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디아가 만나는 대한민국 최고예술가 100'은 오랜 문화예술계 및 방송 경력으로 다져진 그가 문화뉴스의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코너다. 대한민국의 예술계를 이끌어온 아티스트들의 노고를 기리고 그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기획됐다. 어디에서도 쉽게 듣지 못하는 탑아티스트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박리디아는?]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어릴 때부터 놀이로 시작한 연극이 지금은 그의 삶이 됐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송현옥 세종대 교수다.

송현옥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만들면서 자랐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을 모아 연극을 만든 것은 시작이었다. 중학교 땐 극작과 동시에 연기도 했다. 또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드라마를 전공하며 동시에 영어연극반에서 연극을 했다. 연극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에 고려대학원 영문학 박사학위까지 수료했다. 연극평론과 드라마 투르기(극 구성)로 연극계에 데뷔했고, 결국 직접 연극을 하고 싶다는 갈증에 연출을 하게 됐다. 2002년 처음 연출을 시작했으며, 2006년 극단 물결을 창단해 대표가 됐다. 여기에 세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최근엔 무용과 연극이 결합한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인 PADAF의 공동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

송현옥 교수는 이런 열정을 인정받아 최근 많은 곳에서 상을 받았다. 2013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제33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연극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엔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에서 '햄릿, 여자의 아들'로 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월엔 한국무용학회에서 공연예술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학교수, 극단 대표, 극 연출, 공동운영위원장 등 상당히 바쁜 날들을 보내는 송현옥 교수를 만났다. 
 

   
 

그의 이런 열정적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온 건지, 앞으로 그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은 어떤 건지 들어봤다. 교수와 연출일을 동시에 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송현옥 교수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차분히 질문에 응했다.

문화뉴스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 예술가 100인'에 선정됐다. 
ㄴ 문화뉴스에서 저와 제 작품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작품을 할 때마다 어려운 난산을 한 어머니의 느낌을 받는다. 자식들이 태어나 잘 성장하는 것을 보는듯한 기쁨이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건데, 그거에 대해 작은 보상인 것 같다.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ㄴ 요즘엔 대학로 자유소극장에서 극단 물결의 정기 공연인 연극 '리시스트라테' 앞두고 연습 중이다. 3월 10일부터 시작한다.

연극 '리시스트라테'는 어떤 작품인가?
ㄴ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고전 희극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는데, 당시의 선동정치를 풍자하는 희극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여자들이 힘을 합쳐 남편들과 잠자리를 거부하는 '섹스 스트라이크'를 벌이는 내용이다. 두 도시국가의 전쟁을 보며, 요즘엔 꼭 총과 칼을 든 것만이 전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많은 이분법적 가치관, 경쟁사회에서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남자들과 인류 역사를 통틀어본 '수컷'들의 전쟁을 풍자하고 싶었다.

작품 자체가 굉장히 대중적이면서도 유쾌하다. 카메오들도 많이 오시는데,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이 무대 위에 올라간다. 무대와 객석이 해체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근엄, 이념, 경쟁, 체면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게 할 것이다. 본능적이고 유쾌한 '나'를 만드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이 작품의 모토다. 이걸 대학원 애들 데리고 했을 때, "송현옥 선생님이 저런 코드가!" 이러면서 애들이 다 놀랬다. 밥 먹고, 취침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말하지만, 밤에 부부가 자는 인간적인 것은 체면상 다 말을 못하는데 그런 걸 다 벗겨버리려 한다. 자신이 행복하면 되는데, 뭐를 위해서 경쟁하며 미친 듯이 사는지에 대해 논하려 한다.
 

   
▲ 연극 '리시스트라테' 연습실 연습 중 디렉션을 주고 있는 송현옥 교수

지난 1월 한국무용학회에서 공연예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ㄴ 임형택 서울예술대 교수님, 한선숙 상명대 교수님과 같이 받았다. 무용과 연극이 같이 융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10년 정도 해왔고, 그런 비전을 PADAF(Play And Dance Art Festival)를 조직하면서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선보였다. 무용 포럼도 많이 했는데 워크숍을 하면서 젊은 연출가와 무용 안무가들을 한 달간 만나기도 했다. 많은 공연이 지금까지 무대에 올려졌는데, 무용과 연극이 만나는 통로를 제공했다는 점을 높이 사주신 것 같다.

어떤 세계관으로 작품 연출을 하나?
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참 실존적인 것 같다. 그리고 여성적이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대사 언어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신체 언어를 사용하면서 무대 안의 한 편의 시를 만들고 싶은 공연을 추구한다. 그런 조형미를 생각하며 상징적, 은유적, 압축적인 모든 무대 언어의 사용을 추구한다. 파워블로거 중 한 명이 이런 평을 남겼었다. "연극에 음악이 접목해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졌다. 연극에 무용을 도입한 것은 한국에서 송현옥이 처음인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연극 속에 무용이 담긴 것은 옛날부터 있었다. 큰 범주로 보면 연극 용어론 피지컬 시어터이고, 무용 쪽으로 보면 피나 바우쉬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연극에서 그런 무용적인 신체 언어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건 제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은 자부심이 있다. 대부분은 연극, 무용을 샐러드 볼에 담긴 오이와 당근처럼 구분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작품엔 무용과 연극의 이분화가 아닌 용광로처럼 녹여져 있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영향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았나?
ㄴ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국내 최초의 추상조각가로 유명한 송영수 조각가다. 세미앱스트랙(Semiabstract, 반추상) 표현을 많이 들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각했을 당시의 작가 노트를 본 적이 없었다. 5년 전인 2010년, 돌아가신 40주기 기념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송영수 전을 했었다. 아버지를 재조명했을 때, 우연히 아버지의 작가 노트를 보게 됐다. 실존적이며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지금 내가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에 벅차올라 밤새 울었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그런 반추상적인 작품들로 미학적 가치관이나 취향이 녹아들어 온 것 같다.

   
▲ 연극 '리시스트라테'를 연출한 송현옥 교수

그럼 무용이 아니라 연극에 빠지게 된 계기는?
ㄴ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만들면서 놀은 것 같다.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연극 학예회도 열었다. 중학교 땐 학교 장기대회에서 극작을 쓰며, 배우도 했다. 대학교 때도 영어연극반에 가서 연극을 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게 된 것은 평론가 때문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드라마를 전공하며 박사 학위까지 땄지만, 연극평론을 하다가 드라마 투르기(극 구성)라는 작업을 하면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다. 그래서 2002년 처음 연출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극단 물결을 창단한 것은 2006년부터다. 연극이 영어로 'Play'다. 제가 했던 '플레이'가 '잡'(Job, 직업)이 된 것 같다.

연출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세 작품을 꼽는다면?
ㄴ 첫 번째로 '폭풍의 언덕'(2006년)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을 각색해서 지금 뮤지컬로도 준비 중이다. 그 작품의 각색을 연극적으로 잘해서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았다. 굉장히 사실주의적인 작품이다. 두 번째 '밑바닥에서'(2010년)는 막심 고르끼의 사실주의를 실존적이며 상징적인 극으로 풀었었다. 2011년 모스크바 초청 공연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마지막은 '5분간의 청혼'(2010년)이다. 이 작품도 2012년 모스크바에서 공연한 후 체코에서도 했다. 이 작품은 안톤 체홉의 연극 '벚꽃동산'의 한 장면에서 따왔다. 바랴와 로빠힌이 기차역으로 떠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 5분 동안 청혼을 하려고 하는데, 머뭇거리는 장면이 있다. 그 씬을 상상해서 그들의 무의식과 그 당시 사회의 무의식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로빠힌이 계속 시간이 흘러간다고 하지만, 바랴의 시간은 멈춰있기도 하고 과거로도 간다. 그걸 토대로 실존적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론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작품들이 못났건 잘났건 다 내 자식 같다.

   
▲ 연극 '5분간의 청혼'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 당시 포스터 (오른쪽)

'벚꽃동산'에서 시간의 의미를 따진 사람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다.
ㄴ 이 작품을 가지고 러시아에 갔을 때, 고르끼 대학의 교수님이 오셔서 보셨었다. 그 교수님이 자기가 안톤 체홉을 30년가량 파고들었는데, 이렇게 무의식적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체홉에게서 끌어낸 것을 본인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래서 감동하여 운 것 같다. (웃음) 왜냐하면 한국에서 이걸 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로 작품을 했을 때의 모든 어려움과 힘들었던 것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연극 연출가면서 연극을 논하는 학자다. 학자로 바라본 시각이 연극 연출을 하는 것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ㄴ 고전 작품을 많이 연출했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몇백 년의 역사가 흐르며 고전이라 자리매김한 작품에 내가 그 작품을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뭔가 맞지 않다고 본다. 이미 훌륭한 작품 연출가들의 많은 공연이 열렸기 때문에, 나만의 해석이 뭔가 있나 고민을 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래서 고전의 현대적 의미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먼저 한다. 왜냐면 고전은 시간을 이겨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대 셰익스피어와 체홉은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그 작품의 핵심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한다.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 주제, 철학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연출을 할 때 가장 영감을 받은 이들은 누구인가?
ㄴ 리투아니아의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가 있다. 무대 연출법이 내가 꿈꾸는 것과 많은 연관이 있다. 좀 더 무용적이면서,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ㄴ PADAF를 여름에 또 한다. 이번 PADAF는 규모가 더 커져서 영상, 패션, 음악 모두를 다루는 융합 공연으로 발전했다. 워크숍을 주도하면서 작품들을 올리는 것이 목표인데, 작년에 일하는 여성 7명을 모여서 '크리스마스 패션쇼'를 했었다. 아나운서, 교수, 판사 출신 변호사 등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패션쇼 준비를 하는 것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굉장한 호평을 받았는데, 패션과 연극의 최초 융합이라는 평을 해주셨다. 웨딩드레스로는 한국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명순 패션디자이너가 출연하시면서 직접 패션쇼와 연극을 같이 했었다. 이번에도 PADAF 공식 초청작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 연극 '밑바닥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 당시 포스터를 들고 있는 송현옥 교수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가 어떻게 나아갔으면 좋겠는가?
ㄴ 우리나라에선 문화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불행할 것 같다. 어느 순간 가난한 것이 부끄러워진 게 된 이 세태가 너무 심각한데, 문화만이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본다. 문화가 그래서 중요하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문화가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천연자원이 있거나, 영토가 넓거나, 옆 나라인 중국처럼 무지막지한 문화유산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상님들에게 받은 것은 끼, 멋, 정서, 창의성이 있다. 이런 것들을 살려서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 같다. 한류가 연예인 몇 명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기초적인 문화가 발전하는 바탕 아래에 한류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K팝, K드라마 뿐 아니라 전반적인 K컬처가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연극 연출가, 연극학자로 가고 싶은 학도들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본다. "내가 왜 이 길을 들어섰지"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버티면서 노력하면 꼭 보상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끝으로 문화뉴스에 하고 싶은 말은?
ㄴ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 '문화뉴스'는 문화적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하면서 경제적인 엄청난 이득이 나오는 것은 아닐 거라 본다. 책임감과 소명의식, 그리고 즐거움은 문화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바인 것 같다. 사실 관객들이 연극을 보러오면서 즐거워하지만, 어떤 소스에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연극은 예술이기 때문에 해석이 더 필요하다. 연극 언어를 익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대중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이 돼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구, 바둑, 골프, 테니스를 배울 때 'How to Play'를 알고 배우면 그 다음이 재밌어진다. 연극은 'How to Watch'가 아직 낯선 것 같은데, 문화뉴스가 그 방법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글] 문화뉴스 박리디아 (Lydia Park)_본지 부사장 golydia@mhns.co.kr
[정리·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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