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J 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사람마다 그를 기억하는 게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1996년 영화 '꽃잎'에서 선보였던 광기 어린 연기력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이는 1999년 세기말을 장식하는 퍼포먼스와 부채, 손가락 마이크로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을 생각할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모습 다 이정현을 대변하는 이미지며, 영화계와 가요계 모두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휩쓸며 범상치 않은 재능임을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되었다.

이정현은 2011년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을 통해 10여 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한 이후, 남긴 족적 하나하나마다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명량'이 천만 관객 돌파하는 데 일조하는가 하면, 다음 해에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청룡의 여인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2년 뒤인 올해, '군함도'를 통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끝마쳤다.

'군함도'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오말년' 역을 맡은 이정현은, 극 중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면모를 보이는 동시에 소녀들에게는 큰 언니 같은 버팀목이었다.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오말년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언제나 밝음' 그 자체였다. 이정현과 함께 '군함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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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지?
└ 워낙 긴장해서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 영화 볼 때마다 현장이 너무 생각나고 힘들었던 점도 생각나서 객관적으로도 못 보겠더라. 개봉하고 나서 극장에서 제대로 보려고 한다.

평상시에도 떨려서 잘 못 보는 편인가?
└ 아니다. 유독 '군함도'만 그랬다. 언론 시사회 전날에도 나를 포함한 배우들 모두 잠을 잘 못 잤다. 배우들 또한 언론 시사회 때 '군함도'를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그래서 떨렸다. 다행히 언론시사회 때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했고, 다행이었다.

'군함도'를 참여하게 된 계기는?
└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님이 같이 하자고 제안하셨다. 그 이야기 듣자마자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다. 강 대표님이 그래도 대본을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읽은 후 나의 결정은 "무조건 하겠습니다"였다.

'군함도'가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가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군에게 당하고 슬퍼하는 모습만 그려졌다. 이에 반해, 위안부 피해자로 등장하는 '말년'은 매우 강인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당당하게 맞서는가 하면, '소희'에겐 엄마 같은 존재이자, 같이 끌려온 소녀들에겐 정신적인 지주였다. 또한, 탈출을 시도할 때에는 거침없이 총을 집어 드는 등 '원더 우먼'이었다.

작품에 참여하는 내내 '류승완 감독님의 여배우는 이렇다'는 걸 느꼈다. 모든 여배우가 하고 싶었을 텐데, 이런 역할이 나한테 돌아왔다는 자체에 크나큰 감사함을 느꼈다.

▲ 영화 '군함도' 스틸컷

만약 캐스팅 당시 대본이 이상했어도 선택했을 것인가?
└ 류승완 감독님 작품이면, 묻지도 않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웃음) 배우로서 평생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다. 황정민 선배님이 감독님과 세 작품을 같이 했다는 게 부러웠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왜 같이 하는지 알게 되었다. 멋진 분이셨다.

옆에서 봤을 때, 황정민의 어떤 점 때문에 류승완 감독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는가?
└ 제한된 촬영 시간과 200명 넘는 배우들이 크레인 카메라 하나만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많아 어느 누구도 실수해선 안 됐다. 게다가 액션도 격렬하고 폭탄이 터지기도 해서, 통솔하기 힘든데, 정민 오빠가 종종 감독님 대신 다른 조·단역 배우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그 모습에서 열정을 느꼈다.

또한, 촬영이 끝나면 배우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는 등 사람들에게 잘했다. 그런 점이 멋있었고, 큰 사고 없이 촬영을 잘 끝날 수 있었다. 정민 오빠 덕분에 모두가 한 가족처럼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역할 때문에 체중까지 감량했었는데, 고생한 만큼 얻은 게 있었나?
└ 최초에 나는 다이어트 대상자가 아니었다. '군함도'를 준비하면서 참고했던 다큐멘터리에서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빼빼 마른 상황에서 수모를 당하셨던 모습을 보고 감독님께 찾아가 다이어트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개의 장면에서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살 빼는 게 굉장히 힘들 것 같았는데, 현장의 모든 출연 배우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고, 현장에 식단 관리 차량도 있어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그들과 동참했다는 것에 기뻤다.

▲ 영화 '군함도' 스틸컷

36kg까지 뺀 상태에서 총까지 드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 무척이나 힘들었다. 말이 5kg였지, 총을 처음에 잡았을 때 체감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총이 너무나 길어서 몸의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견뎌내고 들 수밖에 없었다. 촬영현장 자체가 너무나도 치열했고, 나 하나 잘못되면 모든 게 잘못된다는 배우로서 책임감이 매우 컸다. 또한, 장전이 안 되면 어쩌나, 그리고 폭탄 장비 등에 스태프 및 배우들이 다치지 않을까 등의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액션을 하게 되어 순서를 외우는 것 자체도 일이었다.

다행히 옆에서 지섭 오빠가 잘 챙겨주었다. 옆에서 순서를 계속 반복해서 알려주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액션 장면 이후 모니터링 했을 때, 다행히 잘 나와서 좋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다른 배우들 또한 자기 촬영분이 끝났음에도 안 갔다. 모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자기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나왔다.

촬영 중 다친 데는 없었나?
└ 다리에 화상을 조금 입었는데,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 (웃음) 볼 때마다 뿌듯하다. 배우들이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다들 숙소에 돌아와 샤워하면서 다친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 그래도 다음날 촬영현장 나가면 잊어버렸다.

▲ ⓒ CJ 엔터테인먼트

어떻게 하다가 화상을 입었는지?
└ 폭탄이 많이 터지는 촬영이 많았다. 그 와중에 한 번 넘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였던 것 같다. 그래도 넘어진 상처 보면서 뿌듯해하긴 처음이었다. (웃음)

촬영 중에 전우애를 느낀 건가? (웃음)
└ 그런 것 같다. (웃음) 마치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프지도 않고, 참을 만했고, 그런 것들이 좋았다.

'오말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가장 와닿았을 때는 언제였는가?
└ '칠성'과의 첫 만남에서 말년의 강인함이 드러났던 것 같았다. 그 첫 등장을 감독님이 좀 더 극적으로 연출하려고 쓰신 것 같은데, 그게 지섭 오빠와 현장에서 첫 촬영이었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찍으면서 민망했지만, 한 번에 넘어갔다.

촬영이 끝난 뒤, 류승완 감독님이 "첫 촬영이었는데도 둘이 너무 좋다. 둘 다 칠성과 말년 그 자체라서 고맙다"고 전화까지 하셨다. 오히려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내가 다 감사했다. (웃음) 그리고 칠성과의 유곽 장면에서 말년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전부 설명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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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이 첫 촬영 끝나고 배우한테 먼저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는 게 흔치 않은 일인데
└ 합류하기 전에 감독님에 대한 소문으로는 현장에서 무섭다고 알려져서, 실제로 무서우실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본 류승완 감독님의 모습은 항상 촬영 준비하기 전에 독서를 하시고, 배우들에게 설명 잘해주셨다. 또한, 신사적이셨다.

그리고 감독님은 오로지 영화밖에 생각 안 하시는 분이다. 감독님으로부터 칭찬 한마디를 한 번 듣게 되면 배우 입장에서 힘이 나고, 그 덕분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느꼈을 것이다. 그만큼, 감독님이 연출자로서 중심을 잘 잡아주셨다.

[문화 人] '군함도' 이정현 "나의 가족,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김수안"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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