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까지 달리는 '환도열차' ⓒ 예술의전당


[문화뉴스]
연극 '환도열차'가 성황리에 달리고 있다. 극단 이와삼의 대표이자, 연극 '환도열차', '햇빛샤워', '여기가 집이다', '미국아버지' 등의 연출을 맡은 장우재 연출가는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유할 문제들을 던져준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외치지 않는 그는, 관객들의 '사유하기'를 적극 권장하는 연출가처럼 보인다.

 

   
지난 2월 본지와의 인터뷰를 가졌던 장우재 연출가 ⓒ 문화뉴스 서정준

그의 연극에는 인문학 용어나 인문학적 사유가 자주 등장한다. 인문학을 향한 그의 관심을 가늠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는 실제로 지난 2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철학과 '햇빛샤워' 광자의 삶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를 보는 것이 매우 재밌다"며, "인문학에 정통한 사람들이 미처 잡지 못할 수 있는 것들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짚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고자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유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장우재 연출가에게 영향을 준 인문학 도서는 무엇일까? 그가 소개하는 인문학 도서 3권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1. 최동환(해설), 『천부경』, 지혜의나무, 2008
'經(경)'이라니. 이 첨단의 시대에 케케묵은 '경'이라니. 그것도 9000년 전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욕 얻어먹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으로 젊은 시절 '혼돈'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정신이나 자산을 운운할 생각 따윈 없다. 그러나 젊은 시절 '나는 누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헤맬 때 그 많은 동양고전과 서양철학이 뜬 구름 같을 때 이 책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책은 중간까진 쉽고 나머진 기가 막히게 어렵다. 처음엔 너무도 쉬우나 마음에 콕콕 와서 박히고 뒤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현실과 멀어져 꿈속을 헤매는 듯 아련해진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 내가 잠시 쉬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꼭 해당 출판사 버전을 권한다.

   
 

2. 한병철, 『심리정치』,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한병철 선생의 글은 '진단은 좋은데 해법은 없다'라는 식의 평을 받곤 한다. 그러나 괜한 일이다. 해법은 우리의 몫이다. 인문학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그것의 효용으로 사유의 진행과정에 미리 색을 칠하는 것은 어리석다. 흐르는 사유를 있는 그대로 천천히 밟아가는 것. 그러다보면 스스로 맑아지고 달리 보이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더구나 『에로스의 종말』에 나오는 '할 수 있을 수 없음'에 대한 사유는 언어의 한계를 흔들고 다시 철학 본연의 임무인 지혜에 대한 사랑을 열어 보인다. 저자는 먼저 열어본 자에 불과하다. 읽는 우리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아야한다. 언제나 되뇌어지는 말로 (인용된) 제니 홀저의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라는 말은 신자유주의의 그림자가 나를 짓눌러 올 때 내게 힘을 준다.

   
 

3. 에른스트 곰브르치, 『서양미술사』,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03
첨언이 가당치 않다. 대학교의 교양수업의 교재로도 쓰인다 하니. 그러나 이 책과 나의 인연은 좀 특별하다. 영화아카데미 시절 (이제 「무뢰한」으로 돌아온) 오승욱 감독님은 지나가는 말로 감독을 하려면 이런 책 한 권 쯤은 완독해야 되지 않겠느냐 했다. 오갈 데 없는 시절 친구들끼리 짓씹듯 한장 한장 읽어나갔다. 끝까지. 그러고 있노라니 교양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왜 원근법이 탄생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노력했는지 느껴진다. 아직도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 언덕에 올랐을 세잔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럴 때 세잔과 나는 친구가 된 것 같다. 뮤지엄마다 인상주의화가와 그 외 몇몇의 인기 작가들의 그림들이 컵에 우산에 프린트되어 팔리고 있다. 그대는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가. 우리 이제 프레임 그 너머의 것을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그 출발로써 넓은 돗자리 같은 것을 제공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서양음악사나 그 외 현대에 언급되어지는 건축과 음악과 행위예술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곰브리치가 세계사를 쓴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미술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이유 같다.

장우재 연출가는 이 세 권을 소개하는 것 이외에도 "참고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를 3권 안에 넣지 못했다"며, "요새 그의 글에 심취해있다. 더구나 '서사윤리학'을 제안하는 일련의 그의 글들과 강의는 최근 나에게 중요한 선생이다"라고 덧붙였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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