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동작지부 참가작 차범석 작 윤현식 연출의 산불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차범석 선생은 1955년<밀주>와 1956년 <귀향>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창작극, 창극, 번역극, 무용극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마다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관객들의 정서와 부합되어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가장 많은 작품이 공연된 작가로, 방송극을 집필하고 연출과 평론, 그리고 행정가로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과 예총 부회장, 그리고 예술원장을 역임했다. 차범석 선생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의식'은 사실주의 연극의 완성이라는 업적도 남겼다.

<산불>은 1962년 12월 이진순 선생 연출로 명동국립극장에서의 초연이 필자의 기억에 남는다. 박상익, 백성희, 나옥주, 백수련, 박성대, 김금지, 이진수, 김순철, 박경득, 조현배 그 외 많은 배우들이 출연해 호연을 했고, 특히 규복역으로 출연한 박상대를 잊지 못한다. 그 후 규복역으로 김성옥, 이묵원, 이상직, 조민기로 이어졌고, 영화에서는 신성일이 호연했다.

연극은 도입에 무대하수 쪽에 자리한 타악과 대금 그리고 현악 소리에 맞춰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아름다운 산골 대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너와지붕의 조그마한 집 두 채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다. 옛 꾀죄죄한 한복차림의 여인네들의 모습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언성을 높여 다투는 장면이 전개가 된다. 곧이어 무대 하수 쪽에 중간에 마련된 언덕길을 통해 등장한 인민군 복장의 군인과 그들이 공출해 가는 잡곡, 그리고 여인네들의 사투리로, 시대적 배경이 6·25동란 중이고, 전라도 산골마을에서 대부분이 홀로 된, 젊거나 나이든 여인들이 전쟁을 겪으며 엮어가는 연극임을 감지하게 된다.

 

곧 들어 닥칠 춘궁기와 보릿고개가 예견되는 상황과 할아버지의 음식투정에 이어 원작의 인민군 소속부대에서 탈출한 부상병 규복 대신 인민군 점령지에서 도망 다니는 청년으로 설정된 규복이 과수댁 마을로 숨어들고, 주인공 점례의 구원과 보살핌이 전개된다. 장면이 전환될 때 흘러나오는 애절하고 처연한 반주와 노래는 연극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배경음악이 되고, 부녀자들의 다툼이나 극적 긴장감이 높아갈 때 문을 열고 밥투정을 하는 치매노인의 고성은 객석의 폭소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경상도 여자 필목행상이 색색가지 옷감 보따리를 이고 등장을 하고,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치장에 마음을 두는 여인네들의 심정이 은연중에 드러나는가 하면, 상수 쪽에 설정된 산속 규복의 은신처에서 벌어지는 점례와 규복의 마음과 몸을 엮어가는 장면은 관객의 평상심을 은근히 동요시키며 극 속으로 몰입을 시킨다. 기아로 주린 몸인데도 욕정은 식지를 않는지 이웃 여인 사월이가 점례와 규복의 관계를 눈치 채고, 규복의 주린 배를 점례와 나누어 채워주기로 하고, 대신 규복의 육체를 공유하기로 한다. 규복은 주린 배 때문에 점례의 집에 나타나자 치매노인 그를 젊은 머슴으로 오인한다.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월의 헛구역질로 임신사실이 들어나고, 국군은 공비의 출몰지역의 시계정리조치에 따라, 여인네들의 결사저지에도 불구하고, 대나무 숲에 불을 지른다. 대단원에서 연극 제목처럼 <산불>은 무대를 온통 불꽃과 매연으로 뒤덮고, 불을 피해 도망하려던 규복은 사살되어 시체로 끌려 들어와 무대 한가운데에 내 동댕이쳐진다. 치매노인 자신의 집 머슴인데 죽었다며 아는 체를 한다. 가족은 이런 할아버지의 행동에 노망에 치매까지 겹쳤다는 소리를 한다.

사월은 양잿물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점례가 규복의 시신을 메 만지며 들썩이는 소리 없는 통곡은, 연주자의 처연한 반주와 애절한 노래와 어우러져 관객의 가슴에 깊은 멍울을 새겨 넣는다.

 

차범석 원작을 고스란히 살려 각색을 한 윤현식 연출가의 공연은 연극 <산불>의 연극성, 작품성, 대중성을 부각시켰고, 김선화와 오미연의 열연과 권병길의 독특한 성격설정, 김연진과 류진현의 미모와 호연, 배우진의 성적매력, 그리고 장영주, 이애경, 김은경, 리우진, 진이자, 장지은, 이한희, 홍지인, 김희경, 정유미, 유옥주, 김지원, 주진혁 손혁, 윤지태, 류수현, 조원석, 최재희, 조혜림, 구자경, 강한솔, 박은희 등 출연자들의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이 조화를 이루어 관객의 환호와 갈채를 이끌어 내는 성공적인 공연이 되었다.

무대는 극단 명장의 탁월한 장치와 류수현의 조명, 최해리의 음향, 이훈경의 의상과 분장이 어우러져 극적 분위기를 100%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드라마터그 한지훈, 기획 원종선, 진행 이종호의 열정과 노력이 하나가 되어, 제2회 대한민국 연극제 서울예선 참가작 구로지부의 차범석 작, 윤현식 연출의 <산불>을 수준급 공연작으로 창출시켰다.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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