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아름다움에 대하여...詩 '별들의 속삭임' 포인트
'하안 사슴 연못', 시인의 서정 세계와 주변의 익숙함을 낯설게 하는 마법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창비시선 493 / 사진제공=창작과 비평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창비시선 493 / 사진제공=창작과 비평

[문화뉴스 이경민 기자] 진실 담긴 감각적 이미지가 마법처럼 환생한다. 오늘 소개할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 황유원 시인이다.

황유원 시인은 1982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2015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출간 시집으로는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초자연적 3D 프린팅’, ‘하얀 사슴 연못’이 있다.

등단 햇수가 10년이 넘은 최근 시집 ‘하얀 사슴 연못’을 기준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얀 사슴 연못’은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이며, 새로운 시집의 제목이 되었다.

시인은 등단 당시에, 남들과 다른 사유의 깊이와 재치 있는 언어로 주목 받았다. 시인의 세계는 좀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집중 높은 관찰력과 튼튼한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네 번째 시집 ‘하얀 사슴 연못’은 제목부터 ‘흰’ 것에 집중하게 된다. 생명, 사물, 풍경 등 본질적으로 하얀 이미지와 하얗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시집 ‘하얀 사슴 연못’은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탐구하려는 자세에서 매력이 돋보인다.

시 전문을 올리면서 시집을 읽을 때 포인트를 말해보려 한다.

별들의 속삭임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를
별들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

별들의 속삭임을 들어본 건 아마
야쿠트인들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들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소리에
별들의 속삭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 없었을 테니까

너무 춥지 않았더라면
너무 추워서 하늘을 날던 새들이 나는 도중 얼어
땅에 쿵,
얼음덩어리로 떨어질 정도가 아니었더라면
별들은 속삭이지도 않았을거다

별들의 속삭임은 가혹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가혹한 lo-fi 사운드
그것은 가청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아름다움이고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시베리아 아닌 그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밖에서 누군가와 나눠 낀 이어폰에서도 별들이 얼어
사탕처럼 깨지며 흩날리는
가루 소리를 듣고

머리가 당장 깨져버릴 것처럼 맑을 때
머리가 벌써 깨져버린 것처럼 맑을 때
그런 맑고 추운 밤이면 사방 어디서라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 들려온다
무심한 아름다움이다

-황유원 作 별들의 속삭임 전문

황유원 시인의 시적 세계는 서정으로 가득 찬 언어들이면서 아름답다. 시가 대체로 친절한데, 상상하기 쉬우면서 진실성이 담긴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겨울과 서정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무심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우리는 살면서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는 일이 드물다. 흔히 들어볼 수 없는 야쿠트인은 잘 모르는 무관심 혹은 무지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야쿠트인을 알아도 그들이 사는 방식을 모두 알 리가 없다.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이렇듯 무관심 속에서 생명력 있는 '별들의 속삭임'을 관찰해 언어로 표현한 시인의 능력을 볼 수 있다.

바라봄에 그치지 않고 대상이 가진 마음이나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의 사유는 억지로 꿰어진 것이 아닌 시인의 진정성으로 인해 '별들의 속삭임'은 우리에게 공감을 끌어낸다. 혹은 독자가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겨울에 대한 기시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의 詩] 아름다운 서정 세계, 언어의 마술사 황유원 / 사진제공=Unsplash, hansjurgen007
[오늘의 詩] 아름다운 서정 세계, 언어의 마술사 황유원 / 사진제공=Unsplash, hansjurgen007

어쩌면 야쿠트인 대대로 내려오는 신화처럼 보일 수 있다. lo-fi 사운드와 별들의 속삭임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의 연관성과 닮았다. 과거 장비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저음질로 녹음된 음악이 다시 유행을 타는 것. 이는 유행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많이 나오지만, 억지로 만들어지는 음악인만큼 가혹해진 것이다. 

반대로 무심함 속에서 재생되는 별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선 머리가 깨져버릴 것 처럼 맑은 상태여야 한다. 귀를 기울여서도 아닌 강한 추위가 와서도 아니다. 시인은 지각을 통한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닌 무심 속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시집을 모두 읽고 익숙해진 것이 무심해지는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눈이 쌓인 겨울 하얗게 뒤덮인 아스팔트를 밟는 소리를 즐기는 날이 온다. 겨울의 끝 무렵 더 이상 눈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갈 때, 시베리아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별들의 속삭임이 존재하는 것이다. 참으로 무심한 아름다움이다.

주변의 익숙함을 낯설게 하는 마법과 시인의 서정 세계에 빠지고 싶다면 시집 '하얀 사슴 연못'을 읽길 바란다. 

오늘의 詩'는 대한민국의 시인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감상 포인트를 제시한다. 시는 소설과는 다르게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시의 미학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기획을 시작했다.

시가 어렵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대충 읽고 덮는다면 이해보다 감각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여 읽어보자. 문학이 어려운 것은 독자가 해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두드러지게 혹은 숨기면서 어떻게든 표현하려 한다. 결국 아무 의미 없이 쓰는 시는 없다는 것이다.

시를 읽을 때는 이해보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에 집중하자. 문학은 독자가 해설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창작자는 항상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려 한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를 받아들여 상상하며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해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시를 감상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자.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문학 그것이 바로 '시'의 매력이다.

기사에서 인용한 황유원 시인의 시 출처를 남긴다.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창작과 비평, 2023, 14~15쪽)

문화뉴스 / 이경민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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