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배우 김종구, 서지유, 김영민, 김수현, 신소현, 나경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고려 1257년, '왕은 하늘이 점쳐주는 게 아니라 힘이다'는 일념으로 도래한 무신정권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최고 권좌에 있던 최항이 무신 제국의 건립에 반대하며, 무신정권을 왕권에게 양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무신 제국의 설립만을 학수고대하던 최의는 아버지의 배신에 분노하며 고려에 붉은 비, 혈우를 내려 무신 제국을 건립하겠다고 다짐한다.

'혈우'는 무협활극이라는 표현지점에서 안무적 화려함을 넘어 '피의 비'를 형상화하는 날 것 그대로의 싸움으로 보여준다. 고려 무신정권의 '싸움'은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처절한 생사의 장으로 표현된다. 작가 한민규는 "이 시대는 늘 참혹한 학살이 대가로 따라오는 피가 난무하는 시대였다"며 혈우의 잔인한 세계관을 소개했다.

인간의 욕구 중 권력욕은 그 속성상 사회의 위계를 만들어 내고 이를 정치로 반영한다. 그래서 정치와 권력은 그 자체가 힘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노출되기도 한다. '혈우'는 이러한 권력과 힘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해냈다.

10일 열린 '혈우' 프레스콜에는 사회자인 배우 김형균과 혈우의 한민규 작가, 이지수 연출, 배우 김수현, 김영민, 김종구, 서지유, 신소현, 나경민이 참여해 질의응답과 하이라이트 장면 시연 시간을 가졌다.

 

   
▲ 한민규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

ㄴ 한민규: '혈우' 같은 경우는 고려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한 무력활극이다. 최씨 집안 60년 이상의 독재정권과 그것을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난 왕실, 최씨 집안 밑에서 대가 없이 노동을 강요받았던 천민 집단의 용병들까지 세 집단의 대립을 통한 과도기를 다뤘다.

독재정권에 대한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집단이 싸우고 새 시대를 열였지만, 결국엔 또 똑같은 독재정권이 되어가는 모습에서 힘에서 시작된 정치는 힘으로 끝나고, 새로운 정권이 열려도 다시 힘으로 인한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의 배경을 고려 시대 무신정권으로 선택한 이유는?

ㄴ 한민규: 고려 시대는 칼에 의한 정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였다. 이 시대에는 오늘날의 돈, 권력 등이 노골적인 칼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혈우'의 오브제는 칼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칼의 시대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고려는 칼의 후예다. 힘에 의한 강자가 권력을 차지했고 힘에 의해 망했다. 그런 정권을 담고자 '혈우'의 배경을 고려 시대로 정했다.

어떤 역할들이 있는가?

ㄴ 김수현: '혈우'에서의 김준은 직위상으로 이인자였던 인물이다. 일인자였던 최항이 죽게 되면서 일인자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는데, 그 자리를 아들 최의가 가로챘다. 다시 노예 출신의 이인자가 된 김준은 명목상 고려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영민: 최의는 아버지의 무신 권력을 이어받아 이상과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그런데 자꾸만 좌절되는 현실 속에서 분노하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꿈과 이상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사람을 이용하고 괴롭히는 등 어떤 못된 짓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 김종구(왼쪽), 김영민(오른쪽)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종구: 최항은 11장에서 죽는다(웃음). 우리 아들 손에 죽게 된다. 사실 나도 죽는 장면이 정말 의아스럽다. 왜 죽는지 모르겠다(웃음). 그런데 끝나가면 내가 왜 죽는지 알게 된다. 막장에 치달은 무신정권을 해결해보자는 의미에서 최항이 일인자의 자리까지 오도록 큰 힘을 김준에게 자리를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숨어있던 내 아들 최의의 무신 정신이 뿜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일들이 발생한다.

신소현: 안심은 최씨 집안의 기녀다. 최항 어르신을 모시다가 사랑하는 남자 김준과의 혼례를 약속하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남자와 알콩달콩 살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임을 당하는 역할이다.

나경민: 유경은 최고의 관직인 대사성에 있으면서도 무신에게 지지 않는 무예 실력을 지녔고, 무엇보다도 정의롭다. 왕가와 무신 사이에서 정치에 회의감을 느끼고 낙향했다가 백성들의 봉기를 보고 다시 올라와서 왕가를 돕게 되는 인물이다. 여태껏 내가 했던 역할 중 가장 멋있고 정의롭고 만족스러운 역할이다. 다른 남자 배우에게 질투도 많이 받고 있다(웃음).

서지유: 길향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멋있는 도련님을 모시는 호위 시종이다. 성적 노리개로써도 이용을 당하고 '이것이 사랑일까'하는 고민에 자꾸만 휩싸이게 된다. 길향에게는 사랑이겠지만 최의 도련님도 사랑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이 역할을 맡으면서 받지도 못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계속 퍼주다 보니 어느 순간 우울증 올 것만 같고, 속이 자꾸만 타들어 갔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 신소현(왼쪽), 서지유(오른쪽)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기만 하는 것에 고생 심하다고 했는데 그런 캐릭터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연출이 만든 것인가?

ㄴ 서지유: 사랑을 주고받기를 원했는데 내 바람 때문에 길향이 최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가 된 건 아닌지, 그저 끌려가는 캐릭터가 무너지는 건 아닌지에 고민이 많이 됐다. 그래서 속앓이도 했다. 갈등은 사실 리딩 때부터 생겼던 것이고, 캐릭터 창조는 연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자꾸 꿈틀대서 어떻게 해결하는 게 작품에 좋을까 고민하고 연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뒤로는 믿고 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명료하게 길향이라는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낸 것 같다.

 

길향이 불러주는 노래는 최의에게 어떤 의미인 것 같은가?

ㄴ 서지유: 검술은 저보다 다른 배우들에게 많아서 연습할 부분이 별로 없었지만, 노래는 조금 연습했다. 노래 가사가 굉장히 대조적인 장면이 삽입돼있다. 복숭아 꽃이 휘날리는 그림과 피바람이 불었던 그림이 중첩돼서 들어가 있지만, 멜로디 라인은 아름답다.

최의가 극 중에서 "노래가 구슬픈 게 참 좋더라"라고 말하는데 이 노래가 딱 그런 느낌이다. 이별했을 때 이별 노래 들으면 위로가 되듯이 상처가 있는 최의에게 구슬픈 이 노래가 듣기 좋은 노래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 김영민(왼쪽), 김수현(오른쪽) 배우가 서로를 쳐다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입체적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에 있어서는 확고한 최의를 표현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뒀는지.

ㄴ 김영민: 최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더 변화무쌍하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죽을 위기에서는 모든 걸 뉘우친 듯 행동하고, 다시 상황이 역전되면 본모습이 드러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길향을 성 노리개로 생각한다는 것도, 아이에 대한 감정이 길향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것도 모두 연출의 의도였다. 전체적으로 김준의 마음을 계속 건드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상황마다 극을 끌고 나가야 하는 인물로, 한가지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입체적이어야 하는 부분이 어렵고도 재밌었다.

김준과 김수현의 일치성은?

ㄴ 김수현: 일치성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3% 정도 된다. 먼저, 나는 싸움을 김준만큼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김준은 나 같은 현대의 약삭빠른 사람 입장에선 그저 무식한 놈이다. 노예로 자라면서 모든 핍박 다 받아놓고, 나중에 무술로 성공해서 대접받는 입장이 됐는데, 노예 신분인 여자를 사랑해서 주변의 모든 것을 버린다. 저울질하면 항상 자기 여자가 최우선인 사람인 모습을 보면, 나와의 일치성은 3%다.

   
▲ 이지수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무술을 연출함에 있어서 연극보다는 영화 같은 연출이 돋보인다. 대극장인데 이런 점들이 멀리 있는 관객들에게도 어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ㄴ 이지수: 무술은 영화 쪽에서도 활동했고, 지금 공연 쪽에서도 3년 정도 활동한 류성철 무술감독이 전체적인 디렉팅을 맡았다. 천천히 움직이거나, 멈춰서 표현하는 부분들의 영화적 이미지를 어떻게 무대로 옮길까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연극이 오르기 전까지도 화려한 무술에 관해 호언장담했는데, 무대 구조 문제 때문에 실현되기가 어려워졌다. 만약 무대가 조금 더 높았더라면 배치가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무대가 낮다 보니 우리가 준비한 효과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영화처럼 액션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차라리 연극적 장치들로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될지는 저희도 아직 우려 중에 있다.

   
▲ 연극 '혈우'의 한 장면.

대사가 표준어가 아니다. 역동적인 장면들도 많아서 대사 전달력이 약하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ㄴ 이지수: 정치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다 보니 확실히 정세나 주변 상황에 대해 드라마가 던지는 내용을 충분히 소화 못 하고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보면 흥미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투리와 음악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우려가 내부적으로도 있었는데, 연극의 앞부분에서 전달해주는 정보가 충분히 쌓인다면 뒷부분에서 하는 말들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다.

음악 사용 같은 밸런스는 저희가 앞으로 공연하면서도 점차 수정해야 할 남은 작업에 해당한다. 안전문제 때문에 자꾸만 딜레이 됐지만, 그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아직 열심히 작업 중이다.

한민규: 보완하자면, 영화적 액션과 사투리는 토의 과정에서 모두가 동의한 부분이다. 사투리와 영화적 리얼리티로 날 것 그대로의 싸움을 보여주고자 했다. 힘의 정치는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싸움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혈우' 그 자체로 보여줄 예정이다.

[글] 문화뉴스 박다율 인턴기자 1004@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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