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2일 오후 연극 '프로즌' 개막을 앞둔 정수영, 박호산 배우를 만났다.

연극 '프로즌'은 극단 맨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작품으로 유아살해범 랄프와 그에게 딸을 잃고 20년간 고통받은 낸시, 랄프의 범죄를 질병이라 주장하는 의사 아그네샤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았다.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7월 16일까지 공연한다. 박호산 배우는 이석준, 이창훈 배우와 함께 랄프를, 정수영 배우는 아그네샤를 맡았다.

사실 '프로즌'을 보기 전 벌어진 이 날 인터뷰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공연을 보면 이해가 된다'는 요지의 말들이 차지했다. 실제로 공연을 보고 온 느낌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동작 하나하나에도 각 인물의 생각, 다른 인물에 대한 반응들이 묻어나오기 때문에 끊임없이 극에 몰입하며 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프로즌'이다.

공연을 본 후에는 극 중에서 존재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실존하고 있을 랄프, 낸시, 아그네샤, 로나 등의 삶이 사회 여기저기에 묻어나 보였다.

연습 도중 만난 두 배우 역시 그랬다. 장난기 어린 말투로 편안하게 대답하면서도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정말 극 속의 랄프와 아그네샤를 보는 듯한 눈빛, 행동, 표정이 스쳤다.

글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던 두 배우와의 여러 가지 이야기.

 

#프로즌

연습 막바지인데 힘들지 않은지?

ㄴ 정수영: 전 솔직히 힘들다.

ㄴ 박호산: 저도 힘들지만, 예상했던 거다. 초연 때는 이렇게 힘들지 몰랐었다면, 이번엔 원래 힘들 거로 생각하며 시작했다. 랄프는 또 셋이나 있는데 (나머지) 둘이 죽어난다.

ㄴ 정수영: 원 캐스트고 새로 들어오는 배우가 한 명이니까 그 친구의 최대치를 해봐야 하니까 우리가 대충 할 순 없다. 하루에 두 번씩 런스루 돌고 있다.

초연을 못 봤던 사람들에겐 '이런 연극까지 공연되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센 작품이다.

ㄴ 박호산: 그렇지만, 심정이나 상황이 센 거고 표현이나 시각적인 수위가 세진 않다.

그런데 배우들은 오히려 그게 더 힘들지 않나?

ㄴ 박호산: 그렇다. 심정적으로 바닥을 쳐야 한다. 아마 엄마(우현주 배우)가 제일 힘들 거다. 우리 작품에 여러 가지의 슬픔이 다 나오는데 '자식을 잃은 엄마의 슬픔'이 가장 크지 않을까.

'랄프'가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의사 역을 맡았다. 아그네샤의 슬픔은 뭔지.

ㄴ 정수영: 아그네샤는 제일 친한 친구의 남편 데이빗과 10년 동안 이 연구를 같이 한 정신과 의사다. 그런데 데이빗이랑 잘 지내다가 우연히 불륜을 저지르고 마는데 그 다음다음날 데이빗이 차에 치여 죽는다.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김광보 연출님이 세 배우를 퇴장시키지 않는다. 한 명이 독백할 때 나머지 둘이 그 대사에 영향을 받게끔 하려는 거라고 하셨다. 비록 낸시나 랄프가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데이빗과의 관련된 사건이나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서로가 유기적으로 충동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니 셋이 각자 가진 감정이 극대화돼서 다른 배우에게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리액션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이야기만 들어도 어려운 연기가 될 것 같다. 낸시와 랄프는 '용서'라는 화두가 있는 것 같은데 아그네샤도 데이빗과의 불륜을 용서 받을 수도 없어진 그런 상황이 있지 않나. 작품에서 '용서'가 화두가 되는지 궁금하다.

ㄴ 정수영: 결국 친구에게 사실을 고백하려고 하지만, 하지 못한다.

ㄴ 박호산: '용서'는 화두일 뿐, 주제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용서가 복수일 수도, 무기일 수도, 가책일수도, 자신에게 들이대는 칼날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용서를 갈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결국 작가는 '용서'를 던지고 그게 정말 화해의 방법인지 묻는다. 실제로 그렇게 쓰이지 않지만, 극에서 다들 서로를 용서한다. 극 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질병과 죄, 악과 병 이렇게 대비되는 화두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아그네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미지수다. 우린 다들 서로 화합하고 용서하며 세상을 살자고 말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세상이 그런 이상적인 방향으로만 가진 않는다는 거다. 이게 어렵긴 하지만, 작품을 보면 이해가 된다. 말로는 어렵다. 전 처음에 대본만 봤을 때는 이게 왜 '프로즌'인지 어리둥절했는데, 초연하면서 왜 '프로즌'인지 느낌이 왔다.

ㄴ 정수영: 다들 제가 '프로즌' 한다니까 저보고 엘사냐고 하더라(웃음). 그런데 정말 무엇이 용서이고 복수인지, 무엇이 질병이고 죄악인지, 그런 모호함을 계속해서 던지는 작품이다.

저는 아동학대를 당한 '랄프'가 커서 유아살해범이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지 않더라. 도대체 어떻게하면 그런 사람의 삶을 연기할 수 있는지.

ㄴ 박호산: 소아성애만 해도 센데 살인까지 간다. 우린 극악무도라고 하는데 그걸 과학자적인 관점에서 왜 저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고민하는 게 사회적인 시선이다. 극에선 배역(아그네샤의 입장)으로 표현되지만, 형벌을 주고 용서하자, 격리하자, 사형하자며 여러 담론이 있는 것처럼 '프로즌'에서도 똑같다. 그렇지만 모호한 결론은 아니고 분명한 결말이 있다. 어쩌면 랄프는 처벌받은 걸지도 모른다. 다들 용서했고, 연구도 계속되지만, 그 속에서 처벌받는다. 그래서 용서가 복수가 되기도 한다.

ㄴ 정수영: 저 같은 경우 데이빗이 마약에 취한 트럭 운전사가 그를 치어 죽인 건데 마지막 장면에서 낸시에게 그 사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근데 아그네샤는 랄프에 대해서는 계속 그의 범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증상'이라고 말하면서도 트럭 운전사는 용서하지 못한다. 트럭 운전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알 수 없고, 과거에 학대를 당했을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한 증오는 가지면서 랄프에겐 '증상'이라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가진 양면성이 느껴진다.

랄프는 '남의 이야기'고 트럭 운전사는 '내 이야기'니까 그렇게 보게 되는 면이 있겠다. 랄프는 단순히 대본에 적힌 소아성애나 연쇄살인범이라고 정의하기보단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ㄴ 박호산: 저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단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려 했다. 예를 들면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정신병이 있다면 감형을 해주지 않나. 그게 과연 맞는 일인지. 사회는 그를 어떻게 보는지.

ㄴ 정수영: 사형제도도 그렇다.

ㄴ 박호산: 정말 죽을 짓을 한 범죄자에게도 사형 제도가 옳은 일일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사회의 담론을 공부하는 게 작품에 도움 될 것 같다. 랄프가 가진 병의 증상을 공부하고 파고들기보다는 왜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제도들이 변화해가는지를 공부하는 게 작품을 보실 때나 보신 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ㄴ 정수영: 무엇이 평등하고 무엇이 차별인지.

배우들은 그런 고민에 관해 각자의 결론이 있는지.

ㄴ 박호산: 이 작품이 원래 각자의 결론이다. 1막은 셋의 독백이다. 정신과 의사지만 정신과 환자 같은 사람의 독백, 딸을 잃은 엄마의 일상, 가해자의 평범한 일상, 이런 이야기들을 독백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2막에선 둘씩 마주치며 어떤 결론으로 간다. 이 작품은 이미 1막 때 다들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의 결론도 관객과 같다. 우린 엄마의 편일 수도 있고, 랄프의 편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죄를 지은 자라고 해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게 정당할까. 이런 고민처럼.

막연히 제 생각으로만 보면 아동학대의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가 되는지 궁금하다.

ㄴ 박호산: 그걸 연구하시는 박사님이 여기 계신다(웃음). 대신 이야기해드리면 학대받는 아이는 보통 부모가 '아이 때문'이라면서 학대를 한다. 랄프에겐 그래서 아이를 위로하는 방법이 폭력이 된 거다. 나랑 친한 친구(아이)가 울면 '울지 마, 울지 말라니까!' 하면서 폭력을 쓰는 거다. 뇌가 틀어져 버린 거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자기가 당한 걸 안 돌려주려고 하지 않나. 예를 들면 담배를 많이 피우는 아버지의 아이는 담배를 싫어하게 되니까.

ㄴ 정수영: 조금 다르다. 예를 들면 이건 좀 사소한 거지만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나중에 자기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더라. 이런 개념을 확대하다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ㄴ 박호산: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약 랄프가 정상인이면 어릴 때 부모에게 그런 학대를 받으면 '나한테 왜 그러지? 내가 뭘 잘 못 해서일 거야'라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랄프는 어릴 때부터 학대당하면서 뇌에 이상이 생겨서 점점 더 얼어붙은(프로즌) 사람이 된 거지만, 정상인인 낸시나 아그네샤도 마찬가지로 굳어진 거다. 상대를 용서할 수 없는 상태로. 랄프를 보며 아그네샤가 계속해서 그를 증상이라며 옹호하지만 정작 아그네샤도 아프다. 트라우마, 죄책감에 시달린다.

ㄴ 정수영: 아그네샤는 계속 랄프에게 데이빗의 모습을 투영한다. 저 개인적으로는 랄프가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어요. 합법적이지 않다는 것' 이런 대사를 할 때 저는 데이빗과의 일을 떠올리며 되묻는 거로 생각했다. 서로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니까 머릿속에는 랄프를 보며 계속 데이빗이 떠오르는 거다.

그럼 2막에서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할 때도 사실은 각자 서로가 보고 싶은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거나 마찬가지겠다.

ㄴ 정수영: 대화가 스토리 위주가 아니다.

ㄴ 박호산: 여기서 토의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데이빗을 떠올린다는 게 외모적인 면이나 그런 직접적인 게 아니라 우리 둘이 예전 '미친키스'를 했는데 이번 '미친키스'의 장정을 보면서 박호산의 장정을 떠올리게 될 거고 둘이 연인관계였다면 그게 무척 그립다거나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실제 상대가 아니라 공유했던 뭔가.(*두 사람은 과거 연극 '미친키스'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ㄴ 정수영: 랄프에 관해서도 엄청 많이 봤을 거다.

ㄴ 박호산: 랄프에 대해서 계속 같이 연구하던 사람이 없어지고 혼자 연구를 이어 가니까 데이빗이 더욱 생각나는 그런 느낌.

 

#죽음

화두를 조금 돌려서 두 배우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ㄴ 정수영: 좀 종교적인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저는 꼭 천국 갈 거다(웃음). 전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이다. 인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역추적하다 보면 아무리 과학적으로 봐도 뭔가 창조한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보는데 그게 신이라는 생각이고 여기서 끝날 것 같진 않다.

ㄴ 박호산: 차생을 노린다?

ㄴ 정수영: 그래서 앞으로도 더 잘살아 보려고 한다. 너(박호산 배우)는 한 방에 끝낼 건지.

ㄴ 박호산: 그렇다기보단 죽음도 시간의 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차원이나 공간이 여러 개 있으니까 여기 살던 내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랄프의 생각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배역을 맡으면 그 역의 생각을 닮아가는 게 있다. 랄프가 아이들을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건 그저 시간을 닫는 행위인 거다. 고통을 느끼게 하거나 가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거기서 아이들의 시간을 닫아버린 거다.

ㄴ 정수영: 어떻게 보면 불교에서 윤회설이나 기독교의 천국도 있지만,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게 무게감이 큰 것 같다. 아무리 해도 안 끝나는 거다. 마치 '프로즌' 연습처럼(웃음). 요즘 그런 느낌이 든다. '또 해?' 하고.

ㄴ 박호산: 윤회랑 천국은 좀 다른 이야기긴 하다.

ㄴ 정수영: 다른 이야기지만, 내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주어진다고 하는 건 지금의 내 행동 하나하나에 너무 큰 책임감이 생기는 거니까 참 무거워진다.

ㄴ 박호산: 책임감에 대한 건 공감한다. 윤회든 천국이든 이건 겪어본 사람이 없고 증언도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도 안 되지만, 지금 현실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는 건 공감된다. 앞에 나온 이야기 때문이든 현실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맥락이든 간에 참 의미 없는 삶이 아닐까. '머리가 있으면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닌가?'

ㄴ 정수영: 이것도 대사다(웃음).

ㄴ 박호산: 그냥 자기 인생을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런데 랄프는 왜 그랬을까. 살인은 자기 인생을 버리는 행위가 아닌가.

ㄴ 박호산: 랄프는 나름대로 자기 인생 열심히 즐기며 산 거다. 직업이 살인마는 아니지 않나.

ㄴ 정수영: 그럼 직업이 뭘까.

ㄴ 박호산: 배관공일 수도 있고, 창고에서 사는 걸 봐선 뭔가 관리자일 수도 있다. 그냥 우리 생활 속에 묻어있는 근로자 중 하나다. 뭔가 일을 하면서 살았으니 먹고 살았겠지 않나. 소아성애살해가 경제적 활동은 아니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딘가에서 티 안 나게 집세 내며 사는 평범한 사람인 거다.

시간을 닫는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면 주변의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ㄴ 박호산: 그냥 자기 시간을 열어둔 채로 흘리고 있지만, 버린 건 아닌 거다. 버렸으면 소아성애라는 즐거움조차 느끼지 않았을 테니까. 그냥 시간 속에서 부유하는 중인 거다.

ㄴ 정수영: 만약 너(박호산 배우)가 낸시라면 랄프를 용서할 수 있을까.

ㄴ 박호산: 난 그럼 랄프의 시간을 닫아주고 갔을 거다. 절대 용서 못 한다.

ㄴ 정수영: 저도 절대 못 한다. 물론 20년이란 세월이 저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지만.

제 생각에도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ㄴ 박호산: 어떤 행위를 구체적으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용서할 순 없을 거다. 똑같이 해주든, 더한 걸 해주든, 내가 떨어져 나가서 도망치든, 랄프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든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뭘 할지도 모르고 용서도 못 할 거다.

ㄴ 정수영: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맞이한 주기철 목사란 분이 있다. 어린 나이에 그걸 보며 죽어도 난 그렇게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대단한 일이다.

ㄴ 박호산: 우연히 일어난 사고거나, 그분처럼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랄프처럼 아이를 노린 계획적인 범죄라면 그건 봐줄 수 없다. 전쟁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니까.

ㄴ 정수영: 인간의 감정 중에 연민이란 게 없어지면 전쟁이 일어난다더라. 연민이 참 중요한데 늘 같은 일을 당한 사람에게 같은 크기의 연민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안의 불평등이랄까.

 

#연기

너무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 같다(웃음).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다. 요즘 관객들이 좀 불편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나. 내 삶도 힘든데 극장에 가서까지 그런 이야기를 보기는 힘드니까.

ㄴ 박호산: 문화는 정치와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썩으면 힘든 작품을 보기가 싫어진다. '어차피 그래봤자'하고 생각하게 되니깐. 그래서 오히려 문화나 정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작품들이 나온다. 그런데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치를 비판하는 작품보다는 철학이나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가져가는 작품이 많았다. '프로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초연은 2015년에 했지만, 지금이 오히려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안정적일 때인 것 같다. 당장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남에 관한 철학까지 생각할 여유가 어딨나. 일상이 힘든데.

대통령 바뀌기 전까지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느낌인 것 같다.

ㄴ 박호산: 이제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 남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좋아하실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되고. 물론 돈을 내고 보러 오시는 관객의 입맛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두 가지를 잘 섞어서 작가가 공유하고 싶은 생각의 지점을 객석에까지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작가는 씨알을 던지고 연출이 그걸 해석하고 배우들이 거기에 살을 입혀서 만들어두면 보는 관객들이 그걸 더 부풀려 주신다. 그렇게 더 큰 작품이 만들어진다. 시도 그런 식이지 않나. 시인의 의도를 읽는 이들이 더 넓혀가고.

그런데 오히려 이번에는 초연보다 관객의 생각을 조금 더 명확하게 몰아준다고 들었다. 낸시가 랄프를 용서하는 과정을 좀 더 열려있는 느낌으로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복수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ㄴ 박호산: 초연과 이번이 바뀐 게 있다면 그저 배우들이 더 이해가 깊어진 것 같다. 주제의 방향이 변했다거나 동선이 변하거나 그런 것도 없다. 그런데 무척 재밌는 건 초연 때 찍은 비디오를 동선 체크할 겸 이번에 다 같이 봤다. 그런데 '더 잘할걸' 싶더라.

ㄴ 정수영: 못 봐주겠다(웃음).

ㄴ 박호산: 계속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고 생각이 들더라. 분명 같은 대사와 같은 동선인데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 거다. 2년이란 시간도 지났고 '프로즌'을 한 번 끝내봤으니까. 배우들이 연기가 언제 느냐하면 아쉽게도 공연이 끝날 때다. 그런데 다시 왔으니 다들 이전보다 더 깊게 느끼는 것 같다.

ㄴ 정수영: 너(박호산 배우)가 이번에 가장 깊어진 것 같다.

ㄴ 박호산: 고맙다. 이건 주고받는 칭찬이 아니라 초연 때는 아그네샤가 좀 기능적인 역할로 느껴졌다. 낸시와 랄프 사이에 가교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정확하게 하나의 역할로 서 있더라. 그런데 그게 대사나 방향이 전혀 변한 게 아니다. 배역에 대해 이해가 깊어진 거다.

ㄴ 정수영: 늙어서 그렇다(웃음).

처음엔 계속 힘들다고 하더니 이야기할수록 공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 어려운 걸 또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법도 한데. 배우라는 직업을 즐겁게 한다는 느낌이 든다.

ㄴ 정수영: 수학적으로 비교하자면 항상 무리수와 싸우는 느낌이다.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다.

ㄴ 박호산: 어떤 일을 하다 보면 회사원이라고 해도 뭔가 하나의 일을 오래 하면 거기에 점점 살이 붙지 않나. 그 일에 필요한 것 외의 지식이 결국엔 그 일을 하는 데 힘이 되고. 배우가 그런 직업인 것 같다.

배우에겐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인문학적 지식도 필요하다고 하고.

ㄴ 박호산: 경험도 필요하고 그래서 가끔은 삶에 스크래치가 난 친구들이 연기를 잘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반대로 그게 아닌데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엄청 부럽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걸 이해할까 싶다.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뭘까.

ㄴ 박호산: 이해하는 힘. 표현하는 힘이 아니라 결국 '연기력'이란 게 어떻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깊게 이해할 수 있는지. 깊게 이해하면 좋은 표현이 나오지 않겠나. 그런 이야기들 하지 않나. 'ㅇㅇㅇ는 서 있기만 해도 연기야' 그게 그런 이야기 아닐까. 그 장면을 이해하고 거기 서 있으니까.

ㄴ 정수영: 물론 이해의 폭이 다들 깊어도 누군가 더 연기적으로 보이는 것은 타고난 사람의 표현 같은 게 있긴 한 것 같다.

ㄴ 박호산: 연기하는 방법은 백 명이 있으면 백 가지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아우라는 타고 나는 것 같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웃음). 연기는 친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아는 사람이 하나 생긴 거다. 늘 같이 다니는 친구는 어쩐지 닮아가지 않나. 그런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런 역을 맡으면 식구들도 '아 무슨 캐릭터구나' 하고 눈치챈다.

ㄴ 정수영: 전 왜 안 똑똑해지는지 모르겠다(웃음). 의사 역 같은 거 많이 했는데(웃음).

 

#취미

다음 화두를 던져보자. 인간 정수영, 인간 박호산의 삶이 궁금하다. 요즘 빠진 취미 같은 거 있는지.

ㄴ 정수영: 박호산 배우는 할 말 많다. 바쁜 와중에도 늘 취미를 꼭 한다. 관심 있는 분야에는 돈다.

ㄴ 박호산: 뭔가 눈에 들어오면 끝장을 본다. 어떻게 된 거냐면 작년까지도 연극, 뮤지컬을 많이 했다. 1년 동안 10개를 했다. 그런데 방송을 시작하면서 밖에도 좀 나가봐야겠다 싶었는데 방송하니까 다른 일은 하기 어렵다. 그런데 대기 시간은 많아지니까 내 시간은 많다. 공연 여러 개 할 땐 낮에 A팀, 밤에 B팀 연습하다 C공연 하고 다음 날은 A, B 연습하고 D공연을 가고 이렇게도 했는데 하루가 갑자기 텅 비니까 뭐 할 게 없더라. 그래서 시작한 게 볼링이다. 집중과 힘. 온몸으로 하는 사격이란 느낌이고 서핑은 미끄럼틀이다. 볼링은 잘하고 싶지만, 서핑은 잘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냥 재밌다. 제일 재밌다. 무아지경에 빠진다. 미끄럼틀 잘 탄다고 누가 상 주지 않는다. 그런데 타는 게 재밌다. (*현재 에버리지가 190-200 정도로 상당한 실력이라고 한다)

ㄴ 정수영: 볼링은 상을 줘서 잘하고 싶은가 보다(웃음).

ㄴ 박호산: 볼링은 이기고 싶다. 경쟁이 되니까. 그런데 서핑은 나에겐 그냥 놀이다. 볼링은 잘하고 싶은 취미고. 그게 제 화두다.

ㄴ 정수영: 저는 모든 걸 다 참았다가 한 번에 여행으로 푼다.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ㄴ 박호산: 정수영 배우는 밥을 정말 잘 먹는다. 엄청 날씬해서 안 먹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서 밥 제일 잘 먹는다(웃음).

ㄴ 정수영: 고깃집에 가도 꼭 공기밥 한 그릇 먹는다. 박호산 배우는 컵라면 좋아한다. 1일 1컵라면.

그런데 어떻게 살이 안 찌는지.

ㄴ 박호산: 운동하고 작품 할 땐 살찔 시간이 없다. 배우는 앉아서 하는 직업이 아니니까. 스케이트보드도 탔었다. 대학로에서도 이상한 거 많이 탔다. '휠맨'이란 것도 타고.

ㄴ 정수영: 하루는 '스카이씽씽'을 타고 오는 거다(웃음). 그 안에 무슨 엔진이 들어있다나?

ㄴ 박호산: 스카이씽씽이 아니라 바퀴에 직접 발을 끼고 타는 거다. 모터로 시동 걸고 유선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건데 엄청 빠르다. 시속 30km 정도 나온다.

ㄴ 정수영: 솔직히 타다 다친 적 있지 않나.

ㄴ 박호산: 한 번도 없다.

'도둑맞은 책'에서도 휠체어에 타고 있는 역인데도 에너지가 넘친다 싶었다.

ㄴ 박호산: 그게 제가 초연 때는 못했던 작품이다. '데스트랩' 할 때였는데 컨셉이 겹치는 게 많아서 못했다. 그래서 그냥 공연을 보러 갔는데 휠체어에 갇혀있다는 사실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휠체어에서 떠는 것만으로 2시간 가까이 있으니까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다이내믹해지려면 옛날 기분도 냈다가 현실로 돌아오고 잡힐 땐 잡혀주고 올라갈 땐 올라가고. 그러면 어떨까 했는데 (변)정주 연출이 좋다고 해서 재연부터 확 바뀐 거다. 거의 다시 썼다.

 

정수영, 박호산 배우의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ㄴ 박호산: 사실 늘 팬들과 교감하는 편이라 특별하게 더 전할 게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제 생각을 식구들도 잘 알 거다. 배우도 직업의 하나고, 당신들과 똑같고, 서로 만나고 있어서 다행이고, 최선을 다하는 사이가 됩시다. 난 내 일을 열심히 하고, 그게 그들이 열심히 하는 동기가 될 수 있게.

ㄴ 정수영: 오랫동안 제 공연을 항상 봐준 친구들에게 늘 고맙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분들이 계셔서 제가 지금까지 연극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줬다는 건 확실하다. 그분들이 보기에 힘든 작품을 할지라도 늘 내 편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이었고,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다음 작품을 할 때마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있기에 제겐 꼭 필요한 분들이고 감사하단 말씀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연극 '프로즌'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ㄴ 정수영: 설명만 들어도 인물 구성이 기가 막히지 않나 싶다.

ㄴ 박호산: 이 작품이 철학적이고 무거운 부분이 있어서 이 작품이 과연 흥행이 될까 싶었는데 매진이 되고 자리를 못 구해 난리가 났었다. 분명 이걸 보러 오시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무언가 관객의 마음을 건드렸지 않을까. 센 작품이라 보러 오시기 힘들어할 수도 있지만 좋은 작품이고 다시 보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또 극단 맨씨어터의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이니까 잘 봐주시면 좋겠다.

some@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