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는 연출가가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연출을 지속해서 하니, 텍스트를 분석하고 파헤치는 식으로 흘러갔다. 텍스트에 나오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배우 말고 어떤 장식이 정말 필요하냐고 생각했다. 배우가 다 할 줄 알면 장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불필요한 건 드러내야겠다며 '미니멀리즘'으로 오게 됐다.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형태의 단순함이라 생각하는데, 형태의 단순함이 결코 경험의 단순화는 아니다. 이건 중요하다. 엄청난 깊이의 경험을 배우를 통해 드러내면 되지 않을까 해서 '미니멀리즘'이 붙은 것 같다. 그게 내 작품의 특징이라고 본다. - 김광보 연출
 
'미니멀리즘(최소주의) 대가'로 국내 연극팬들의 사랑을 받는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이 부임 1주년을 맞이했다. 김 단장은 1994년 극단 청우 창단 이후 '줄리어스 시저', '사회의 기둥들', '나는 형제다' 등 고전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텍스트를 아우르면서도 우리 시대와 맞닿아 있는 연극을 꾸준히 만들어 온 중견 연출가다.
 
지난 4월엔 한국 현대연극의 선구자인 이해랑을 추모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이해랑연극상의 26번째 수상자가 됐다. 이해랑연극상 심사위원회는 "절제의 원칙에 눈뜨고 세련된 작품들을 연달아 쏟아냄으로써 우리 현대 연극사를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선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를 만들어낸 연극과 함께, 보면서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은 작품 3편을 소개한다.
 
   
 
1. '가우데아무스' / 2001년
한국, LG아트센터 / 연출 : 레프 도진
ㄴ 러시아 '붉은 군대'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거운 내용인데, 그러한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만들었다. 충격이었다. 연극(Play)은 놀이라고 하는데, 그런 게 많이 투영되어서 배우가 진짜 논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노는 게 '플레이'라고 생각했다. 그 작품에 레프 도진을 정말 좋아하게 되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2. '햄릿' & '결혼' / 2015년
러시아, 말리 극장 / 연출 : 발레리 포킨
ㄴ 지난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레프 도진 연출을 만나, 말리 극장에서 안내를 받게 됐다. 그래서 발레리 포킨 연출의 두 작품을 보게 됐는데,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골의 '결혼'이었다. '햄릿'은 엑기스만 보여주고 한 시간 반 만에 끝이 났다.
 
그럴 수 있겠다고 해서 '결혼'을 봤는데, 2시간 30분 동안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데 보면서 너무 재밌었다. 브레히트가 말하길 "좋은 연극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배우의 연기가 재밌을 때 좋은 연극이다"라고 했는데, 대사를 전혀 몰랐는데도 너무나도 재밌었다. 결국 배우와 연출의 합이 잘 맞았다는 뜻이다. 움직임도 어떤 형식이 있었는데, 그게 쇼킹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녀와서 기가 죽어왔다. 러시아 연극이 이런 것이었구나. 또한, 배우가 스케이트를 타면서 연기를 했다. 후에 발레리 포킨과 이야기하면서, 세종문화회관에 3천석 규모의 대극장이 있다고 하니까 거기서 작품을 선보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나눴다.
 
3. '봄이 오면 산에 들에' / 1996년
한국,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 연출 : 손진책
예술의전당에서 최인훈 연극제를 할 때였다. 손진책 연출의 작품을 봤는데, 볼 때는 몰랐다.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보고 나니 이 작품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이게 뭘 까라고만 고민했는데,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그 작품의 무대엔 아무것도 없었다. 포대 같은 자루만 하나 깔려있고, 거기에 아무것도 없이 배우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무대에서 장식을 걷어내게 된 동기가 그 작품에서 비롯된 것 같다. 2000년에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공연을 대극장에서 처음 하게 됐는데, 어떻게 연극을 만들어야 할까 해서 온갖 걸 무대에 시끄러워 죽을 정도로 다 채워 넣었다. 손진책 선생께서 보고 나신 후에, 내 어깨를 툭툭 치시면서 "야, 힘 좀 빼" 하셨다. 그게 뭘 까라고 생각하면서 장식을 줄이게 됐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보고, 내 안에 잠재된 것의 물고를 틀어주신 그 말이 오늘날 나의 연극으로 온게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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