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월세와 먹거리, 공공요금을 비롯한 물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가계의 실질 근로소득이 5분기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실질 사업소득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소득이 줄어든 가계는 먹고 입고 사는 필수 소비를 줄이는 내핍으로 어렵게 대응하고 있다. 다만 부모급여 등 정책 효과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 가계 소득은 2분기 연속 증가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9일 발표한 ‘2023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02만 4,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483만 4,000원보다 3.9%인 19만 원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 근로소득은 오히려 1.9% 줄어 2022년 3분기(-0.4%) 이후 5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실질 사업소득도 1.7% 줄어 5분기째 마이너스(-)다. 실질 근로소득과 실질 사업소득이 모두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1년 1분기 이후 무려 11분기 만이다.

이에 반해 고물가·고금리의 영향으로 지출은 늘고 있다.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83만 3,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269만 7,000원보다 5.1%인 13만 6,000원 늘었다. 월세 등 실제 주거비가 11만 1,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9만 9,000원보다 12.3%(1만 2,000원) 늘어난 영향이 크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이자 비용은 20.0% 늘어났다. 이자 비용 증가율은 전 분기 24.4%보다는 4.4%포인트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른바 ‘영끌’로 집을 산 30~40대의 경우 고물가에 고금리까지 겹쳐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으로 인해 지난해 연간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보다 2.1% 늘었으나, 필수 소비라고 할 수 있는 식료품·비주류음료(-3.4%), 의류·신발(-4.2%), 가정용품·가사서비스(-3.5%) 등은 오히려 줄었다. 한마디로 먹고 입고 사는 데 쓰는 지출이 가격 인상 폭을 압도할 정도로 줄었다. 아직 까지는 비명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소리 죽여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최하위 계층인 1분위 가구의 가계지출은 전년 동기보다 0.5%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월평균 29만 1,000원 적자였다. 가난할수록 더 살기가 팍팍하고 어렵다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내수 상황은 이렇듯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수출은 호조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국민은 더 가난해진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28일 발표한 ‘2024년 1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잠정)’에 따르면 1월 수출물량지수는 126.08(2015년 100 기준)로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운송장비 등이 증가하여 전년 같은 달 대비 17.1% 상승했고, 1월 수출금액지수도 128.20(2015년 100 기준)으로 1년 전보다 15.7% 올랐다. 지난해 10월 이후 넉 달 연속 상승했고 상승 폭도 지난해 12월 3.2%를 크게 웃돌았다. 올해 2월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다. 사업통상자원부가 지난 3월 1일 발표한 ‘2024년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수출액은 524억 1,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증가하며 수출 개선흐름을 이어나갔다. 대(對)중국 무역수지는 2022년 9월 이후 17개월 만에 흑자(+2억 4,000만 달러)로 전환되었다. 대(對)미국 수출(+9.0%)도 1월에 이어 2월에도 월 기준 역대 최대 수출실적인 98억 달러를 기록하며 7개월 연속 증가흐름을 이어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수 부진이 전체 성장률을 11월 전망보다 0.1%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수출 개선이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서로 상쇄됐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서민층부터 허리띠를 졸라맨 모습이다.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17만 8,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보다 4.5% 늘었다. 근로소득과 이전소득은 증가했지만, 사업소득과 재산소득은 모두 감소했다. 반면 고소득 가구인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80만 4,000원으로 3.6% 증가했다. 4분기 전체 소득분위 중 1분위만 가계지출과 소비지출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99만 1,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4.0% 증가한 반면, 고소득 가구인 5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849만 8,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2.5% 증가했다. 다행히 1분위 처분 가능 소득이 5분위 처분 가능 소득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4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도 5.30배로 1년 전 5.55배보다 축소되면서 분배 지표는 소폭 개선됐다. 하지만 빈부의 편차는 아직도 크고, 양극화 현상도 여전히 심하다.

작금의 경제 상황은 공격적인 부자감세와 기대했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론’이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어 보인다. 오히려 ‘세수 펑크’로 정부 곳간이 비어 써야 할 돈을 제때 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첫 달 법인세가 1년 전보다 약 2,000억 원 덜 걷혔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 29일 발표한 ‘1월 국세 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걷힌 세금은 45조 9,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조 원(7.1%) 늘었다. 국세 수입은 지난해 10월 증가한 뒤 11월, 12월 잇따라 감소하다 3개월 만에 증가했다. 올해 국세 수입 예산 367조 3,000억 원 대비 세수 진도율은 12.5%로 최근 5년 평균과 비슷해 외견상으로는 선방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규모 세수 부족 사태에 따른 ‘기저효과(Base effect)’가 작용한 영향이 크다. 지난해 1월엔 국세 수입이 2022년 1월 대비 6조 8,000억 원 줄어 1월 기준 역대 최대 폭 감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도한 부동산 가격 떠받치기로 거품이 유지되면서 월세 등의 형태로 서민에게 부담이 전가되고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더 팍팍해진 서민 가계를 돌봐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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