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돌아 온 포수 신진호. 규약 해석의 관례화로 '2년 허송세월' 위기

▲ 7년 전, 부산 구덕구장에서 만났던 화순고 시절의 신진호. 당시 신진호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형, 오늘 시간 좀 되세요?"

필자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 사내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 보였다. 평소 밝은 목소리로 자신의 앞날을 준비해 왔던 친구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그를 만나러 밖으로 향했다. 지난해 화순에서 만난 이후 근 1년 만의 만남이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큰 덩치는 '나 운동선수요!'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뛰었던 포수 신진호(25)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어졌다.

신진호. 검색창에서 그의 이름을 입력하면 '축구선수 신진호(FC 서울)'가 먼저 나오지만, 사실 그도 꽤 잘 나갔던 포수 유망주였다. 2009년 화순고 3학년 시절에는 동산고 최지만(LA 에인절스)과 함께 고교 포수 랭킹 1, 2위를 달리던 인재였고, 그 해 열린 화랑대기 고교야구 대회에서는 이승현(LG), 홍건희(KIA) 등과 함께 모교 화순고의 준우승을 이끈 바 있다. 쓸 만한 포수가 필요했던 국내/외 구단들이 신진호를 눈여겨봤던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대상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였던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열스 구단은 신진호를 영입하기 전까지 동양 쪽 유망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로열스가 계약금 60만 달러에 그를 영입한 것은 그만큼 포수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로열스에서도 신진호에게 극동 스카우트를 최대 7년간 붙여주면서 영어를 배우게 하도록 배려했다. 남은 것은 빅리거를 목표로 마이너리그를 평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야구에 대한 재능은 줬어도, 순탄한 길로 갈 수 있는 '행운'은 부여하지 않았다. 잦은 부상은 필연적으로 출전 기회 제한이라는 페널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사이에 그도 '힘든 20대'를 보내야 했다. 타지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펼쳐야 했던 그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바로 귀국이냐, 도전이냐의 문제였다.

'돌아온 유망주' 신진호, '규약상 드래프트에 나설 수 없다?'

"지금은 아픈 데 없이 몸 만들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야구하기 싫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나이는 먹어가는데, 후배들은 매년 올라오고 있고. 그러다 보니, 출장 시간도 적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 미국에서 야구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신진호의 회상이다. 결국, 그는 지난 2014년 4월을 끝으로 미국 생활을 청산했다. 구단에 방출을 요청한 그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로열스 역시 그의 뜻을 존중하여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선사했다. 귀국을 결심한 만큼, 남은 것은 2년 뒤 다가올 신인지명 회의에 대상자로 참가하는 일뿐이었다.

▲ 지난해 2월, 화순에서 만난 신진호. 당시에는 이동석 세한대 감독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었다. 사진ⓒ김현희 기자

몸만들기도 순조로웠다. 무엇보다도 세한대 이동석 감독과 동국대 이건열 감독, 김동현 코치의 도움이 컸다. 몸 만들 곳을 찾던 그에게 '옛 스승'들은 기꺼이 그에게 훈련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몸 상태가 최상인 만큼, 앞서 국내로 복귀한 선수들만큼 지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운명의 신'은 또 다시 신진호에게 시련을 안겨줬다.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가 그의 드래프트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KBO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그의 신분이었다.

"KBO에 드래프트 신청하러 갔더니, MLB에 신분조회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한숨) 제가 임의탈퇴 신분이라서 보류권이 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방출을 요청했는데, 구단이 MLB 사무국에 방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던 겁니다. 황당했죠. 규약에 나와 있는 유예기간 2년은 방출일로부터라서 2년 뒤에 나오랍니다. '그럼 야구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라고 물으니까 가만있더군요. 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진호의 말을 경청한 필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극동 코디네이터를 통하여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확인 결과, 신진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MLB 사무국에 방출 요청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신진호로부터 이야기를 전달받은 로열스 구단이 그제야 움직였던 것이었다. 즉, 신진호가 로열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시점은 2014년 4월이지만, '조건 없이 방출된 시점'은 2016년 4월이었던 것이다. KBO에서는 이 점을 들어 2016년 4월부터 '해외파 유예기간 2년'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캔자스시티 로열스 측으로부터 이러한 답변이 돌아왔다.

"한 해에도 각 구단에서 몇십 명을 내보낸다. 매년 40명을 지명하면 결국 같은 숫자의 선수가 구단으로부터 방출된다는 뜻이다. 또한, 신진호와 같은 어떠한 선수들은 스스로 야구를 그만두게 된다. 가능성이 없는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야구를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각 구단이 MLB에게 방출(release) 요청 서류 제출을 잊고 못할 때가 자주 일어난다.

MLB 사무국 측의 말로는 지금도 몇십 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방출 요청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선수들이 몇만 명 된다고 한다. 신진호가 이런 케이스가 됐다. 구단 측에서는 신진호선수가 한국에 돌아가서 KBO 에서 선수생활 할 수 있게 자진 사퇴를 받아 주었다. 다만, 자진 사퇴를 받아 준 이후 방출 요청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2016년 4월에 이와 같은 상황을 전달받고 나서야 그날 바로 방출 처리가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신진호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행정 착오로 인하여 속절없이 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KBO에서도 "규약에 방출일로부터 2년 후에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라며, 2년 동안 독립리그를 알아보는 등의 방법으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음을 안내했다고 한다. 정말 KBO의 주장대로 규약에는 '방출일'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을까? 본 내용을 전달받은 필자는 바로 KBO 홈페이지에 등재된 '2016 KBO 규약'을 찾아보았다. 찾아 본 결과, 신진호를 비롯한 해외 유턴파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KBO 규약 제107조'에는 KBO의 설명과는 100% 일치하지만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 KBO 홈페이지에도 등재되어 있는 2016 KBO 규약집.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 선수의 명운을 달리할 수 있는 '여지'는 분명 있다. 문제는 KBO가 본 규약을 '방출일'로만 해석해 왔다는 점이다. 규약 문구 그대로 따지면, 달리 해석 될 여지도 있다.

KBO 규약집 제107조(외국 진출 선수에 대한 특례)에는 '당해 선수 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즉, KBO의 설명에서와 같이 '방출일자'라는 명확한 표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석이나 기타 부칙에 본 내용이 추가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규약 전체를 놓고 '방출'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KBO의 설명과는 달리, '방출'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본 규약대로라면, '계약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만료되어 구단으로부터 급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계약 종료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KBO에 문의를 한 결과, 다소 흥미로운 답변이 전달됐다.

"상식적으로 살펴 보았을 때, 선수 계약이 종료한 날은 방출일이 아닌가. 그래서 신진호 선수와 동일한 문제로 드래프트 신청을 해 온 선수들에게도 동일하게 '방출일로부터 2년'을 적용시켜왔다. 물론 신진호 선수처럼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본인의 방출 여부를 인지한 경우는 없었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필자가 KBO 답변에 흥미로움을 느꼈던 것은 바로 '상식적'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설령, 야구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 규약집을 보여주고, '2년'에 대한 해석을 '상식적으로 답변해 달라.'라고 하면, '계약이 만료되어 실질적으로 해당 회사(혹은 구단)에서 급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라고 이야기하는 상황도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O에서 말하는 '상식적'이라는 것은 그동안 '관례대로' 그렇게 처리해 왔다는 대답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진호는 정말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방출을 요청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필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극동 코디네이터로부터 신진호의 방출 요청 서류를 받아볼 수 있었다. 확인 결과, 사실이었다. 2014년 4월에 신진호 본인이 '야구에 지쳤으며, 한국에 돌아가겠다.'라는 뜻이 담긴 서류에 서명을 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서류와 KBO 규약집의 내용을 비교/분석해 보면, 신진호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선수 계약은 2014년 4월 부로 실효되어 더 이상 구단으로부터 어떠한 급료를 받지 않게 됐으며, 계약의 실효일자로부터 2년이 지났기 때문에 KBO로서도 '규약대로 하자면' 그의 드래프트 신청을 받아주지 못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 2014년 4월을 기점으로 자진하여 구단에서 퇴단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신진호. 계약 종료 시점을 '실질적으로 계약이 만료되어 급료를 받지 않게 될 때'로 해석하면, KBO가 올 시즌 신진호의 드래프트 참가를 막을 명분은 없는 셈이다. 사진ⓒ신진호 제공

물론 KBO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규약 제정 이후 관례대로 일을 처리해 왔고, 어떠한 선수도 예외 없이 이를 적용해 왔기 때문에, 신진호의 드래프트 신청을 받아 줄 경우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KBO는 그동안 '규약 내용에 대한 중의적인 해석'으로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고, '규약에 없는 내용으로 인하여 그 허점을 파고드는 사례'를 지켜보기만 했던 전례가 있기도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사회 등을 통하여 규약을 재정비해 왔다. '2016 KBO 규약 제107조'의 해석 역시 마찬가지. 이 조항 역시 KBO의 주장대로 '방출일'로만 볼 수 없는 정황들이 발견되고 있다.

신진호가 이러한 일로 어려움을 겪는 사이에 프로의 세계에서는 '임의탈퇴 규정'으로 인하여 한창 많은 이야기가 오간 바 있다. 그럴 때 KBO에서는 관련 규정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KBO를 향한 MLB 사무국의 '간접적'인 의견을 알 수 있는 메일 하나를 공개하며, 본 고를 마치고자 한다.

'It seems like the better solution is to have the KBO change their "stupid rule" (as you mentioned below) that is preventing Jin-Ho Shin from playing, as opposed to asking MLB to create a bogus trans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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