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그가 나오는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평가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의 신'이라고 말이다. 만장일치로 극찬하는 이유는 그가 이순신을 연기한 후 사람들은 이순신 하면 그를 먼저 떠올리고, 드라마 '하얀거탑'을 통해 의사 역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등 매 작품마다 반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넘어 영화에서도 그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으며, 결국 드라마와 영화 양 쪽에서 최고의 상까지 거머쥐었다.

'자타공인 연기본좌'로 평가받는 김명민은 15일 새 영화 '하루'를 통해 새로운 메소드 연기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 '하루'는 우연한 대형사고로 인해 매일 반복되는 지옥 같은 하루 속에서 접하는 두 명의 남자 '준영(김명민)'과 '민철(변요한)'이 비밀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연기의 신'이라는 이미지가 한편으로는 배우 김명민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기도 한다.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김명민이라는 사람은 언제나 진중해서 심도 있는 인터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지난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말하기를 좋아하고, 유쾌하며, 대화할수록 개미지옥처럼 자꾸만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마성의 배우였다. 유쾌, 상쾌, 통쾌한 김명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루'의 어떤 면에 매료되어서 하게 되었나?
└ 대본이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타임루프 소재는 내 연기 인생에서 처음 만났다. 그동안 기존 타임루프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을 보면 뭔가 부족했고, 보고 나면 뭔가 석연찮고 의문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하루'는 딱딱 맞아 떨어졌다. 대본을 잘 쓴 것도 있지만, 자를 잰 듯 떨어져서 신기했다. 한꺼번에 몰리는 경향이 없잖아 있지만, 그동안 타임루프 소재로 썼던 영화보단 잘 짜여 있어 의구심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를 영화로 어떻게 구현할 것일지, 또한 기존에 틀에 박혀 있는 식상함과 형식적인 것에서부터 어떻게 탈피할지 고민했다. 거기다가 신인 감독님이 맡았기에 약간의 우려가 있었다.

 

그 말은 그동안 타임루프 소재의 한국영화들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인가?
└ 그렇다. 헐리우드는 대체로 잘 짜여 있고, 막대한 제작비를 동원해 눈을 즐겁게 하기에 타임루프여도 지겹지 않다. 하지만 국내영화는 그렇지 않기에 드라마에 집중해야 했고, 드라마가 탄탄하지 않으면 흐름이 깨지게 된다.

'하루'는 일단 대본이 깔끔했으며 메시지 또한 충분히 들어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설정에 맞추다가 이야기 전개가 깨지기 쉬운데, 이건 철저하게 이야기 전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배우의 역량이 중요했다.

물론 '하루'도 중후반으로 갈수록 얽히는 부분이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타임루프 영화 중에선 제일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자부심은 있다.

다행히 '하루'가 러닝타임이 90분이라서 더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던 것 같다.
└ 그렇다. 이게 만약 더 길었으면, 사족이 들어가 극적인 긴장감도 떨어졌을 것이고, 보는 관객들도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타임루프 소재 영화를 해보니 어땠나?
└ 직접 타임루프 소재 작품을 해보니까 '도 아니면 모'더라. 잘해야 본전이고, 이제 한 번 해봤으니까 다시 안 할 것이다. (웃음) 작업이 매우 어렵다. 똑같은 스태프, 상황, 복장, 사람, 똑같은 연기를 반복하다 보니까, 촬영현장에서 타임루프 영화를 찍다가 우리가 타임루프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과 영화촬영이 헷갈렸다.

 

타임루프 소재라서 감정이나 톤 조절할 때 어렵다고 말했었던 적이 있다. 이를 어떻게 연기했는지?
└ 이 영화는 루프마다 키워드가 없으면 촬영할 수 없다. 매번 깨어날 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 루프 때는 '혼란'인데,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처음에 경험했던 모습들이 똑같이 반복된다.

두 번째 루프는 혼란과 현실 사이에 겪는 '갈등'이었고, 현실을 깨닫고 난 뒤인 세 번째는 모든 걸 알았으니까 무조건 살려야겠다고 내달리는 '스피드'였다. 네 번째에는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에 '절망'이다. 그 이후부턴, 이성을 되찾아 전략을 세우면서 동시에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루프는 계속 반복되고, 어떻게 해도 딸을 살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부터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키워드가 정해지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다. 게다가 공장에서 상품 찍어내듯 장소별로 한꺼번에 몰아서 촬영해야 하는데 드라마에서나 가능하지 영화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첫 촬영부터 과감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에서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런 촬영이 편하지만, 영화에서 어떻게 살릴지 등의 온갖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감독님이 계산을 잘했다.

▲ 영화 '하루' 스틸컷

깨어나는 씬을 찍을 때, 깨어날 때마다 감정이 매번 다를 텐데 감정몰입이 되는가?
└ 6시간 동안 한 항공사 교육훈련장에 앉아서 "처음 루프 갈게요", "두 번째 루프 갈게요" 식으로 한꺼번에 몰아서 찍었다. 촬영 전날에 머리가 쥐가 날 정도로 루프마다 어떻게 연기할지 계산하고 갔는데, 이걸 영화촬영에서 한다는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웃음)

드라마 촬영현장 경험이 도움이 꽤나 많이 됐을 것 같다.
└ 드라마 촬영 때 얻은 순발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신이 맡은 '준영'이 명망 있지만 동시에 과거가 있는 의사인데, 인물의 감정과 함께 이야기까지 설득해야 했을텐데 어떻게 준비했는지?
└ 표현하고 이해하는 인물이 관객을 설득시키기 전에, 내가 그 인물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 인물이 되어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 이렇게 했는지 당위성을 찾지 못하면, 연기하는 사람이자 대변인으로서 절대 남을 설득시킬 수 없다.

개인적으로 '준영'이 이해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딸을 소중히 여기면서 해외를 도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또한, 딸과 중요한 약속장소로 가는 사이에서 오지랖 넓게 중간에 벌어진 모든 사건 등에 참여하는 것도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이미 10분이나 지나갔다. 내가 '준영'이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준영'을 연기해야 하기에 "그래, 당연히 그럴 수 있어"라는 식으로 최대한 합리화시켰다. "부모라면 충분히 가능하고, 의사니까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자기합리화했다. 사거리에서 벌어지는 사고 씬도 그랬다.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것이며, 사고가 났으니 골든타임이지 않은가. 그렇게 '준영'의 대변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여기서 왜 이래야 할까?'며 의구심을 갖게 되면, 나 같은 경우에는 대사가 한마디도 안 나온다.

'준영'의 대변인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아빠의 입장에서 딸이 죽는걸 보는 게 힘들지 않았는지?
└ 맞다, 그래서 루프가 될 때마다 다른 식으로 접근했다. 목표는 딸이 죽기 전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영화에 전부 반영하지 않았지만, '준영'은 눈을 뜨는 순간, 내비게이션으로 더 빠른 길, 안 막히는 길을 찾았다. 그렇게 공사장이나 골목길을 들어가고, 그러다 자기가 사고 나고. 그렇게 목표에 거의 다 도달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딸이 죽는 걸 본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말이다.

그때 '준영'은 처음으로 딸이 죽는 것을 본 것이다. 약 10여 초 차이로 광경을 목격하고 난 뒤부터 감정이 바뀌게 된다. 자기 자신을 자학하고 모든 걸 포기해 절망하게 된다. 또한, 절망으로 빠지면서 다른 방식으로 해도 안 된다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씬은?
└ '준영'이 사랑하는 자신의 딸이 눈앞에서 죽어야 하는걸 고통을 맛봐야 하는 게 3년 전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게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딸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것임을 계속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몇몇 부분들이 정확하게 집어주는 단서이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문화 人] '하루' 김명민 "연기학개론, 변요한, 독서, 그리고 소시오패스" ② 로 이어집니다.

syrano@mhns.co.kr 사진제공=ⓒ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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