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참담한 비극, 섬세한 시의 언어로 풀어내다
진솔하고 담백한 서정의 방식으로 독자를 매료

사진 제공=출판사 걷는사람 / 걷는사람 시인선 82 '나는 죽은 사람이다'
사진 제공=출판사 걷는사람 / 걷는사람 시인선 82 '나는 죽은 사람이다'

[문화뉴스 이경민 기자] 참혹한 역사를 시의 언어로 담담하게 전해주는 이야기꾼을 소개한다. 오늘 소개할 시인은 스스로 '나무 중독자'라고 칭하는 이경교 시인이다.

이경교 시인은 195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현재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여전히 작품 활동을 나아가고 있다. 다양한 시집과, 저서, 수필집을 출간한 이력이 있다.

이경교 시인의 최근 작품 '나는 죽은 사람이다'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겠다. 이 작품은 '걷는사람 시인선' 82번째로 출간된 시집으로, 식민지 시대를 생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아버지와 할미, 그리고 그들의 슬픔을 그대로 전달하며, 식민지 시대의 상실과 슬픔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집의 제목인 '나는 죽은 사람이다'는 문장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이러한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아비는 죽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징용에 차출되어 탈출할 때, 죽을 고비를 제대로 넘겼지 이제 나는 식민지인이 아니다! 기쁜 눈물이 마르기도 전 다시 6·25가 터진 거야 이번엔 인민군에 끌려가게 되었지 산기슭에서 단체로 똥을 누고 있었지 상상이 되니? 숲 그늘마다 빼곡히 앉아 똥을 싸는 청년들…… 내장까지 다 버리고 싶었지 외로움의 빛깔은 어스름 빛이란 걸 알았지 문득 눈앞에 옻나무가 환하게 서 있더구나 어스름이 등불로 바뀔 때도 있지 그게 뭘 의미하겠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 옻나무 순을 꺾어 천천히 밑을 씻었단다 밑이 뜨거워진 건 옴이 내장을 적셨기 때문이지 내장인들 얼마나 놀랐겠니? 온몸이 불덩이였지 좁쌀 같은 발진이 혀와 동공을 뒤덮었을 때, 죽은 나를 버리고 그들은 떠났단다 그때 아비는 죽음과 내기를 한 거야 아비는 부활을 모르지만, 죽은 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들었지 마른 등불, 혹은 끈끈한 옻나무 진, 그 사이로 흐르는 하얀 목소리, 그 흰빛에 싸여 부활은 천천히 걸어왔단다

-'나는 죽은 사람이다' 中

시집의 제목이자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의 부분이다.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라는 독자의 질문에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구절로 순식간에 의문이 사라진다. 전문의 내용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참혹함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감상 포인트는 무엇일까? 

사진 제공=Unsplash, Jacob Grishey
사진 제공=Unsplash, Jacob Grishey

첫째로 색다른 이야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말, 행동, 과거 그리고 깨달음과 같이 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고통이 잠재된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 안에 슬픔과 이루지 못한 꿈 같은 것들이 거대한 기록처럼 남아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다. 전쟁, 징용, 죽음과 같은 요소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깊은 수면의 모래 같은 서사가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독자가 상상을 통해 장면을 스케치 할 수 있다. 개연성이 확실한 서사, 세부적인 묘사, 심리까지 모든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읽는 독자가 스케치를 통해 장면들을 끊임없이 그릴 수 있다. '징용', '탈출', '식민지인', '6·25', '산기슭', '똥을 싸는 청년들', '옻나무', '어스름', '등불', '좁쌀  같은 발진', '죽은 나를 버리고 그들은 떠났다', '죽음과 내기', '목소리', '부활' 등과 같이 묘사를 위한 단어가 아닌 직접적인 제시로 시인은 명확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제목의 힘이다. 제목은 글의 얼굴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제목이 엉망이라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든 경향이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제목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본문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가 하면 제목에 의도를 드러내고 본문에 글의 의도를 숨기는 방식으로 서술할 수도 있다. 

'나는 죽은 사람이다'라는 제목에서 독자가 알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이 죽었다' 뿐이다. 시 전문을 읽어보면 아버지의 역사, 전쟁으로 생과 사가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옻 때문에 빨갛게 오른 몸을 보고 적군이 죽었다고 착각해 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죽음과 내기했다는 아버지, 결국 부활했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 칭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시인은  '아비는 죽은 사람이다'가 아닌 '나는 죽은 사람이다'를 제목으로 써넣어 공감적 접근을 통해 담담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이것이 바로 제목의 힘이다. '아비는 죽은 사람이다'를 제목으로 사용했을 경우, 상대의 죽음 즉, 바라봄의 입장인 셈이다. '나'라는 주체를 통해 독자에게 몰입감을 더욱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시인은 산문적 구성을 사용하여 독자를 시에 집중시키고 가독성을 끌어올렸다. 과하지 않은 비유와 묘사, 시인만이 가진 상상력으로 구축한 시에서 다시금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모더니즘이 많아진 현대시에서 진솔하고 담백한 서정시는 빛을 뿜는다. 

이 시집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시인은 사라지고 잊히는 모든 슬픔을 시의 언어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런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더욱더 기억되고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 곁에 살아있는 사람으로 남아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의 詩'는 대한민국의 시인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감상 포인트를 제시한다. 시는 소설과는 다르게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시의 미학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기획을 시작했다.

시가 어렵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대충 읽고 덮는다면 이해보다 감각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여 읽어보자. 문학이 어려운 것은 독자가 해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두드러지게 혹은 숨기면서 어떻게든 표현하려 한다. 결국 아무 의미 없이 쓰는 시는 없다는 것이다.

시를 읽을 때는 이해보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자. 문학은 독자가 해설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창작자는 항상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려 한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를 받아들여 상상하며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해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시를 감상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자.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문학 그것이 바로 '시'의 매력이다.

문화뉴스 / 이경민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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