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아직도 예슬(김보경)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커튼콜이 진행된 순간에도 답답함과 고통은 가실 줄을 몰랐다. 

연극 '말 잘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됐는지를 극단 신세계만의 시선으로 무대에 재현한다. 연극은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어 구성됐다. 극은 한 '어린' '여성'이 어떻게 모욕과 능멸을 당해 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수정 연출은 보편의 논리에 잠식돼 가는 우리의 인식을 일깨운다. 당연하게 인식돼왔던 우리 일상의 보편적 통념들을 무대 위로 가져와 극단적이고 감각적으로 재현해낸다. 우리의 내면 세계, 즉 외성을 내화시켰던, 그 내화된 외성을 재외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적확하게 발견하고 무대에 올려놓는다. 관객들은 그동안 본의를 상실한 통념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스스로의 인식 체계를 거리 두어 사유할 수 있게 된다.

전작 '파란나라'에서는 개개인이 각자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논리에 의해 전체주의에 물들어가는 과정이, 이번 '말 잘 듣는 사람들'에서는 힘의 논리에 철저히 굴복하고 마는 개인 내면의 식민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회 곳곳에 은폐된 모순의 논리를 발견하는 이 극단, 신세계의 작업은 날카롭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연극이 끝나고도 한 배우의 얼굴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았다.

 

 

현실을 재현한 이 가상의 시공간이 철저히 '끝'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왔음에도, '예슬' 역의 김보경 배우의 얼굴과 표정은 그 끝의 신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순간, 극으로 끝날 세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극 내내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던 나는 커튼콜에서 배우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고통에 몸부림치던 나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저 배우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을 품게 됐다. 

무대서 합의 하에 재현된 폭력은 '극'이었기에 괜찮은 것일까? 무대에서의 폭력은 가상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으로 명확히 구분지어질 수 있을까? 관객들은 한 범죄사건의 목격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고, 심지어 그 폭력의 현장을 방치한 기분마저 느껴야 했다. 

 

 

예슬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재현되는 가운데, 폭력의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폭력에 동참했다는 기분을 느껴야 했고, 결국 커튼콜에서는 김보경 배우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막이 내린 후 박수는 어딜 향해, 누굴 향해야 하는 것일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key000@mhns.co.kr 사진ⓒ극단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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