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J 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군함도' 이정현 "류승완 감독님과 함께라면, 무조건 OK" ①에서 이어집니다.

위안부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처음에는 관객들이 보기 힘든 장면들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도 했다.
└ 작품에 임하기 전부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다큐멘터리를 자주 접했다. 어느 날 류승완 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감독님이 북한 위안부 피해자 다큐멘터리를 하나 추천해주셔서 보게 되었다. 그 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해자분들이 당시 고문현장을 회상할 때 담배를 피우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

유곽 장면에서 칠성과 나눴던 말이 사실 슬프고 아픈 이야기라 내가 좀 더 슬프고 느리게 말하면서 연기했더라면 극적일 수 있었겠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모습들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감독님 또한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길 원했었고, 나 또한 다큐멘터리들을 떠올리며 그분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극 초반에 유곽에서 시중을 드는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 '강옥'과 떨어지게 된 소희를 일본군으로부터 낚아챘던 장면이 있는데, 그때 말년이에게서 엄마 같은 본능이 드러났다. 그 뒤 말년은 소희와 같이 다니다 창고에서 계약서를 받게 된다. 말년은 여기저기 끌려다녔던 위안부 피해자였기에 계약서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었는데, 소희가 옆에서 "저게 뭐냐?"고 물었을 때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 후, 소희가 악단 멤버 중 하나인 걸 전혀 모른 상태에서 기모노를 입고 일본 장교들 옆에 앉았을 때도 너무 슬펐다. 옆에서 시끄럽게 했다간 일본 장교들로부터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용히 하라고 말리는데, 그 와중에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소희가 안쓰러웠다. 아직 어린애인데 너무 잔인했다.

▲ ⓒ CJ 엔터테인먼트

사투리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최초 설정부터 그랬나?
└ 그 때문에 상당히 애먹었다. (웃음) 처음 말년의 설정은 서울말인데, 서울말을 쓰게 되면 너무 예뻐 보일 것 같아, 일부러 억세 보이기 위해 사투리를 쓰겠다고 감독님께 제안했다. 그런데 사투리는 어색하면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신경 쓰면서 연기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욕도 욕쟁이 할머니처럼 능숙해야만 했다. 욕을 따로 배우는 데에도 억양과 강도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후시녹음을 한 번에 끝내야 했는데, 사투리와 욕을 하는 데 어색한 부분이 느껴져 후시녹음을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때라 말하고 싶다. 욕이 찰지지 않는다고 해서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10일 뒤에 있는 다음 녹음 전까지 입에 사투리와 욕을 달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 녹음에 들어가서 오케이 사인을 받고 난 뒤에, 그동안 받아왔던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이 밀려 올라와 곧바로 뛰쳐나갔다. (웃음) 말년의 감정과 사투리, 욕 등 여러 가지 신경을 쓰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앞으로도 이런 경험을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평소에는 상당히 밝고 명랑한 모습인 것 같은데, 연기할 때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 그저 주어진 것에 열심히 할 뿐이다. (웃음) 촬영이 들어가면 그 인물을 표현하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연기에 집중하려면 상대역들 또한 중요했다. 연기도 일종의 상호작용인데, 나의 상대역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지 않으면, 상호작용이 되지 않아 몰입하기 힘들다.

현장에서 맞춰보고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려고 했는데, 상대역인 지섭 오빠가 칠성이 그 자체여서 따로 맞춰보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첫 테이크부터 모두가 만족했고, 특별히 힘든 게 없었다. 그래서 소지섭 오빠한테 감사하다.

▲ 영화 '군함도' 스틸컷

그러고 보니, 지난 기자회견에서 '소지섭 선배'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이후, 소지섭이 곰곰이 따져보아도 자신이 선배가 아니라고 말하던데? (웃음)
└ 안 그래도 아침에 선배 호칭 문제로 전화가 왔다. (웃음) 나한테 정확히 데뷔가 언제냐고 물어보길래 "정식 데뷔는 1996년이지만, 공식 인터뷰는 1995년부터 시작했다"고 답하니, 내가 선배라고 결론지었다. (웃음)

사실 선배라는 호칭을 듣기 싫은 게 괜히 늙어 보이는 것 같다. (웃음) 그리고 내가 데뷔할 당시였던 1995년에 지섭 오빠가 모델로 나오는 의류광고를 보고 심지어 그 의류를 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호칭 정리 안 하면 안되냐고 물으니까, "(선배님) 왜 그러세요"라고 하더라. (웃음)

그래도 "정현 씨가 체구는 작아도, 연기할 때만큼은 나보다 더 큰 존재다"고 극찬했다.
└ 나야말로 영광이었다. (웃음)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물어보겠다. 소지섭이 "회식자리에서 이정현이 뒤집어놨다"고 증언했는데, 평소에 현장에서 분위기메이커인가? (웃음)
└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때가 탄광 장면 끝난 직후 회식이어서 모두가 지쳐있던 때였다. 나는 중국 공연이 끝나자마자, 뒤늦게 합류했다. 때마침 내 노래인 '와'가 나오길래, 자연스레 차에 있던 부채를 가지고 와 곧바로 불렀다. 모두 쉬고 싶어 했었는데 '와' 덕분에 모두 하나가 되어서 즐겁게 놀았다. (웃음)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상당히 적응을 잘한 것 같다.
└ 크게 적응할 것도 없었다. (웃음) 촬영 중에 정민 오빠가 한 번은 "남자들 사이에서 촬영하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들었던 점은 못 느꼈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고, 캐스팅 라인업을 듣고 놀라움과 동시에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하며 부담도 됐다. 그런 걱정과 함께 촬영장을 처음 방문했는데, 기우였다. 그 때, 모두 본인의 업을 내려놓고 자신이 맡은 배역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 성격이 좋았다. 중기는 첫 만남부터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었고, 친동생처럼 친하게 지냈다. 지섭 오빠는 말수는 적지만, 묵묵히 뒤에서 챙겨주는 매너남이었다. 또한 촬영 중 힘들어하고 있을 때마다 정민 오빠가 다 모아서 술과 함께 영화 이야기하면서 북돋아졌다. 그 3명이 모든 걸 내려놓고 역할에만 집중함과 동시에 상대 배우들을 배려하는 환경을 만들어준 덕분에 나 또한 쉽게 연기할 수 있었다.

▲ 영화 '군함도' 스틸컷

'군함도'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였던 김수안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 수안이를 처음 알게 된 건 3년 전이었다. 당시 연상호·변형주 감독님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을 했던 적이 있는데, '콩나물'에 출연했던 수안이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다른 분들에게 수안이에게 여우주연상 줘야한다고 적극적으로 추천하기까지 했다. (웃음)

그 후, 수안이가 '군함도'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좋아했고 감독님께도 수안이에 대해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어필도 했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수안이는 잘해주었다. 수안이는 실제로 예쁘고 순수한 아이다. (웃음)

현장에서 수안이의 모습은, 항상 간식을 들고 다니면서 하나씩 입에 넣어주고 그랬다. 한 번은 수안이가 내가 출연했던 '스플릿'을 보고온 뒤에 '언니는 왜 이렇게 이쁘신가요, 언니를 토토가에서 처음 봤는데 가수시죠?'라는 내용의 손편지도 써줬는데, 귀여웠다. (웃음) 촬영현장의 마스코트였다.

▲ ⓒ 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군함도' 출연 배우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가족보다 더한 끈끈함이 느껴진다.
└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군함도'라는 작품을 만난 것도 좋지만,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라는 배우와 류승완 감독님 등 사람을 얻었다는 자체가 나에게 가장 소중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소름끼쳤던 것은 수백 명의 단역배우 분들의 연기력과 그 분들의 열정이 강했다. 그래서 감독님의 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분장 팀 인원 수가 극히 적어 모든 배우들을 일일이 봐주기가 힘들었는데도, 어디가 부족한 지 서로 봐주면서 흙칠해주는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랬기에 체력적으로 힘든 현장이었음에도, 배우들이 촬영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고 자신의 분량이 끝났음에도 끝까지 남아있었다. 모두가 그 현장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무사고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 영화 '군함도' 스틸컷

듣다보니, 류승완 감독은 제안할 때마다 스스럼없이 승낙해주는 것 같은데
└ 그렇게 감독님께 제안을 많이 하진 않았다. (웃음) 완성본에 나오진 않았지만, 유곽 장면에서 담배를 물고 노래를 하는데 선곡하는 데도 내 의견을 많이 들어주시곤 했다.

현재 '군함도'가 여러 가지 의미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부담감 또한 느껴질텐데
└ 관객들의 '군함도'를 향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아져서 너무나 긴장된다. 보면서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망하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아무래도 2시간 10분이라는 상영시간 안에 모든 걸 채워야 했기 때문에 버린 내용도 제법 많은 거로 알고 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열정이 담겨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군함도'가 개봉하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덩케르크'·'택시운전사'와 부딪치게 된다. 경쟁작들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송강호 선배님을 좋아하기에 '택시운전사'도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

▲ ⓒ CJ 엔터테인먼트

끝으로 향후 계획은? 배우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활동했으니 앨범 소식은 없는지?
└ 현재까지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연기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수를 은퇴한 게 아니므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모습으로 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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