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뮤지컬 '기억을 걷다' 팀의 창작진 이응규 연출 겸 작곡과 오서은 작가 겸 협력연출을 만났다.

제11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DIMF)) 창작지원작으로 선정돼 EG뮤지컬컴퍼니에서 제작하는 뮤지컬 '기억을 걷다'는 현재의 소중함을 망각하며 살아가다 중요한 것을 잃고 후회한 남자 승우에게 주어진 또 한번의 기회를 조명한다. 이승우/이정우 역에 장덕수, 김지우/백리빈 역에 김유진, 박지연/김송지 역에 서찬양, 이영재/목사 역에 김주호, 멀티남 역에 김소년, 안현석, 멀티녀 역에 강유진, 손민아가 출연하며 오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공연된다.

지난 달 성동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두 사람에게 뮤지컬 '기억을 걷다'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 뮤지컬 '기억을 걷다' 연습 장면

뮤지컬 '기억을 걷다'가 어떤 작품인지 설명한다면.

ㄴ 이응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져 폐인처럼 사는 한 남자가 일주일의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대신 그녀가 죽기 일주일 전, 제3세계로 돌아간다. 과연 위기를 헤치며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 놓치고 가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과연 중요한 것이 뭔지. 옆에 있는 것의 중요함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로드무비 형식의 스토리를 가졌는지.

ㄴ 오서은: 일반적인 로드무비와는 조금 다르다. '기억을 걷다'는 타이틀은 이 남자가 기억을 지우는 약물을 개발한 박사를 찾아가 그 약물을 맞고 나니 제3세계로 돌아갔다는 설정이다. 거기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판타지적으로 풀어낸 여행이다.

다양한 효과나 연출을 통해 판타지적으로 기억을 오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기억을 걷다'의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ㄴ 이응규: 전체적인 배경을 구체화하기보단 추상적이고 원색에 가깝게 표현하려 한다. 중심이 되는 장소는 제3세계, 주인공 승우의 옛날 집, 최면의자. 세 곳으로 구성된다. 승우가 약물을 맞는 최면 의자와 무대 오른쪽 하수에 위치한 옛날 집이 있다. 영상을 쓰진 않고 조명을 활용할 예정이다.

ㄴ 오서은: 무대에 높낮이를 줘서 실제적인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무대 디자이너님이 힘을 쓰셨다.

▲ 뮤지컬 '기억을 걷다' 연습 장면

이 이야기의 어떤 면이 뮤지컬이란 장르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는지.

ㄴ 오서은: 연출님과 3년 전부터 작품을 구상했다. 초반에 디자인할 때는 기억, 시간에 관련된 제3세계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열망이 컸다. 작가 입장으로선 이 작품의 오르페우스 신화를 모티브로 차용한 면이 있다. (*오르페우스 신화: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명계로 간 이야기. 아내를 구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면 안 되지만, 마지막에 돌아봐 실패한 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기도 하지만, 설득력 있고 힘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베이스로 깔고 현실적인 면을 섞었다. 줄거리만 보면 심각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많다. 그로 인해 관객에게 유쾌한 느낌을 주면서도 공연이 끝나면 여운이 남게 만들려고 했다. 그걸 단순히 이야기로만 풀기보단 음악이 가진 큰 힘을 활용하려 했다. 연출님이 곡을 워낙 잘 쓰신다(웃음). 곡 좋단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리딩도 10회 이상 하면서 다듬는 과정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들이 음악 안에 함축적으로 녹아들며 독특한 '기억을 걷다'만의 스타일이 생겼다고 본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어땠고, 장르적으론 어떤 음악을 많이 활용했는지.

ㄴ 이응규: 음악으로 중심을 가져가려 노력했다. 제3세계를 북한으로 설정했는데 그 이유는 언어가 가장 컸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보면 '북 오브 몰몬'이나 '애비뉴큐'를 보면 뉴욕에서도 다양한 인종이 영어라는 공통어를 쓰며 사니 억양과 피부색만 달라도 국적을 바꿀 수 있는 소재가 많다. 그런데 한국 배경으로 외국 사람들을 차용해서 쓴 작품은 동남아 사람이거나 금발 머리의 유럽인 정도였다. 이런 비현실적인 면을 보며 제3세계를 어떻게 구현할까 했다. 사실 처음엔 '부탄'을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그런데 그렇게 갈 경우 말투나 표현이 유치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정치적인 색을 전혀 없이 일주일 안에 돌아오기 힘든 제3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북한을 썼다.
그래서 음악적인 색깔이 제3세계, 연구실, 승우와 지우의 사랑스러운 시절 세 가지로 나뉘어 작곡했고 음악이 나올 때 드라마가 정체된 것이 좀 답답했다. 그래서 노래 안에 최대한 드라마를 이어갈 수 있게 메시지를 많이 넣으려 했다. 그래서 말하는 걸 음악으로 표현하려 해서 싱코페이션이 많고 리듬이 다양해졌다. 가사를 잘 들으셔야 이해가 쉬워질 거다.

극장 컨디션이 중요하겠다(웃음). 음향이 나쁠 경우 가사가 전혀 안 들리는 경우도 많다.

ㄴ 아마 좀 더 잘 들리실 거다. '스캔션'을 많이 고려해서 곡을 썼다. 좀 빠르긴 해도 관객에게 잘 들리게 하려고 노력했다.

▲ 뮤지컬 '기억을 걷다' 연습 장면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는지.

ㄴ 이응규: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ㄴ 오서은: 한마디 요약을 잘 못한다(웃음). 극 후반에 보면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승우가 겪는 심리적인 변화나 깨달음을 환상적이고 재밌게 풀어낸 작품인데 그가 깨닫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승우 자체는 욕심이 많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우리 사회도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 소중함을 말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잘 안 되기 때문일 거다. 방식에 있어선 좀 더 유쾌하고 공연이 끝난 뒤 아련하게 느끼게끔 하려 했다. 친절하게 메시지를 건네진 않지만, 지우고 싶었던 슬픈 기억마저도 사랑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공연을 보면서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게 있어도 그걸 잘 딛고 일어서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10회 이상 리딩을 하며 발전한 작품이라 했다. 그 기간 중 가장 많이 변한 점이 뭔지.

ㄴ 이응규: 공연이 끝난 뒤 바로 바로 관객들과 마주해서 감상을 들었다. 15분짜리 작품부터 시작해 관객의 반응을 듣고 45분, 60분, 2시간까지 늘렸다. 이번에는 다시 1시간 30분으로 줄일 예정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초부터 탄탄하게 잡힌 뮤지컬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여겼다. 물론 실제로 무대로 올리는 과정에서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저희가 생각한 상상속의 무대와 달리 딤프(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DIMF) 창작지원작이란 취지에 맞는 스케일로 변해야 했다. 만약 이걸 계기로 만들게 된다면 더 큰 규모를 바라보고 있다.

ㄴ 오서은: 원래는 중극장 이상을 보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스케일이 커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달았다. 창작자이면서 2차 창작이라 할 수 있는 연출 역할까지 맡으며 스케일을 고려해 다시 바꾼 작품의 규모나 공간 디자인, 배우 역시 10명 이상을 생각했다가 8명으로 줄였다. 이번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었군'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다.

ㄴ 이응규: 창작지원작이니 만큼 작품 지원금에 맞춰서 어떻게 하면 이 안에서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오케스트라를 가져가지만 규모를 줄이거나 배우도 중심적인 인물들 위주로 정리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ㄴ 오서은: 메인 캐릭터 못지 않게 멀티 역 배우들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컨셉만 있던 15분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게 저희에겐 재밌는 시도였던 것 같다. 많은 디테일과 아이디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작품을 확장한 경험은 저도 처음이다. 아직도 배우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듣고 있다. 저희끼리 작가 정신, 창작혼을 가지고 만든다기 보단 같이 벽돌을 쌓듯 재밌게 만들어 가고 있다.

 

작품의 개발도 계속해야 하고, 앞으로의 꿈도 있겠다.

ㄴ 이응규: 대구를 오프브로드웨이처럼 만드는 게 목표다. 서울이 브로드웨이라면 다양한 작품을 실험할 수 있길 바란다. 저희가 좋은 길을 걸으면 대구에 있는 후배들, 창작자들에게도 딤프가 오프브로드웨이, 서울 진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곳이 되게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새로 작업하며 대구에서 리딩을 준비하는 작품도 있다. 이것도 15분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우선 '기억을 걷다'가 잘 만들어져서 대구에서 여러 실험을 하고 서울 공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지방 공연을 분점 정도로만 보는 시선도 많은데 남다른 목표다.

ㄴ 오서은: 대구가 뮤지컬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고, 그만큼 딤프 외에도 다양한 투자가 많다. 덕분에 대구, 경북까지도 지역 뮤지컬이 활성화된 느낌이 피부로 와 닿는다. 서울에선 아직도 대구가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지만, 저희쪽에도 좋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많다. 육성 프로그램도 많고, 오프브로드웨이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다.

ㄴ 이응규: 제가 보기엔 지방/서울 이런 구분이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한국 전체가 뮤지컬 시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구와 서울 역시 같은 시장으로 생각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ㄴ 오서은: 저희 작품은 가슴 따듯하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은 뮤지컬이다. 연인도 좋고 사랑에 아팠던 분이나 힐링이 필요한 분 등 누구나 보셔도 좋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컬러의 작품들이 딤프에 나오지만 저희 작품도 보시고 따듯한 칭찬과 이야기 많이 해주시면 좋겠다. 늘 저희가 사랑하는 딤프에 참여해서 영광이다.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ㄴ 이응규: 저는 딤프 1회 때 대학생 신분으로 뮤지컬 제작을 했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you're my sunshine'이란 작품으로 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10년 만에 성인이 돼 크리에이터로서 참여하게 돼 기쁘다. 10년 이상 성숙한 크리에이터로서 좋은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고 음악, 드라마 모두 좋은 작품으로 기억될 '기억을 걷다'로 관객과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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