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반전 없이 반복·지속되는 출산율 역대최저치 경신에 이젠 ‘저출산 쇼크’라는 표현도 진부(晉府)해졌고, ‘인구 소멸’이라는 용어도 비루(鄙陋)해졌다. 모두가 식상(食傷)할 따름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 15~49세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이라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2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022년 출산율 0.78명 때도 해외 언론과 학자들에게 “한국은 망했다”라거나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인구 격감”이란 혹평(酷評)과 함께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 출산율이야말로 한국군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라고 악평(惡評)을 받았는데 상황이 더 악화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0.7명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외에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뿐이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8일 발표한 ‘2023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전년도 24만 9,200명보다 1만 9,200명(-7.7%)이 감소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전년도 0.78명 대비 0.06명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합계 출산율은 1년 전보다 0.05명 감소한 0.65명으로 떨어졌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인 1.5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속도라면 올해 합계 출산율은 0.7명 밑인 0.68명을 기록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 침공으로 2년 넘게 전쟁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의 0.7명보다 낮아지는 셈이다. 세계에서 ‘1호 인구 소멸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교수의 경고가 이제 시간문제로 직면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온갖 정책을 발표하고 무려 28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범위를 확대하면 380조 원을 썼다지만 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저출산 대책이 이러한 기조나 추세조차도 바꾸지 못한 채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고 인구 절벽은 외려 가팔라지고 있는지 냉철히 되짚어봐야 한다.

이러한 급격한 저출산·고령화가 지속되면 당연히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교육, 국방, 의료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멍이 커질 수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축소사회에 대비해 사회 시스템을 서둘러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2015년 1.24명이던 출산율이 지난해 0.7명대까지 떨어지는 사이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58%대에서 70%로 올랐다. ‘일이냐, 육아냐’ 갈림길에서 ‘일’을 택한 여성이 많았던 셈이다. 무작정 현금 지원만 해선 이런 흐름을 돌리기 어렵다.

특히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한국의 저출산 현상에 대해 ‘왜 한국 여성들은 아이를 갖지 않나(Why South Korean women aren't having babies)’라는 제목의 기사와 영상을 보도했는데, 한국에선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여성과 청년들의 필요는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며, 기사 속 여성들은 비싼 집값과 아이들 사교육비, 그리고 긴 노동시간과 힘든 회사 업무를 애를 낳지 않는 이유로 들었다. 특히 가정 내에서 남편과의 불공평한 가사 분담도 저출산 배경으로 제시됐다. BBC는 한국 경제가 50년간 고속 발전하면서 여성을 고등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고, 야망을 키워줬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BBC는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도 지적했다. 일본 언론들도 저출생을 초래한 한국의 사회적 배경에 주목했다.

일본 NHK 뉴스는 "전문가는 출생률 저하의 배경으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 그리고 어려운 취업 사정 등 한국사회의 상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구조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사설을 통해 촉구했다. 이렇듯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산국이란 불명예를 안은 한국은 어디까지 출산율이 내려갈 수 있는지, 전 세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다. 2020년부터 가파르게 줄어드는 인구가 2033년엔 5,000만 명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 예상된다.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10년 내 332만 명이나 줄어든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넘어 인구지진(Age quake)의 대재앙(大災殃)은 곧바로 세금 수입을 줄이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지출은 급격히 늘려 재정 파탄을 촉발하고, 궁극적으론 국가를 소멸 위기로 내몰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모든 수단을 강구해 인구 대재앙(大災殃)을 막아야만 하는 이유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 연구조직인 전미경제연구소(NBER │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보고서는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엔 4가지 특징’이 있다고 분석한다. ▷남성의 적극적인 가사·육아 노동 참여, ▷워킹맘에 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 ▷정부의 적극적인 가족 정책, ▷육아를 마친 남녀의 취업 문턱이 낮은 유연한 노동시장 등이다. 한국도 세계 최악의 저출산 원인은 모두가 다 아는 바다. 청년 세대의 취업이 어려운 고용불안,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주거비 부담, 아이 낳아도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 보육과 일 병행이 힘든 데서 오는 경력 단절, 치열한 경쟁에 기인한 자녀 사교육 부담 등 복합적인 원인에 허덕이다 보니 청년들 사이에 결혼도 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다 아는 데도 출산율 추락 기조가 바뀌지 않는 건 보다 더 강력한 실효성 있는 실행력 기반의 특단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일 게 분명하다.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바꾸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한국은 2020년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기 시작해 지난해 총인구가 12만 명이나 감소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 2022~2072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중위 추계로 2022년 현재 5,167만 명에서 2024년 5,175만 명 수준으로 증가한 후 다시 감소하여 2030년 5,131만 명, 2040년 5,006명, 2041년이면 총인구가 4,000만 명대로 쪼그라든다. 전쟁도, 재난도 아닌 인구 감소로 소멸하는 나라가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경제적 현금 지원 정책을 넘는 국가적인 개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당장 비혼 출산 장벽을 허무는 게 반전의 단초(端初)가 될 수 있다. 일자리, 부동산, 보육, 교육, 복지 등 모든 국가 정책을 ‘출산 친화적’ 시각에서 재설계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양육비 부담을 덜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에게 유난히 편중된 ‘여성 육아 독박’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연금·노동·교육 개혁에서라도 성과를 내 청년 세대에게 희망의 실마리라도 보여줘야 한다. 출산 의지를 꺾는 일자리·성 차별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절박(切迫)한데도 저출산 대책은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 이대로 10년만 더 가면 모든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며 놀라는 절망 상황을 목도(目睹)하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인구정책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새로운 부위원장이 취임한 만큼 조속히 정상화하고 서둘러 재가동돼야 한다. 올해 중 발표하겠다던 일·가정 양립 정책도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서둘러야 할 화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인구정책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곧바로 행동으로 시의성 있게 옮기는 실천이 중요하다.

출산율을 끌어올린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세제·예산 등의 파격적인 출산 지원 정책을 병행해야만 한다. 주택 융자 등을 뺀 아동수당, 육아휴직급여 등 가족 관련 실질적인 지출이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은 2013년부터 줄곧 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부의 가족 관련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월 21일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2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에 따르면 한국의 가족에 대한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6%다. 현금 급여가 0.5%, 현물급여가 1.1%를 차지한다. OECD 38개국 중 31위로 하위권이고, 전체 평균인 2.1%(현금 1.1%, 현물 1.0%)에도 크게 못 미친다.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2021년 기준 1.67명인데, 가족 관련 공공지출은 GDP의 3.3%(현물 2.1% │ 현금 1.3%)로 한국의 배가 넘고,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은 1.80명인데, 가족 관련 공공지출은 GDP 대비 2.9%(현물 1.4% │ 현금 1.5%)에 달하며, 독일도 합계 출산율 1.58명인데, 가족 관련 공공지출은 2.4%(현물 1.3% │ 현금 1.1%)로 한국보다 GDP 대비 비중이 훨씬 크다.

인구 대재앙(大災殃)을 피하려면 교육·고용·주거 정책 전반을 ‘제로베이스(Zero-base)’에서 다각적·다층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예산 배정 등 모든 정책 입안과 집행의 기본 틀을 ‘출산 친화적’ 관점에서 다시 짜고 재편성해야만 한다. 돈을 써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돈을 쓰지 않는 게 저출산 해법일 순 없다.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더 쓰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보육과 육아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더 질 좋은 보육 시설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제라도 보여주기식이나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정책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겉치레를 과감히 솎아내고 효과가 검증된 양질의 품격 높은 정책에 핀셋형 선택과 맞춤형 집중을 통해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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