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적인 시 세계를 통해 독자 스스로의 과거를 접목시키게 하는 힘
우리가 바란 건 무엇이었을까?, 詩 '기다리는 사람' 포인트

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시선 472 / 사진제공=창작과비평
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창비시선 472 / 사진제공=창작과비평

[문화뉴스 이경민 기자] 진실 담긴 문장으로 독자에게 힘을 보태어준다. 오늘 소개할 시인은 청춘을 노래하는 최지 시인이다. 

최지인 시인은 1990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나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10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을 수혜하고 제40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출간 시집으로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등이 있다. 현재는 창작 동인 ‘뿔’과 창작 집단 ‘unlook’에서 활동 중이다.

오늘은 최지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를 기준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 시집은 2022년에 출간되었으며, 첫 시집을 내고 5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며, 2022년 제40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와 같이 시인은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며, 리얼리즘적인 시 세계를 통해 독자 스스로의 과거를 접목시키게 한다. 이번 시집 역시 제목을 보면 단순하게 일과 사랑에 대해 나올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예상은 맞았지만, 사랑에 대하여 시인만의 방식을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진가를 보여준다. 시에 묻은 진술이 가지는 힘은 위대하다.

특히 모든 사람이 항상 생각하는 요소인 ‘사랑’과 평생 포기할 수 없는 ‘일’이 합쳐졌기 때문에 진술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시인은 시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일과 사랑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겠지만 둘이 융합하여 나오는 시도 있다.

아이, 청소년, 청년, 노인 각 세대가 나온다. 독자가 무조건 경험할 수 있는 아이와 앞으로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 노인 세대까지 다양한 인물이 나오면서 회상하거나 미래를 그리는 다채로운 생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좋은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시 전문을 올리면서 시집을 읽을 때 포인트를 말해보려 한다.

기다리는 사람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 그럴 때마다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먹고살 궁리 같은 건 흘려보냈다

어떤 사랑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는 늦은 밤이고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은 고작 설거지 따위였다 그사이 곰팡이가 슬었고 주말 동안 개수대에 쌓인 컵과 그릇들을 씻어 정리했다

멀쩡해 보여도 이 집에는 곰팡이가 떠다녔다 넓은 집에 살면 베란다에 화분도 여러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고 몇 년은 성실히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저축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키스를 하다가도 우리는 생각에 빠졌다 그만할까 새벽이면 윗집에서 세탁기 소리가 났다 온종일 일하니까 빨래할 시간도 없었을 거야 출근할 때 양말이 없으면 곤란하잖아 원통이 빠르게 회전하고 물 흐르고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암벽을 오르던 사람도 중간에 맥이 풀어지면 잠깐 쉬기도 한 대 붙어만 있으면 괜찮아 우리에겐 구멍이 하나쯤 있고 그 구멍 속으로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다 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 라고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렸다

-최지인 作 기다리는 사람 전문 

이 시에서는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연인들이 겪을 수 있는 갈등과 사랑에 대해 툭툭 뱉어낸다. 시에 담긴 여섯 개의 연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본다.

1연부터 살펴보면 힘든 회사 생활을 위로하지만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볼 수 있다. 힘들어하는 연인보다 돈이 없는 여인이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되새기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한다.

화자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다. 돈은 개인의 노력과 비례하지 않고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에 위험을 따르지 않는다면 큰돈을 벌 수 없는 게 사회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서로가 있기에 의지하고 사랑을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2연에서 보여주는 사소한 일상과 게으른 모습이 비로소 그들의 사랑이다. 사랑을 하다 보면 원하는 게 생긴다. “화분도 여러 개 놓고 고양이도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을 보면 이들은 항상 같이 지내지만 부족한 요소들을 채우려고 하는 의지가 보인다.

[오늘의 詩] 사랑을 일로 투영하는 방식, 청춘을 노래하는 리얼리스트 최지인 / 사진제공=Unsplash, photo nic
[오늘의 詩] 사랑을 일로 투영하는 방식, 청춘을 노래하는 리얼리스트 최지인 / 사진제공=Unsplash, photo nic

3연에서 이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로 사랑할 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다른 모든 것으로 사랑이 더욱 커지게끔 도움받고 싶어 한다. 그들은 돈이 없어 행복했던 생각을 금방 접고서 바로 씁쓸한 현실을 직시한다. 이런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그만둘 수 없다.

4연의 전체적인 서사를 보면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 서로에게 책임을 물지 않고 윗집의 세탁기 소리를 이해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5연은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암벽 등반가를 제시하고 쉬기도 한다는 위로의 말은 애정이 충분히 느껴진다. 우리에게 있는 구멍 즉, 돈이 없는 상황을 돌려 말하고 동시에 해결책으로 “그 구멍 속으로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다보면 빛도 가느다란 선처럼 보일 테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어두워질 거라고” 말을 건넨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구멍은 우리의 사랑으로 점점 메울 수 있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6연의 묘사로 이들은 그런데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이 보여주는 사랑은 일에 대한 갈등으로 시작해 결국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시집에서 나오는 다양한 사랑은 누구나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게 풀어내고 있다.

최지인 시인의 다양한 시를 읽어보고 싶다면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특별하지 않아도 멋있는 청춘이다.

쉬워서 바라는 사랑과 어려워서 한 번쯤 바라는 사랑의 상황이 유별나서 더욱 애틋하다.

문화뉴스 / 이경민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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