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문화뉴스 그래픽 팀 / (박근종 칼럼) ‘반도체 아메리카 원팀’ 선전포고, 위기 직면 한국반도체 초비상
이미지= 문화뉴스 그래픽 팀 / (박근종 칼럼) ‘반도체 아메리카 원팀’ 선전포고, 위기 직면 한국반도체 초비상

 

[박근종 칼럼] 미국·일본의 ‘반도체 역습’이 무서울 정도로 강력히 추진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모리스 창’ 창업자가 지난 2월 24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열린 ‘TSMC 제1공장 개소식’에서 “일본 반도체 생산의 르네상스(부흥)이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고, 이날 개소식에 참석하지 못한 일본 기시다 총리는 영상 메시지를 보내 “반도체는 디지털화와 탈탄소화의 실현에 불가결한 핵심 테크놀로지”라며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 기반 정비를 위해 전례가 없는 대담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이미 TSMC의 제1공장에 보조금으로 4,760억 엔을 지원했는데, 추가로 제2공장에는 최대 7,320억 엔(약 6조 5,000억 원)을 지원한 방침임을 밝혔다. 외국 기업에 무려 1조 2,000억 엔의 현금을 지원하는 셈이다.

이보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Intel)의 대역습은 더 충격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첨단인 1.8나노(㎚ │ 1㎚ = 10억분의 1m) 반도체 제품을 올해 말부터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팻 겔싱어(Pat Gelsinger)’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21일(현지 시각) 자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포럼인 ‘인텔 파운드리서비스(IFS) 다이렉트커넥트 2024’ 행사에서 비전발표를 통해 “오는 2027년 14A(옹스트롬 │ 1A = 0.1㎚) 공정을 양산해 오는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업계 2위가 되겠다”고 말했다. 2027년 도입하겠다는 1.4나노 공정의 경우 삼성전자의 도입 목표 시점과 같아 기술 경쟁을 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기업과 정부가 인텔의 파운드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지원 사격에 나선 만큼 파운드리 시장 2위인 삼성전자에 대한 추격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나 러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장관도 “인텔은 미국의 챔피언 기업”이라고 치켜세우며 힘을 실어줬다. ‘러몬도’ 장관은 “실리콘(반도체)을 실리콘밸리로 되돌려 놓자”라며 “과거 세계 반도체의 40%를 생산했던 것처럼 미국이 주요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기를 원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러몬도’ 장관의 메시지는 자국 기업에만 보조금 등 정책지원을 우선하겠다는 건 아니겠지만, 이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아메리카 원팀’을 노골화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할뿐더러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 호기로운 도전장을 던진 인텔의 선전포고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올해 안에 2나노미터(㎚)와 1.8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도입 시간표는 내년에 2나노미터(㎚)급 양산을 목표로 하는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를 앞지르는 겠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한 수 더 떠 2027년 ‘꿈의 공정’으로 불리는 1.4나노 초미세 공정에서 칩을 생산하겠다는 역습이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1.8나노 칩은 TSMC의 처리 속도를 능가할 것”이라며 자신감도 드러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게임 체인저로 여겨지는 1.4나노 공정 양산 시기는 공교롭게도 삼성전자와 TSMC와도 같은 2027년이다. 치열한 3파전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렇듯 인텔의 기습적 참전에 따라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의 지각변동은 졸지에 피할 수 없는 치열한 격전지가 됐다. 주력인 메모리반도체의 업황 회복이 아직은 더딘데 자칫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인텔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 Force)’에 따르면 현재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대만의 TSMC(57.9%)와 한국의 삼성전자(12.4%),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6.2%), 대만의 UMC(6%), 중국의 SMIC(5.4%) 등이다. ‘겔싱어’ 인텔 CEO는 “현재 아시아 특정 지역에서 반도체의 80%를 생산하는 반도체 제조 비중을 10년 내 미국·유럽 50%와 아시아 50%로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 생산 물량의 30%를 빼앗겠다는 당차고 야심에 가득 찬 계획이지만 우리에겐 소름 돋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의 경기 회복 부진에다 파운드리에서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인텔의 추격은 한국에 더 큰 위협이자 부담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일단 미국 주도 반도체 ‘칩4 동맹’의 일원으로서 반도체 공급망 개편에서 배제될 가능성은 적겠지만, 자칫 ‘반도체 아메리카 원팀’의 여파로 첨단 AI반도체 생산 등에서 경쟁력이 약화할 우려가 적지 않음을 각별 유념하고, 주도 면밀한 선제 대응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인텔의 선전포고가 무서운 건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은 전폭적이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약 2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데 이어서 인텔에도 100억 달러(약 13조 2,900억 원)를 지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기업도 인텔을 밀어주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고객이 된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에 AI반도체급인 1.8나노 반도체 공급을 맡기는 계약을 체결했다며, “인텔의 최첨단 공장 중 한 곳에서 생산할 칩을 설계하고 있다”라고 밝힌 것은 이를 방증(傍證)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생성형AI 등장 이래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책은 오픈AI 등의 AI반도체 개발 경쟁에 맞춰 첨단 AI반도체 생산의 자족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파운드리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정황을 보면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 아메리카 원팀’ 분위기는 더욱 선명해지고 더더욱 뚜렷해졌다.

이런 냉엄하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자산(IP) 기업 중 하나인 ‘ARM’과 손잡고, 3나노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로 하는 등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기반의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 2월 21일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부는 영국‘ARM’의 차세대 시스템온칩(SoC) IP를 자사의 GAA 공정에 최적화하는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팹리스 기업의 GAA 공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차세대 제품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국가 대항전’격인 반도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면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주요국들의 보조금 경쟁과 자국기업 선호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파운드리·D램·낸드 등 전 부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연초 대비 주가 상승폭이 엔비디아(NVIDIA) 58.6%, TSMC 17.5%, 도쿄일렉트론 44.8%, AMD 23.4% 에 달하지만 삼성전자는 마니너스(-) 7.1% 하락한 것은 이같은 위협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이제 반도체산업은 민간 주도에서 국가대항전으로 바뀌었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미래 반도체산업은 미국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보조금 390억 달러와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70조 원)를 쏟아붓는다. 일본 정부도 ‘반도체 왕국’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서 반도체 산업을 제패하고, 세계를 리딩하겠다.”며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을 세우웠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2020년 편성한 2조 엔에 이어 추가로 3조 4,000억 엔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 자금은 반도체 생산개발 지원 등을 위한 ‘포스트 5G 정보통신시스템 연구’와 ‘특정반도체 기금’ 그리고 ‘안정공급확보지원기금’ 등 3대 분야에 쓰일 예정이다. 대만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 │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떠받드는 대만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라이칭더(頼清徳)’ 대만 총통 당선인은 반도체의 IC 설계 분야 점유율을 현 20%대에서 40%대로, 첨단 제조공정 점유율도 80%까지 높일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3,000억 대만달러(약 12조 7,000억 원)를 투입하려 한다. 특히 ‘라이칭더’ 당선인은 ‘타오위안·신주·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반도체 시장은 급성장이 예상되는 기대심리에 기반한 AI 반도체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오픈AI를 필두로 투자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다양한 합종연횡(合從連橫)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AI의 등장으로 격변의 시기를 맞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한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인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반도체 재건의 기치를 내건 일본은 대만의 TSMC 구마모토 공장은 365일 24시간 공사로 불과 20개월 만에 준공했다. 촌각을 다투는 경쟁의 현장에서 미적댈 시간조차 없음을 보여준 한 단면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투자에 대한 보조금 규모 등이 불투명한 상태로 매우 불안하다. 국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도 경쟁국 대비 높은 법인세율·최저한세 등으로 효과가 미미할 뿐이다. 물론 국내 반도체 기업에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살길은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뿐임을 각별 유념하고 명심해야만 한다. 정부도 비상한 각오와 결연한 의지를 갖고 실시하거나 놓치지 않도록 파격적 지원과 정교한 외교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치밀한 산업 정책으로 이를 적극 뒷받침 해야만 할 것이다.

사진=박근종
사진=박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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