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홍도영, 박정순, 도레미, 김담희, 황재희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평생 장을 담그던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살펴보는 연극이 공연됐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아틀리에스토리의 '맞장'이 제1회 '으랏차차, 세우다!' 공모전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대학로 세우아트센터 무대에서 열렸다.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와 문화콘텐츠제작사인 으랏차차스토리가 연 이번 작품공모전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와 기회가 부족한 공연문화 실정에서 끼와 열정, 그리고 준비된 실력과 가능성을 펼쳐 보일 기회를 제공해 개개인의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도록 시작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되어 마지막 공연을 펼친 '맞장'은 부인 '안노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정노인'이 먼저 등장한다. 평생 장류와 술을 담으며 살아온 '정노인'은 나름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그런데도 후계자가 없어서 가슴을 졸인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쫓긴 '박충만'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면서 극은 빠르게 전개된다. 
 
   
▲ 연극 '맞장' 포스터.
 
작품을 쓰고 연출한 홍건모는 "장인정신과 기다림의 미학을 접목할 소재로 발효 음식을 찾았다"며 "고집스럽게 한 길을 걸어온 노인의 말년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의 관점이 바뀌고 인물들의 관계가 변화하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희곡으로 썼다. 사실적인 무대에서 펼쳐지는 시적인 대사와 상징적인 계절의 흐름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작품을 만나고자 했다"고 전했다.
 
첫 공연이 끝난 9일 오후 무대에서 출연진과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엔 평생 장을 담그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온 노인이자 퉁명스럽고 괴팍한 성격으로 장 만드는 일 이외엔 관심이 없는 인물 '정노인' 역의 박정순, 도시에서 사업을 하다 파산하고 빚쟁이를 피해 이리저리 숨어다니고 헤매다가 우연히 '정노인'의 거처로 흘러들어온 '박충만' 역의 홍도영이 출연한다.
 
여기에 '정노인'의 아내로 평생 가족과 남편을 위해 헌신한 '안노인' 역의 김담희, '정노인'과 '안노인'의 늦둥이 막내딸 '정인희' 역의 황재희, '정노인'의 장만을 사용하며 음식을 만드는 '밥집' 2대 CEO로 가업을 이어가는 뚝심 있는 수양딸 '김유정' 역의 도레미 배우가 등장한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이해 배우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 (왼쪽부터) 홍건모 연출, 박정순, 도레미, 김담희, 황재희, 홍도영 배우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첫 공연을 올린 소감이 궁금하다.
ㄴ 홍도영 : 항상 첫 공연은 떨리는 것 같다. 관객과 마주하는 느낌이 좋다. 선생님들이 이끌어주셔서 그 호흡을 따라가고, 믿고, 의지하는 공연이었다. '첫공'도 무난하게 끝난 것 같아서, 계속 개선해나가서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겠다.
 
도레미 : 빨리 가서 맥주를 마시고 싶다. (웃음)
 
박정순 : 앞으로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성공적이다. (웃음)
 
김담희 : 박정순 선배님 모시고 작품을 해서 행복하고, 좋은 후배들 만나서 엄청 좋았다. 연습할 때와 작품이 너무 많이 달라서 되게 좋았다. 연습할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연출 선생님께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공연해보니 많이 이해가 갔고, 그렇게 이해를 하고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장면에 관객들 반응 때문에 반대로 울컥해졌는데, 그래서 좋았다.
 
황재희 : 첫 공연을 마쳐서 기쁘다. 술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도 하고, 연습 속에 인물들을 마주하면서, 그걸 계속 익혀나가고 눈으로 보며 소통한 시간을 보냈다. 그전까지 답답하고, 인물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맞나 싶었느데 오늘 '첫공'을 통해서 그 단추를 끼운 것 같다. 인물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느낄 수 있었다. 작품에서 아빠랑 싸울 때 관객분들이 웃을지 몰랐다. 웃은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어서 같이 함께 동료 배우분들 선배님 좋아서 기쁘다.

작품을 직접 쓰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ㄴ 홍건모 : 이 작품은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장을 담그는 노인이라는 소재가 있고, 중요한 것이 잊혀가는 점에 대한 회상이 있다. 가족이라는 관념, 공간, 소통이라는 부분을 통해 가족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보여주고 싶었다.
 
   
▲ 홍건모 연출이 작품의 의도를 말하고 있다.
 
작품에서 장을 빚는 노인은 평생 장을 담그면서 살며,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된다. 여태 한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신 때문에 남겨진 '유정'이라는 아이는 내가 평생 해놓은은 것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다 밥을 훔쳐먹는 도둑 '박충만'이 등장하고, 인간성을 순식간에 판단한 후 일을 물려주는 요소가 있다. 이처럼 잊혀 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이어간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작품을 썼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올랐다. '우리 공연만의 강점'을 꼽자면?
ㄴ 홍건모 : 다른 작품은 잘 모르겠는데, 이 작품을 쓰면서 '으랏차차, 세우다!'에 당선될 때 10대 1의 경쟁률인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작품이 읽힐 때, 이 작품이 소통하고 공감을 가질 수 있겠다는 것에 기대를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정적인 느낌으로 담아가면서 소박하지만, 감정선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의 공연이 어떤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나?
ㄴ 홍도영 : 내가 맡은 배역은 현실에서 쫓기고 도피하는 인물이다. 그러다 사람의 진정성이나 기쁜 면을 캐치할 수 있는 명인 덕분에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인물이 악인이거나 나쁜 짓으로 사람을 죽였다면,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사람이 많다지만, 젊은 친구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가다 보면 다른 길을 통해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를 이 연극을 통해 배우는 것 같다. 젊은 세대가 그런 것을 담아가면 좋겠다. 잊혀가는 인간, 가족에 대한 부분을 배역 통해 알아갔으면 좋겠다.
 
도레미 : 빨리 공연하고 싶었다. 이런 작품의 느낌도 오랜만이었다. 다른 공연은 준비가 많이 안 되고 해서 하루 이틀만 더 연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은 관객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이 따뜻함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던 공연인 것 같다. 
 
박정순 : 그냥 매일 두 번씩 연습 잘했다. (웃음) 전통적인 이야기이며, 사라져가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다. 
 
   
 
 
김담희 : 따뜻한 작품을 항상 하고 싶었다. 이 작품은 내가 하고 싶은 공연이라 잘 맞은 것 같다. 이 작품을 할수록 의문가는 점은 군데군데 있었다. 펼쳐놓고 보면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따뜻하다. 아빠와 딸이 싸우지만 따뜻하고, 떠나도 따뜻하고, 사선으로 그으면 다 따뜻하게 연결되어서 특이한 것 같다. 그런 따뜻함을 관객이 안고 갔으면 참 좋겠다.
 
황재희 :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 극본을 읽으면서 딸과 아빠가 대립하고 싸우는 장면을 통해 엄마와 아빠 세대가 우리한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나는 내 자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에 흥미로워서 선택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고민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이 세대 간의 이야기가 포스터에 있는 문구처럼 "사는 거? 그냥 이 된장 같은 거 아니겠어"라고 본다. 명료한 답을 내릴 수 없지만, 생각은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그런 의미인 것 같다.
 
홍건모 : 준비하면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 동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이켜 봤다. 물론 지금 썼던 작품의 의미는 출세작이다. (웃음) 내가 생각한 사람 이야기의 첫 번째고, 연출 복귀작이어서 의미가 크다. 이런 작품을 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첫공'하면서 했다. 대본을 쓰고 연습할 땐, 이런 것과 저런 것이 있지만 내 생각을 많이 담을까 고민이 많았다. 마지막 장면을 방금 보다가 맨 뒤에서 울어서, 조연출이 달래주기도 했다. 누군가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을 잊지 말라고"하는데, 이 작품이 그런 느낌이다.

작품의 톤이 전체적으로 느리게 가는 것이 있었다. 영화로 보면 '롱테이크' 기법과 비슷한데, 그런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ㄴ 홍건모 : 이 작품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느끼면서, 여러 고민을 하다가 선택한 지점이 있다. 그 부분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게 있다. 사실 '안노인'은 귀신인데, 그들의 일상을 롱테이크로 잔잔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메주를 걸고, 콩을 삶는 모습이 그랬다. 장을 만드는 과정을 계절별로 보여줄 때도 대사가 없는 롱테이크 액션으로만 가져가는 서정적인 면을 극대화하고자 넣게 됐다.
 
   
▲ 황재희 배우가 막내딸 '정인희'를 연기했다.
 
이 작품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게 된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ㄴ 홍도영 : 가족이라는 의미의 비슷한 말로 '식구'가 있다. 밥을 먹는 사이인데, 집의 한 테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게 마음이나 눈빛, 시간의 흐름을 통해 그 사람들끼리 감정의 교류가 생길 때, 무엇을 맡겨도 되겠다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돌아갈 곳이 있겠다고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충만'이 치유의 과정이 있다. 가족도 잃고, 자신도 잃고 살아왔지만, 새로운 명인을 만나고 시간이 쌓여서 느껴가는 감정이 가족을 형상하는 의미가 아닌가 싶었다. 만약 다른 곳에서 가족이 형성된다면 피붙이 말고 나은 인생을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도레미 : 내 대사 중에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흉내 내면서 "우리가 다 같이 잘 살자고 그러는 것이지. 이히히히"하고 웃는 부분이 있다. 정말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 아니라, 우리 지금 같이 공연하는 팀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살을 섞어가며 살아가는 게 가족의 의미인 것 같다.
 
김담희 : 어렸을 때, 30대 중반, 50대 중반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어렸을 땐 오빠, 엄마, 아빠 틈에서 살면서 가족이 중요하고 가족 외엔 남이라 생각했다. 30대 중반에 결혼하고 살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결혼해서 살면서 가족도 내 편이 아니면 가족이 아니다. 50대 중반이 되니 남도 나랑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삶의 목적이나 그런 것이 비슷하면 가족이라고 본다. '정노인'과 비슷하다. 내 편인 게 가족이다. 나에게 야단도 치고 하지만, 정말로 내 발전을 위해 인생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족이 되는 것이다.
 
   
▲ (왼쪽부터) 도레미, 김담희 배우가 질문을 듣고 있다.
 
황재희 : 가족은 늘 옳은 것 같다. 가장 큰 아픔이고, 기쁨이고 그럴 수 있는 것은 항상 옳다. 지금 있는 이유도 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홍건모 : 식구라는 의미는 '혈연'만이 가족은 아니라고 본다. 가족이라는 의미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릴 땐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로 시작하다가, 20~30대가 되면 나와 같은 일 하면서 내 마음과 공감하고 울림을 주는 게 내 주변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 그러다 특정 누군가를 만나면 결혼도 하게 된다. 결혼하면 그들도 가족이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결혼하면서 내 집안과 그 아내 되는 집안의 사람 뭉쳐서 가족 되고, 호적상 가족이겠지만 그게 살붙이고 하면 피붙이 같은 가족 된다. 가족은 다 그런 개념이다. 나와 함께 같은 곳에서 살고, 나와 같이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이다. 공동체가 되는 게 가족이라 생각한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으랏차차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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