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셜 라이어' 프레스콜 현장에서 질문에 답변 중인 권혁준 배우 ⓒ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이번 '스페셜 라이어'가 기폭제가 돼서 '라이어' 공연하는 우리 배우들에게 더 힘이 되면 좋겠어요."

지난 7일 연극 '스페셜 라이어'에서 포터 하우스 형사로 활약 중인 배우 권혁준과 만났다.

7월 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되는 연극 '스페셜 라이어'는 전 세계에서도 세 번째로 장기 공연 중인 '라이어'의 20주년 기념 특별 공연이다. '라이어'에 몸담았던 배우들부터 새롭게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배우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존 스미스 역에 이종혁, 원기준, 스탠리 가드너 역에 안내상, 서현철, 안세하, 메리 스미스 역에 슈, 신다은, 바바라 스미스 역에 나르샤, 손담비, 오세미, 포터 하우스 역에 우현, 권혁준, 김원식, 트로우튼 역에 김광식, 안홍진, 오대환, 바비 프랭클린 역에 홍석천, 김호영, 병헌이 출연한다.

두 집 살림을 하며 지내는 존 스미스가 우연히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로 인해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상황을 코믹하게 그린다.

▲ 연극 '스페셜 라이어' 공연 장면 ⓒ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자나깨나 '라이어'를 아끼는 권혁준 배우는 "연출보다 배우로 불리고 싶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연기하는 사람'에 둔 연극인이다. 4,000회 이상의 라이어 공연을 한 것으로 알려진 '라이어 장인'인 그는 존 스미스부터 스탠리 가드너, 포터 하우스, 트로우튼, 바비 프랭클린까지 모든 남자 캐릭터를 다 맡아봤다. 처음에는 한 번씩 출연하고 쉬기를 반복하다 파파프로덕션에 소속된 지 7년 정도가 지났고 연출까지 맡아서 한지는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1,000번도 넘게 공연을 보고, 대본을 읽었다는 그는 이번 '스페셜 라이어'에서 포터 하우스 형사로 출연해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연기 내공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그에게는 '스페셜 라이어' 역시 자신이 해왔던 '라이어'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TV나 스크린에서 볼 수 있던 유명 배우들과 무대에서 함께하는 '라이어'일 뿐이다.

 

대중적인 관객을 노리는 작품을 '상업극'이라며 분류하기도 하는 요즘 '라이어'는 철저한 상업극으로 분류된다. 그것은 그가 처음 '라이어'에 발을 내민 14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게다가 '코미디' 장르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 역시 마찬가지. 선배들은 그를 '돈 벌려면 회사를 다니지 이런 걸 하냐'며 많이 꾸짖었다고 한다.

"오픈런 공연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기에 더 잘 해야 했어요. 정말 죽기 살기로 했죠. 출연료를 낮추기 위해 신인 배우를 기용하거나 하지도 않았죠. 경력이 있는 배우들이 많았어요. 제가 막내였으니까요. 나중에 절 꾸짖던 선배들도 '라이어'를 하러 왔습니다. 와선 다들 쉽게 볼 공연이 아니라며 혀를 내둘렀죠.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연극 하나 다들 소홀히 만들진 않겠지만, '라이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그는 거듭해서 "'라이어'는 결코 쉽게 만든 작품이 아니"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스페셜 라이어'가 끝난 뒤 공연을 이어가야 할 하반기 '라이어' 팀 역시 10시간 연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힘들게 공연을 이어온 증거로 '라이어'는 35,000회 이상 공연하며 누적 관객수 500만 이상을 내세우는 공연이 됐다. 그 가운데 권혁준 역시 '라이어'의 한 페이지, 아니 몇 페이지 정도는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사람이 됐다.

'라이어 장인'인 그에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물어봤다.

너무 긴장하거나, 너무 익숙해진 배우들이 부딪혀서 다치거나 하는 사고는 정말 많다고 한다.

"메리가 입장하다 머리를 부딪혀서 피가 줄줄 흘러요. 그런데 존은 이마에 반창고 하나 붙이고 누워있죠. 메리가 피를 줄줄 흘리며 '여보 괜찮아?'하는데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그런 그가 가장 강조한 건 '대본 읽기'였다.

"저는 이제 배우들이 처음 오면 '잘하는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요. 대신 대본을 많이 읽으라고 해요. 대본이 50페이지 정도 되는데 '100번 읽어보면 뭐라도 보인다'고 하죠. 적게 읽은 티가 나면 혼쭐을 냈어요. '라이어'를 당장 잘 소화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이걸 통해 너에게 알게 모르게 뭔가가 쌓일 테니 경험으로 삼으라'고 하죠. 그냥 100번 읽어서 모두 연기를 잘한다면 누가 연기를 못하겠어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대본을 읽고, 연출을 하면서 많이 도움을 얻었죠."

그는 이번 '스페셜 라이어'의 스페셜한 배우들 역시 바쁜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계속해서 대본을 연습해오는 모습이 보인다며 웃음 지었다.

"잠깐 지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무대를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며 배우들을 끌고 가는 베테랑 선배들의 리더쉽과 민감하거나 까탈스러운 사람 없이 좋은 팀워크를 보여주는 것 역시 이번 공연의 긍정적인 요소다.

 

그런 그에게 '스페셜 라이어'의 장점을 묻자 '배우'를 꼽았다. 기존에 '라이어'를 하던 배우들이 아니라 평소 무대에서 보기 힘든 배우가 동숭홀 무대에서 공연한다는 점 자체가 매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리딩만 해도 웃음이 빵빵 터질 정도로 검증된 게 '라이어'의 대본인 만큼 배우가 달라진 것만으로도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번 '스페셜 라이어'의 화려한 캐스팅은 이미 '라이어'를 봤던 수백만 명의 관객들 입장에서도 흔치 않은 기회다.

'스페셜 라이어'에서 공연하는 캐스트 사이에도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싶었다. 그에게 혹시 더 잘 맞는 조합이 있는지 묻자 "그런 건 없다"며 딱 잘라 대답했다. '어떤 배우든 자신과 연습을 많이 맞춰본 배우가 호흡이 좋다'는 것. 평범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합을 맞추는 배우와는 꼭 공연 전에 구체적인 동선이나 행동을 맞춰본다고 한다.

수 백 명의 배우와 함께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부인만 100명 정돈 될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린 그는 처음 맡은 존 스미스가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두 집 살림이 저랑 맞는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우유부단하고 착하고, 뾰족하지 않게 둥글둥글한 성격이 저랑 닮았죠. 또 극의 선장 역할을 맡은 것도 매력적이죠. 일곱 명의 배역을 모두 분석해야 존의 길이 보이거든요."

존 스미스는 상황극을 주로 끌고 가는 역할이다. 잠시라도 극에 대한 집중력을 놓게 되면 배우들도 관객들도 모두 붕 떠버릴 수밖에 없다. 혹시 수많은 공연 중 극을 '놓아버린' 적도 있는지 묻자 "칭찬이라면 칭찬인데 남들이 '최소한 극을 놓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며 쑥쓰럽게 웃던 그는 극을 진지하게 바라보면 불법인 이중 결혼 생활 중인 존 스미스지만,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최선으로 진심을 더해 관객들이 던지는 돌의 개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다고 했다.

"존의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두 부인이 상처받고 그 사이에서 존 역시 마음 고생하는 장면이 많아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갈 수 없는 상황. 그런데 또 그 정적인 상황을 보면서 관객들이 웃는 그런 모습이 '라이어'의 매력 아닐까요?"

 

문득, 어째서 이 배우가 '연극'에 빠지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양평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원래 미술을 했었다. 학업에 열중하지 못한 그는 "나중에 알았지만, 공부가 가장 성공하기 쉬운 것 같다"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래도 공부를 못한 대신 얻은 것도 있었다. 여러 학교의 예체능계 친구들을 만나서 고등학교 졸업식만 열 군데를 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 중 연극반도 있었고 친구들의 공연을 보며 '재밌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학창시절이 지나고 미대 입시를 떨어진 뒤 연출을 꿈꾸던 친구와 함께 연극의 메카로 꼽히던 대학로로 무작정 올라왔다. '서로 경쟁해야 되지 않겠냐'며 친구와는 다른 극단에 들어간 그는 극단 시절을 "그땐 다 그랬다"며 회상했다.

"그땐 다 그랬어요. 일인 다역을 했죠. 극장 청소, 세트 제작, 기획, 홍보, 매표, 오퍼, 공연까지 했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는 그는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당시의 선, 후배, 친구들은 많이들 무대를 떠났지만, 특출난 것 없이 무대에 남았다는 그는 자신을 동그라미도, 엑스도 아닌 '세모'라고 표현했다.

40대 중반의 '세모' 배우에겐 어떤 꿈이 있을까.

"저는 존중, 믿음, 배려를 무대에 대한 가치관으로 삼아요. 베풀 줄 알고, 믿을 줄 알고, 배려할 줄 알면서 살아가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잘 지키고 있다고 하긴 그렇지만요(웃음)."

 

막연하게 대학로에 도전했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 그에게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그는 '라이어' 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에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카스 같은 작품이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라이어' 보러 오셔서 '옛날에 이런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이거 보고 힘냈었지'하고 지친 마음을 쉬다 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라이어'가 아니어도 연극에 더 많이 관심 주시면 좋겠습니다."

줄곧 나보다 다른 이를 생각하는 배우. 진짜 스페셜한 배우는 사실 권혁준 그가 아닐까.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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