설 들어가는 과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로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이렇게 철저히 계산하면, 다른 배우들과 달리 촬영현장이 마냥 즐겁지 않을 텐데?
└ 아니다. 즐기는 건 맞다. 다만, '하루'는 고통을 즐기는 것이며, 'VIP'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즐긴다. '조선명탐정'은 추석 연휴 때 가족·친지 모여서 신명 나게 즐기는 기분이다. 현장마다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루' 같은 경우는 앞서 말했듯이 소재의 이유로 50%를 미리 계산하고 나머지 50%를 현장에서 채우는데 그 과정조차도 계속해서 다음 연기를 계산해야 했다. 끊임없이 토론해 타이밍을 조절하는 부분이 매우 컸다. 그 외 보조출연자의 위치까지도 다 파악해야 했고, 시간대에 따라 도착했을 때 움직임과 나의 앞뒤 상황들을 다 파악해야 했기에 그게 힘들었다.

 

오랫동안 연기해왔는데, 김명민 본인만의 동력을 잃지 않는 방법은?
└ 내가 뭔가 했을 때 만족스럽지 못하면 오기나 쪽팔림 등이 생기는데 그게 다음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 항상 '왜 저렇게 했지?' 하고 눈 뜨고 못 봐줄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지 않아야지', '좀 더 잘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이 역할에는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마음먹고 들어간다. 신인 배우들에게도 '카메라 앞에 섰을 때만 이 역할은 나보다 잘할 사람은 없다는 게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나 자신을 못 믿으면 설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마음가짐은 그때 뿐이다.

그 후, 나중에 편집본을 보면 '왜 저렇게 했지?' 하고 반성하게 되는 게 다음 작품으로 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된다. 100 중 70 정도 채운다고 생각하면, 90이나 100까지 채우겠다는 의지가 현장에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채찍질 하는 것 같다.
└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저앉고, 나태해진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말이야 쉽지, 대부분 다 잃지 않나. (웃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초심을 계속 유지하는 건 아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성공한 사람들만 보더라도 정말 남들에겐 관대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할 정도로 냉정하다. 그걸 보면 다 성공하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치밀하게 분석하는 걸 보면, 공부를 많이 하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지?
└ 예전에 '1년에 100권 읽기 운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무명시절이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당시에 '나중에 바빠지면 분명히 지금의 이런 날들이 엄청난 영화재산이 되어서 돌아오겠지' 하고 읽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때처럼 지금 다시 여유를 가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지만, 1년에 50권 읽는 데 도전을 해보고 싶다.

대본을 받아 읽으면 항상 그와 관련된 서적 또한 읽게 되는데, 의학이나 심리학 등 맡은 배역에 국한되더라. 배우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건 소설이나 추리소설 등인데 가끔 그런 걸 여유 있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영화를 예매하려고 하기 전에, '하루'를 추천한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 내 입으로 "'하루'는 이런 영화입니다"고 말하는 것보다, 보신 분들이 괜찮다고 입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나는 자신이 있지만, 내 한마디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잔잔한 반향을 일으켜 큰 파도로 이어지는 게 가장 좋은 모습이다.

그리고 국내 극장에 관객들이 예전보다 많이 사라지고 있다. 관객몰이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하루'는 힘들다. 그래서 '미이라'나 다른 대중영화들도 관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원더 우먼'이 흥행이 뚝 떨어져서 아쉬운데, '원더 우먼'은 내 연령대나 잘 알지, 젊은 세대는 잘 모른다. '미이라'가 뒷심을 발휘해 호객행위를 하고, 실속은 '하루'가 챙기고. (웃음) 그 외 '악녀'도 잘됐으면 좋겠다. 어쨌든 관객들이 극장에 많이 찾아와 모든 영화가 같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 극장 밖에 더 재밌는 게 많으니까. 작년부터 관객들이 극장 갈 일이 줄어들었는데, 초대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규모들이 계속 터지니 영화가 당연히 밀렸다. TV만 틀어도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이게 실시간으로 중계되지 않은가. (웃음) 그때부터 시작된 게 지금까지 계속 오고 있는데, 이제 슬슬 바뀔 조짐이 보여, 하반기엔 극장가도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김명민이 듣고 싶은 수식어는?
└ 매번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내 입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웃음) 배우 김명민이 좋다. 튀는 게 싫다. '진정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이자, '동료들에게도 인정받는 배우'가 내 신조다. 앞으로도 꾸준히 가고 싶다.

장군, 의사, 마에스트로, 대통령 등 거진 모든 역할을 다 소화했는데,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역할은 아무래도 특이해야 할 것 같다.
└ 같은 직업군에서도 다양한 인물이 많다. 음, 직업군으로만 해보지 않은 걸 찾는다면, 우리나라 영화계를 주름잡는 역할 중에선 조폭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아, 소시오패스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소시오패스를 하고 싶은 건가?
└ 그렇다. 예전에는 그런 시나리오가 많아서 하고 싶긴 했다. 하지만 끝끝내 오지 않더라. 투자도 안 하고. 예전보다 장르의 다양성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쏠림현상도 심해져서 하나의 장르가 나오면 동시다발적으로 나온다, 장르의 다양성이 오길 바라본다.

syrano@mhns.co.kr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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