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추석 연휴,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관객과 함께하고 있다. 그중 이번 추석 문화계의 아이콘은 단연 '이중섭'이라 할 수 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다양한 '이중섭 콘텐츠'를 추석 연휴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가 8일 개봉했고, 17일과 18일엔 KBS1 다큐 드라마 '중섭'이 방영된다. 그리고 지난여름부터 시작한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끝으로 연극 무대로 눈을 돌리면, 연희단거리패의 '길 떠나는 가족'을 25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연출한 '길 떠나는 가족'은 천재 화가 이중섭의 극적인 인생과 예술세계를 연극 무대를 통해 보여준다. 식민시대와 조국의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중섭의 인생은 그야말로 '각본이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식민지 치하 시대에서 일본 여인과 결혼을 했고, 6.25 전쟁 중에 일어난 1.4 후퇴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중섭은 예술가를 억압하는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빈곤에서 치열한 예술혼으로 맞선 고단한 삶을 이어나갔다.
 
 
   
▲ 윤정섭 배우가 작품의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또한, '길 떠나는 가족'은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 기념 공연이면서, 작품의 초연 25주년 및 화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동시에 지난 4월 7일 세상을 떠난 김의경 작가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25년의 세월 동안 김갑수, 지현준 배우 등이 '이중섭'을 연기했다. 이번 공연에선 연희단거리패에서 9년째 활동 중인 배우 윤정섭이 '이중섭'을 열연했다.
 
공연이 끝나는 순간, 배우 윤정섭의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이중섭'의 힘들었던 삶을 고스란히 체험할 기회인데, 배우 윤정섭은 과연 '이중섭' 연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을까? 그리고 연희단거리패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본다. 먼저 배우 인사말을 영상으로 살펴본다.
 
 

'이중섭' 역할을 처음 맡게 됐는데, 느낌이 어땠나?
ㄴ 너무 큰 역할이어서 개인적으로 부담이 됐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도전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번에 고생을 많이 해서, 한 단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가 이중섭 연기를 위해 조사를 한 것이 있다면?
ㄴ 이중섭의 그림을 자주 봤다. 그림도 그려보고, 관련 책들도 봤다. '마사코'랑 주고받은 편지도 읽어 봤다. 인물 사진도 계속 바라보게 됐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중섭 전시가 열리고 있다.
ㄴ 다녀갔다. 그분의 그림 속에 모든 게 담겨있었다. 그림엔 이중섭의 성격, 당시 심리 상태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와 닿았다. 강렬하기도 하고, 고독해 보이고, 자기가 사랑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이 작품에 있다. 그런 것을 보고 고독한 예술가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미술관에 꽉 찬 관객들을 보면서, 정말 인기가 많은 화가 중 한 명이구나 싶었다.

과거 김갑수, 지현준 배우가 '이중섭' 연기를 이 작품을 통해 했다. 부담이 없지 않았나?
ㄴ 중압감이 들었다. 김갑수 선생님, 지현준 선배님 존재감이 엄청났다. 김갑수 선배님은 개인적으론 매체에서나 뵙지만, 지현준 선배님은 연희단거리패 출신 선배여서 같이 연극도 하고 대화도 많이 했다. '길 떠나는 가족' 공연을 할 때, 이야기 들은 게 많이 있었다. '이중섭' 연기는 쉽지 않고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내가 아는 지현준 형은 연극 몰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밝게 했던 사람이었다. '이중섭'을 할 때 점점 얼굴에 그늘이 생기면서, 검어지면서, 어두워졌다. 정말 사진 속의 인물과 점점 비슷하게 됐다. 평소 지현준 선배는 술도 잘 안 드시는데, 나랑 술 마시자고 하면서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윤택 연출이 "울지 말고, 냉철하게 연기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가?
ㄴ 이번에 선생님이 주로 잡으셨던 것이 있다. 이중섭이라는 인물의 그 어지러운 상황, 정말 예술이 존재하기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예술가의 극단적인 선택이나, 예술가의 정신을 집중적으로 담아 공연으로 한 번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내면으로 들어가서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같이 선생님과 말씀을 많이 나눴다.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림 공부는 따로 했나?
ㄴ 그림은 작품의 무대 등을 담당하신 이영란 디자이너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공부했다. 연습 전에 스케치하는 방법, 붓칠하는 방법, 그림 도구들과 친숙해지는 방법부터 소를 시간 내에 그려내는 연습까지 반복해서 했다.

노출 연기도 감행했는데, 꽤 부담됐을 것 같다.
ㄴ 연희단거리패에서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어서, 오히려 걱정한 것은 관객분들이 놀라지 않을까였다. 개인적으로 부담감이 있진 않았다. 노출을 통해서 그 장면이 강렬하게 표현된다면 나로선 좋은 일이다.

올해 초 콜롬비아 공연을 다녀왔을 때 이야기를 해 달라.
ㄴ 콜롬비아를 세 번째 다녀왔다. '햄릿', '피의 결혼'으로 갔는데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콜롬비아 사람들이 반응도 그렇고 연극을 더 좋아했다. 스페인어 자막이 나오는데, 자막의 반응에 피식 웃고, 편안한 반응을 해주셨다. 집중 있게 잘 보고 있구나 했다. 한 가지 걱정된 게 '길 떠나는 가족'은 우리 고유의 작품이었다. '햄릿', '피의 결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김의경 선생님 작품이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게 너무나도 전달이 감동적으로 잘 된 것 같다. 특히 예술가의 고통, 고뇌 등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연희단거리패의 주역 배우'라고 팜플렛에서 확인했다. (아니다. (웃음)) 어떻게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게 됐나?
ㄴ 용인대학교 연극학과를 다니고 있을 때, 극단 대표인 김소희 선배님이 강의하셨다. 그때 강의를 보며, 그분 연기하는 모습이나 연극에 대한 철학이나 삶이 마음에 확 빠져들었다. 내가 졸업하면 저분이 계신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4학년 때 극단에 들어가게 됐다. 윤광진 교수님이 이윤택 선생님과 '우리극 연구소'를 하고 계시는 데, 소장님이셨다. 그 영향으로 "연희단거리패에 가서 잠깐하고 나오지 말고 오래오래 있어서 열심히 하라"며 교수님이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교수님 수업의 학점을 모두 채운 후 극단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연희단거리패의 특징은 '합숙 생활'이라는 말이 있는데, 힘들지 않았는가?
ㄴ 용인대학교에서도 합숙생활을 했었다. 아무래도 용인에 있다고 자취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다. 연습실에서 몰래 잠도 많이 잤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극단에 들어와서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고, 쉽게 적응했던 것 같다.

김소희 배우와 이번 작품에서 모자 관계를 연기했다.
ㄴ 어떻게 보면 소희 선생님은 선배님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같은 존재일 수 있다. 나의 잘못된 지점이나 고쳐야 할 것,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익혀야 할 좋은 습관에 대해서 어머니나 큰 누나처럼 가르쳐주셨다. 극 중에서도 '어머니'가 '이중섭'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주신다. 그런 것에서 공감을 많이 받았다. 어떤 장면을 연기할 때, 연습이 잘되면 누구보다 기뻐해 주신다. 혼자 소대에서 미소 짓는 것이 어머니와 비슷해서 공감이 잘 됐다.
 
   
▲ 김소희(위) 배우와 윤정섭(아래) 배우의 연기 모습.
 
이윤택 연출은 프레스콜에서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에서 예술가들은 결국"이라고 말을 하다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힘들었다"라고 5초간의 정적 후 답변을 이어나갔다. 옆에 앉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ㄴ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한 고된 시간이다. 일한 것에 비해 누가 큰 인정을 해주지 않고, 어떻게 보면 외로운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동료들이 있지만, 우리를 누구나 알아줄 순 없다. 아무래도 열심히 하고 한다 해도, 그런 지점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선생님이 말씀을 멈추신 것은 '백석, 이중섭 선생님의 삶이 어땠을까'를 잠시 생각하셨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보면서 약간 놀랐었다.

'이중섭' 연기를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ㄴ 통영에서 그림 그리는 장면이다. 그 모습은 짧은 시간이고, 물론 약속된 대로 칠하는 그림이지만 그 시간 동안 흘린 땀과 거친 숨 등이 좋았다. 그 부분엔 대사가 잠시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공연 중에 관객들이 이중섭 선생님을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감정이 그 장면에서 막 올라오는데, 그 부분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ㄴ 말년에 병원에서 하는 말이다. "오마니, 모두가 세상과 자기를 위해 일하고 있는데 난 그림만 신주처럼 모시고 다니다가 이 꼴이 됐어요. 난 인간의 자격이 없어요. 난 인민의 적이구 춘화 작가에 불과해요. 그림은커녕, 예술은커녕,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몸이에요. 더 이상 이 호스는 꼽지 말아요"다.
 
   
▲ 윤정섭 배우가 뽑은 작품의 명대사는 이 지점에 등장한다.
 
이중섭이라는 분이 펼치고 싶은 예술을 하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몇십년이 지나서 빛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런 순간이 겹쳐지니 가장 인상 깊었다. 이 대사는 이중섭 본인이 직접 한 말로 알고 있었다. 전시회에 가서도 확인하니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이중섭 선생님이 했던 실제 말이 몇 군데 더 있었다. 그림을 팔았을 때, 사기꾼이 다됐다고 말하는 부분, 동그라미 이야기, 내 그림은 항상 가짜라는 이야기 등이 모두 실제로 하신 말이다.

자신의 연기 철학은 무엇이며, 이것은 이중섭과 어떻게 연결됐나?
ㄴ 아직 나는 예술가라고 말을 할 순 없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 사람만의 독특하고, 남들이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연극을 통해 배우를 하면서, 나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연기, 창조할 수 있는 인물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을 해내려면 얼마나 내가 더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불안 속에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할지 생각을 해보게 됐다.

남은 추석 연휴에 작품을 볼 관객들에게 당부해주고 싶은 말은?
ㄴ 이중섭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어머니, 형, 사랑하는 가족, 심지어 화가의 자리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자기 속에 있는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런 정신이 있다. 그 불굴의 정신이 지금 이 연극을 보실 관객분들에게 살아갈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가족과의 사랑, 부인과 이루지 못했던 사랑, 만나지 못했던 가족의 그리움도 주제이지만, 그 속에서도 예술의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지금 관객들에게 살아갈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본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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