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한국을 앞선 것은 한국 정부가 조사를 시작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과학 굴기’를 앞세운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과학기술은 2년만에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일본을 바짝 추격하며 위협하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한국 등 ‘주요 5개국’ 중 한국의 기술수준이 꼴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격을 넘어 ‘올 것이 왔다’라는 믿기지 않는 굴욕감(屈辱感)을 지울 수 없다. 값싼 인건비를 앞세워 조악(粗惡)한 짝퉁 제품을 만들던 중국의 급진적 기술 발전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월 29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57회 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2년도 기술수준 평가 결과(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기술수준 평가’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기술’의 기술수준(%), 기술격차(년)를 2년마다 ‘주요 5개국’을 대상으로 점검하고 평가한 결과를 일컫는다. 보고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11대 분야 136개 핵심 과학기술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역전당한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이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4.7년에서 3.2년으로 1.5년 좁히는 사이에 중국은 6.6년에서 3.0년으로 3.6년이나 크게 단축하며 한국을 추월했다.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던 시대가 이미 끝났다는 평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넘어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번 제57회 운영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 기술 수준 평가는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상의 50개 국가전략기술을 포함한 ▷건설·교통, ▷재난 안전, ▷우주·항공·해양, ▷국방, ▷기계·제조, ▷소재·나노, ▷농림수산·식품, ▷생명·보건의료, ▷에너지·자원, ▷환경·기상,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등 11대 분야 과학기술을 대상으로 136개 핵심기술에 대해 ‘주요 5개국’의 논문 및 특허 분석을 강화한 정량분석과 2회에 걸친 전문가 1,360명에게 ‘델파이조사(Delphi method │ 전문가 패널에게 질문지를 보내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를 거친 정성평가를 병행하여 종합적으로 이뤄졌다.

‘주요 5개국’에 대한 평가 결과 각국의 전체 대상 기술수준과 격차는 2022년 기준으로 1위인 미국의 수준을 100%로 봤을 때 또 기술 격차를 미국을 0.0년으로 봤을때 미국(수준 100% / 격차 0.0년), EU(수준 94.7% / 격차 0.9년), 일본(86.4% / 2.2년), 중국(82.6% / 3.0년), 한국(81.5% / 3.2년) 순이었다. 중국은 82.6%로 한국의 81.5%보다 1.1%포인트 앞서면서 순위가 뒤집힌 것이다. 한국의 기술 수준은 2020년보다 1.4%포인트 향상하는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2.6%포인트 상승하면서 한국이 중국에 밀리는 치욕(恥辱)을 당한 것이다. 중국이 한국을 앞선 것은 조사가 시작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현재 최고인 미국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는 데 필요한 시간을 의미하는 기술 격차는 중국이 3년, 한국이 3.2년이라는 수모(受侮)를 당한 것이다.

이번 평가 결과를 비교가 가능한 2012년부터의 시계열적인 측면에서 보면, 줄곧 미국이 1위로 최고 수준을 유지해오고 있고, 한국과 중국의 기술수준은 지속적인 상승을 보이며, 일본은 2016년 이후부터 하락세로 나타났다. 11대 분야별로 보면, 우리나라 기술수준은 2020년 대비 9개 분야에서 향상(건설‧교통, 재난안전, 국방, 기계‧제조, 소재‧나노, 농림수산‧식품, 생명‧보건의료, 에너지‧자원, 환경‧기상)되고, 2개 분야에서 하락(우주항공‧해양, ICT‧SW)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이번 평가부터 우주항공·해양 분야 기술이 대형 다단연소 사이클엔진, 우주 관측 센싱, 달착륙·표면 탐사, 첨단 항공 가스터빈 엔진 부품 등 미래·도전적인 국가전략기술로 대부분 변경되었고, ICT·SW 분야 기술 또한 양자컴퓨팅, 양자센싱, 효율적 학습 및 AI인프라 고도화, 산업 활용·혁신 AI, 전력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로 대폭 추가·변경된 점이 평가 결과에 반영되어 다소 하락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중국의 기술 수준은 136개 기술 중 50개 국가전략기술을 추려 평가했을 때에는 86.5%로, 미국과의 격차를 2.2년으로 더 줄였다. 우리나라는 81.7%로, 중국보다 4.8%포인트나 낮았다. 50개 국가전략대상 기술수준과 격차는 2022년 기준으로 1위인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로 봤을 때 또 기술 격차를 미국을 0.0년으로 봤을때 미국(수준 100% / 격차 0.0년), EU(수준 92.3% / 격차 1.3년), 일본(86.5% / 2.0년), 중국(86.5% / 2.2년), 한국(81.7% / 3.0년) 순이었다.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별로는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수소 분야에서는 중국에 비해 우위를 보였으나 양자, AI, 우주항공·해양 분야에서는 현격한 차이로 열세를 보였다.

국가전략기술 중 한국의 최고 기술 분야는 2차전지로 나타났다. 한국 기술수준이 100%였고 일본이 한국 대비 97.3%, 중국이 94.3%, 미국이 87.1%로 평가됐다. 그 외 우주항공·해양, 양자 분야 등은 기술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주항공·해양은 선도국인 미국 대비 55.0%, 양자는 65.8%, 수소는 78.6%의 기술수준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 데, 매우 미래·도전적이나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필수기술로 평가되었다. 평가 전문가들은 초격차 유지 및 미래 생존 필수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별 강·약점, 분야별 정책 수요를 파악하여 기술전략(도전·혁신) 수립이 필요함을 시사하였다.

중국의 과학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미 몇년 전부터 정상 수준에 다다른 일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해 4월 2일 발간한 ‘2021년 한국의 과학기술논문 발표 및 피인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과학기술인용색인(SCI │ 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나라는 중국으로 밝혀졌다. 2020년 처음 1위에 오른 중국의 2021년 점유율은 18.68%로, 2위인 미국 15.17%과 격차를 더욱 벌렸다. 2021년 총 피인용 횟수는 중국이 138만 7,605회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114만 1,763회로 2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16만 9,443회로 발표 논문 순위와 같은 12위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우수 논문의 양과 질은 시차를 두고 과학기술 격차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국의 한국 추월은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내세운 이래 첨단 산업에 인재와 예산 지원을 집중하며 기술 수준을 높여 왔다. 이번에 주목한 과학기술 발전도 중국 정부의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결과다. 한국이 최고 수준 평가를 받는 이차전지 분야도 현재 중국 업체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에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가 더해져 한국을 뿌리치고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은 전기차를 앞세워 자동차 수출이 전년보다 58% 증가한 491만 대로 전년보다 16% 증가한 442만 대의 일본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 수출 1위를 달성했고, AI, 로봇 등 미래 핵심 산업에선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지난 1월 9∼1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 이어 지난 2월 26∼2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도 중국 기업이 대거 참가해 기술력을 과시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야흐로 중국은 한국과의 수직적 분업 시대에서 벗어나 수평적 경쟁 체제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수입하던 중간재 대부분을 직접 생산해 완제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고 오랜 세월 동안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투입해 오늘날 세계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터넷과 생명과학 등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도 14억 명의 거대한 인구와 막강한 자본력,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미국과 기술 패권을 겨루고 있다. 후발 주자인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2위 규모의 예산을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어온 것은 이런 강대국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연구개발(R&D) 모범생이던 한국의 기술 경쟁력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며 쉬운 과제에 집중했고, 민간 R&D 투자를 활성화할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은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는 충분한 준비 없이 올해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과학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문제는 기술 경쟁우위 상실이 가속화될 경우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한국산이 퇴출당하고 나아가 전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에 밀려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대만, 독일 등 주요국들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동원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기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결단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도전적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우수 인재 양성에 총 매진해야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첨단기술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한편 국가전략기술 확보를 위해 추진 중인 ‘글로벌 톱(TOP) 전략연구단’에 정부는 올해 총 1,0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무엇보다 초격차 유지 및 미래 생존 필수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별 정책 수요를 파악하여 실효적 기술전략 수립이 긴요하다. 아울러 추경을 통해서라도 R&D 예산지원은 적극·긍정 검토되어야 한다. 한국의 핵심 기술력의 재역전을 위해서는 민·관·학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효율적인 R&D 투자와 인재 양성, 규제 완화가 화급한 과제다. 아울러 핵심 기술별 강점과 약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분야별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핀셋형·맞춤형 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전폭적인 정책 지원을 병행시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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