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영화도 다시보자 '명화참고서'…'아라비아의 로렌스'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석재현 syrano63@mhns.co.kr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배워갑니다.
[문화뉴스]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 난세를 극복해줄 영웅을 간절히 찾게 되고, 그 영웅에 관한 신화를 입에서 입으로 전파하면서 사람들은 영웅을 매개체로 하여 잃어버린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선다.
 
특히나 용맹한 호걸도, 괴력의 장사도, 신출귀몰한 무사도, 신의 은총을 입은 예언자도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신화라면 더더욱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가짐으로 바뀐다.
 
1962년에 개봉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존 모델인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럽에선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여 피로 얼룩져가고 있었으며, 또 다른 화약고로 불리던 아라비아 반도에서, 당시 영국 정보국에 근무중인 토마스 로렌스는 조국인 영국의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해 독일과 동맹인 터키를 물리치고자 파이잘 왕자를 축으로 한 아랍 연합세력이 주둔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자신의 조국 영국을 위해 아랍 진영에서 전투에 참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아랍 연합을 마치 자신의 국가, 자신의 조국인 것처럼 여기고 분열되어 있던 수많은 아랍 지도자들을 설득하면서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위대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지휘 하에 아랍 연합은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하면서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눈앞에 두고 있던 상황, 하지만 로렌스의 조국인 영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열강들은 아랍의 분할통치를 하려고 시도하던 상황이었고, 로렌스의 항의와 외침은 묵살됐다. 그렇게 그는 쫓겨나듯이 모래사막을 떠났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스케일은 실로 대단했다. 50년 전 1,5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로 투자하여 총 제작하는 데 10년이나 걸린 이 대서사 영화는, 7,000만 달러라는 수익과 함께 다음 해인 1963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등 무려 7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손꼽히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를 보았다면, 사람들은 사막 속에서 영국과 아랍 연합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 로렌스라는 위대한 영웅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비춰진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실제 기록에서의 로렌스를 찾아 비교해보면 모두를 놀랠 만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먼저,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업적에 대해 현재까지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로렌스의 자서전인 '지혜의 일곱 기둥'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그가 쓴 자서전 내용 자체가 허구와 왜곡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로렌스와 그의 업적을 치켜세웠지만, 사진 몇 장을 제외하고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 영국은 아랍의 독립운동에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다. 반면, 아랍에서는 로렌스가 아랍 연합이 독립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철저히 영국의 편에 서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데 한 몫 거들었다고 맹비난했다. 요르단 출신의 작가 슐레이만 무서는 '아랍이 본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두번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담겨져 있는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물론 영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아랍 민족에 대한 비하와 백인우월주의가 선명하게 드러나 개봉 당시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린이 대영제국 시대를 살았던 영국인이었으며, 그의 보수적이고 백인우월주의 성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전 영화였던 '콰이강의 다리'나 '인도로 가는 길'에도 비슷한 문제 때문에 비난의 중심에 서있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영화다. 아카데미를 휩쓸었을 만큼 작품성으로는 흠 잡을 데 없는 뛰어난 영화일지라도, 한 쪽으로 치우친 시선과 관점으로 만든 영화가 보는 관객들에게 잘못된 진실을 전달하여 사람들을 그것이 진짜라 믿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하더라도 영사기가 보여주는 화면 그대로를 믿어선 안된다. 결국 영화 또한 만드는 사람의 의식과 사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12세 관람가, 드라마, 
3시간 36분, 평점 : 3.8 / 5.0(왓챠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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