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1919년 작품 '데미안'에 나오는 이 명문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끌었다. 활자에서 가슴으로 뛰어드는 문장들을 눈앞에서 배우들의 연기로 생생하게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공연제작사 라인컴퍼니의 나일봉 대표가 각색해 제작 및 프로듀싱을 하는 연극 '데미안'이 10월 21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연다. 1916년 독일 김나지움, 거리, 카페 등의 장소를 현재의 대학로 동숭무대소극장으로 옮겨왔다. 
 
그곳에서 거닐고 말하는 인물들의 고민과 추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같은 고뇌와 성찰에의 필요를 일깨운다. 작중 '싱클레어'는 금기와 허락된 것 사이의 내적 갈등을 겪는다. 사춘기 시절 '알퐁스 백'을 만나 어두운 세계를 접하며 금기들과 허락된 것들 사이의 내적 갈등을 겪는다. 괴로워하던 그는 친구이며 지도자인 '데미안'을 통해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고 자아를 발견한다. 투쟁하여 껍데기를 깨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 '알퐁스' 역에 (위 왼쪽부터)남정우, 이민수, '피스토리우스' 역에 (아래 왼쪽부터)원완규, 이종박, 장형석이 출연한다.
 
극중에서 뒷골목 세계의 보헤미안 '알퐁스 백'과 '싱클레어'의 일화,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더해, 원작에선 없는 남장 여자 '크나우어'라는 인물이 새로 등장한다. 원작에 신선함을 더하는 새 인물의 투입으로 나일봉 프로듀서의 묘수를 읽을 수 있다.
 
'데미안'에선 대학로에서 잔뼈 굵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CF, 뮤지컬, 발레 등에서 활약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싱클레어' 역엔 심하윤, 김태완, '데미안' 역엔 '남자 데미안' 이의령, '여자 데미안' 김유진, '알퐁스' 역엔 남정우, 이민수, '피스토리우스' 역에 원완규, 이종박, 장형석, '에바부인' 역에 20년 실력파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김선경과 오슈윤, 조수현, 남장 여자인 '크나우어' 역에 박유진, 주민경, 양지빈이 출연한다.
 
음악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태 수난곡',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하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에 막스 레거의 곡이 배경 음악으로 분위기와 몰입도를 끌어올리며, 러시아 민요 '나홀로 길을 가네'를 합창곡으로 편곡하여 극 후반부에 전 출연진이 중후하게 불러 유럽시대적 고독과 동행한다. 이처럼 연극 '데미안'은 헤세의 시대적 성찰의 의지를 품고 세상으로 향한다.
 
   
▲ '에바부인' 역에 (위 왼쪽부터)김선경, 오수윤, 조수현순, '크나우어' 역에 (아래 왼쪽부터)박유진, 주민경, 양지빈이 출연한다.
 
김명환 연출은 "학창시절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펼쳐 보게 됐다. 이 작품을 연극화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떡하면 헤르만 헤세의 글과 정신, 광기를 손상하지 않고 무대화할 수 있을까, 온 힘을 다해 고민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김 연출은 "시대성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빛의 속도를 넘어선' 공간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자 한다. 그곳은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옥(煉獄)과도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런 곳에서야말로 헤르만 헤세의 광기는 숨을 내쉬고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헤르만 헤세가 광기로 채워간 미쳐버린 1919년 유럽의 모습만이 이 극의 전부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 김명환 연출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전쟁과 폭력들. 그리고 신념을 잃은 테러와 이유 없는 살인들로 가득한 미쳐버린 지금 이 세계의 모습 또한 무대 위에서 함께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런 곳이야말로 인류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연극의 공간'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생각한다. 그 세계가 지옥으로 떨어질지, 천국으로 갈지는 관객분들만이 심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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