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디아가 만나는 대한민국 최고예술가 100'은 오랜 문화예술계 및 방송 경력으로 다져진 그가 문화뉴스의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코너다. 대한민국의 예술계를 이끌어온 아티스트들의 노고를 기리고 그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기획됐다. 어디에서도 쉽게 듣지 못하는 탑아티스드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박리디아는?]
 
 
 
[문화뉴스] 평론(評論).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하는 행위나 그런 글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연극평론가'는 공연을 공정하게 평가해서 연극의 생산자에게는 공연 개선의 방법과 방향을 제시해 주고 소비자에게는 좋은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해 주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올해 초, 그런 '연극평론가 출신'으로 국립극단의 수장이 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윤철 예술감독이다.

김 감독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국제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국제연극평론지 '크리티컬 스테이지스'의 발행인으로 있다.1995년 올해의 연극평론가상, 2005년 여석기 연극 평론가상을 받은 대한민국 '연극평론계'의 거목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립예술자료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그가 우리나라 연극을 대표하는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이 됐다. 배우가 아닌 평론가 출신으로 국립극단의 이끌게 된 김윤철 예술감독의 지난 1년간 소회를 들어봤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하고 나서 9개월 많은 일이 있었다. 
ㄴ 평론가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된다는 일이 참 드문 일이다. 대체로 연극연출가가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선례가 전혀 없는 경우는 아니다. 핀란드의 국립극단은 극작가가 맡고 있고, 영국의 국립극단도 한때 리터러리 디렉터로 케네스 타이난이라는 평론가를 둔 적이 있다. 현재 런던 바비칸 시어터의 예술감독도 평론가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국립극단은 대체로 배우 아니면 연출가가 맡아온 것이 사실이다.
 
공연 예술계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것 같다.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ㄴ 40년 동안 현장에서 연극을 지켜봤던 사람으로 국립극단을 위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동안 국제연극평론가협회에서 집행위원으로, 부회장으로, 회장으로 중심적인 활동을 하면서 익힌 국제적인 감각을 국립극단에 접목하면 극단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임명을 둘러싸고 있었던 논란은 나로 하여금 더욱 긴장해서 극단 일에 임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최선을 다해 볼 뿐이다.
외국에서는 극작가, 배우, 연출가, 평론가 등 영역을 크게 가리지 않고 적임자를 찾고 있다. 우리의 경우 영역에 대한 구분이 좀 심하기는 하다. 연극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런 벽을 쌓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결국 긍정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문화뉴스>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가 100인'으로 선정됐다. 소감이 있다면? 
ㄴ 예술가 100인에 평론가를 선정했다는 것이 의외이기는 했지만, 평론가로서 예술활동과 밀접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영예롭게 생각한다. 나는 사실 배우 출신이다. 배우가 하고 싶어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주 오래전에 극단 맥토를 창립해서 대표로 있던 중 김효경이 연출한 '마로위츠 햄릿'이라는 작품에서 햄릿 역을 하다가 목에 타격을 입어서 배우로서의 활동을 접고, 평론가로 들어섰다. 지난 1976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어떤 배우였나? 
ㄴ 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가장 열심히 연극을 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래서 주연도 많이 했다. 연극뿐만 아니라, 연출도 하고 번역도 했었다. 김효경, 손진책, 윤호진 등과 같은 시기에 대학극을 했었고, 졸업후 맥토 같은 민간극단에서 연기를 좀 했는데, 이들의 추억에 따르면 내가 지적인 역할의 연기를 꽤 잘했다고 하는데, 비디오로 찍어놓은 것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르겠다.
찰스 마로윗츠의 '마로윗츠 햄릿', 엘빈 실봐누스의 '코르자크 박사와 아이들', 외죄느 이오네스코의 '수업'등에서 중심배우로 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하여튼 연기에 꽤 미쳐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술감독으로서 취임하면서 비전을 제시했다. 제일 먼저 단원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ㄴ 단원제를 계속 준비하고 있고 내년 1월에 첫 앙상블을 선발할 예정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다. 원래 국립극단은 단원제였는데, 종신단원제가 되다 보니, 배우들이 예술적 의욕보다는 생활하는 데 만족하면서 예술가로서 힘이 없어지고 스스로 관료화돼서 그것이 작품에 거듭 반영되자 연극계에서 비난이 일었고, 내가 그런 입장의 최일선에 서서 과격하게 비난했었다. 근데 이제 내가 이 자리에 앉게 됐다. 그래서 종신단원제의 폐해를 없애고 배우들이 경쟁과 자기계발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단원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 해에 국립극단은 열다섯 편에서 열여덟 편 정도를 제작하는데, 일 년에 평균 250개 정도의 역할을 창조할 배우가 필요한데, 이 많은 역할을 연기할 좋은 배우를 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재) 국립극단으로 4년 전에 독립한 뒤로는 연출가들이 자기 극단의 배우들 위주로 초청해서 작품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국립극단의 이름으로 민간극단이 공연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국립극단으로서의 예술적 표준, 그에 따른 정체성, 이런 중요한 본질들이 확립되지 않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개선하려고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 단기 계약형 단원제다. 3년, 5년 정도 중기계약형으로 단원을 모집하고 싶지만, 현행법상 2년 이상 계약을 하면 종신고용을 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의 고용 방침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년간의 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앞으로는 고용이 좀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1년 계약에 1년 연장을 기준으로 단원(앙상블)을 구성할 것이며 이 제도를 통해서 배우들이 1~2년간 국립극단의 작품에 집중적으로 임하면서 시민들에게 좀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2015년 1월 말쯤 20명에서 25명 정도의 단원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런 것이 세계적으로 유사한 상황인가? 
ㄴ 가장 유명한 영국의 국립극단과 로열 셰익스피어컴퍼니도 1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단원을 뽑고, 갱신한다. 그곳에서는 배우들이 한 번만 거쳐 가도 경력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명예롭게 생각한다. 국립극단을 찾아온 외국의 연출가들과 만나서 의견을 교환해 봐도 한결같이 종신고용의 폐해를 우려하여 지금 우리가 하려는 단기계약제를 지지하더라. 하루빨리 유연한 단원제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국립극단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보니 극장이 가설극장 같다?

ㄴ 원래는 국방부의 건물이어서 임대해서 쓰고 있다. 장충동 국립극장 안에 있다가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되면서 이곳을 사용하고 있는데, 문화부가 이 자리에 공연예술 컴플렉스를 지으려고 계획 중이다. 연극, 무용, 콘서트 등이 중심이 되는 공연예술 센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명색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극단의 건물이 가설무대다.
 ㄴ 원래는 창고였던 것을 고쳐서 쓰고 있다. 이곳은 국립극단의 실험을 위한 극장이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극장이 될 수는 없다. 명동예술극장을 국립극단과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정부 부처 간의 이견이 있어서 시행이 안 됐다. 다행히 명동예술극장과 달오름극장을 국립극단이 우선으로 대관할 수 있어 크게 문제는 없지만,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국립극단에 전용극장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국격에 안 맞는 수치다.
 그렇지만 백성희 장민호 극장, 소극장 판 같은 이런 열린 공간을 오히려 좋아하는 예술가들도 많다. 공간이 폐쇄적으로 갇힌 것보다 자유로운 공간을 좋아하는 연출가들이 있는데, 이번에 '혜경궁 홍씨'를 연출하는 이윤택 선생도 굳이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런 열린 공간, 주어진 공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국립극단을 대표하는 극장이 될 수는 없다. 
 
나라를 대표하는 극단이라 하면 권위와 극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는데, 예술감독으로서 본 대한민국 공연의 정체성이란? 
ㄴ 한국에서 연극은 매우 다양한 게 가장 큰 특징인데, 다양함이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나라마다 필요한 연극이 있다. 그 나라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이 연극예술의 성격을 구축한다. 우리한테는 우리에게 필요한 연극이 있는 것이다. 유럽의 연극은 이야기의 기능을 축소하고, 파편화시킨 공연을 많이 하는 추세다. 전문배우를 쓰지 않고, 아마추어 배우, 생활 직업인을 사용해서 작품을 올리는 경향이 많다.
모두 언어중심의 이성 중심주의를 거부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연극은 정해진 결말을 향해 사건을 조종하는 구성을 취해 왔다. 하지만 현대 관객은 조종되기를 거부하며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탈조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정답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유럽 같은 데서는 정답을 강요하는 연극을 거의 보기 힘들다.
그러나 아직도 이야기할 게 많고 정답을 열심히 찾고 있는 우리네 환경에서 한국의 연극인들 또한 끈질기게 정답을 찾고 있다. 그래서 한국 연극에서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사 중심의 연극이 아직도 대세라고 할 수 있다.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다.
내가 본보기로 삼는 세계적인 국립극단들을 보면, 예를 들어 세계연극을 선도하고 있는 연출가 알비스 헤르마니스가 이끄는 라트비아의 뉴 리가 시어터, 헝가리의 천재 연출가 아파드 실링이 이끄는 크레타코르 극단 등은, 그 나라 사람들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있다. 라트비아의 국립극장은 사회적 조사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적절하게 섞어 현대인의 정체성을 묻는데 반응이 정말 좋다. 우리나라처럼 갈등과 분열이 심한 나라에서 나는 국립극단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분석하고 정의하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훌륭한 배우들이 있어야 성취가 가능한 목표다. 연출자가 아무리 작품을 잘 만들려고 해도 배우가 관객을 감동을 주지 않으면, 배우가 관객의 공감을 얻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면, 그 연극은 죽은 연극이다. 나는 산 연극을 하고 싶다.
 
 
 
▲ 삼국유사 연극만발 프로젝트 작품
 
정체성에 부재에서 오는 다양성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받아들여진다. 정체성에 대해서 확립하고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삼국유사 연극만발'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나? 
ㄴ 그동안 삼국유사 프로젝트가 탁월한 기획적 발상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업적이 없었기에, 이번 두 번째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참여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현대성, 시의성, 현대적인 미학을 강조해서 준비하도록 요구했다.
'유사유감', '남산에서 길을 잃다', '나는 똥을 누었고, 너는 물고기를 누었다' 같은 작품들은 그런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이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서 발표되어야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도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좋은 가능성은 분명히 봤다. 삼국유사도 설화, 신화, 역사가 혼합된 기록물인데, 삼국유사에서 살아있는 옛 스님들이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현실문제에 직접 코멘트하게 하는 것 같은 처리는 분명 현대인의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고전에서 찾는 현대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겠다.
 
강단에서 김윤철 교수의 모습과 예술감독 김윤철의 모습이 다른 것이 있을까?
ㄴ 사실 교수도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지만, 나는 굉장히 교수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 또 국제평론가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도 했고, 학생들에게 최신의 세계연극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면서 재미있게 교수생활에 임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예술 감독을 해보니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은 쉬운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학교 교수도, 국제평론가협회 회장도 쉬운 인생이었다(웃음). 그러나 국립극단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와 동기, 문화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 한편으로는 도전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렵기도 하다(웃음). 국립극단을 가장 비판했던 사람이었던 만큼 내 말에 책임져야겠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웃음).
 
 
 
 
 
유학시절 이야기를 잠깐 듣고 싶다. 제가(박리디아) 러시아 유학 후, 뉴욕에서 연극을 배울 때 배운 '리스펙트 포 엑팅'을 김윤철 감독이 번역했다

ㄴ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여러 해 동안 액팅 클라스에서 조교를 했는데 그 때 교수들이 썼던 교재가 바로 그 책이었다. 너무 좋은 책이구나 싶어 한국에 돌아가면 빨리 번역해서 우리 연극계에 선물해야지 스스로 약속했고, 1986년 귀국해서 3년 뒤 1989년에 번역 출판했다.

미국에 가서 처음으로 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체험했다. 그전에는 아서 밀러의 '시련'를 번역해서 윤호진 연출로 공연하려고 했다가 검열에서 계속 통과되지 못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세 정권 모두로부터 거절당했는데, 미국 와서는 하고 싶은 말도 맘대로 하면서 연극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아주 좋았다.
돈 없이 가서 고생하면서 노동 아르바이트도 하고 교육조교도 하면서 살았다. 좋은 교수들을 만나서 조교로서 좋은 프로젝트를 맡았었는데, 교수님들이 나에게 일을 시킨 게 아니라 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시켜 줬던 것이 지금도 고맙기만 하다. 그런 교수님들을 닮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내 제자들에게 그런 교수는 되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한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나올 때 논문을 매킨토시 컴퓨터로 쓰면서 힘들었지만 인간적으로 풍요로웠다. 미국연극이 유럽 연극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유럽의 현대 연극보다, 희랍연극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자주 보였고, 그때 그 시절에 배웠던 생각들이 아직도 많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유학 이야기를 여쭤보는 것이 예술가들이 다른 문화를 접했을 때 컬쳐쇼크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 시절 영향을 받는 것이 예술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었나? 
ㄴ 처음 가서 공연하는 것을 봤는데, 교수들이 제자들과 같이 무대에 섰다. 어떤 학생들은 교수들이 왜 계속 주연을 하느냐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체험적으로 교수들과 직접 부딪히며 배우니까 연극 훈련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우리 교육계의 경우 많은 교수는 현장에서 거의 은퇴하다시피 한다. 문제다. 국제 평론가협회 일을 하면서부터는 유럽 연극을 주로 참관했다. 그리고 유럽연극이 현시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연극성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음을 알았다. 미국연극은 서사 위주의 연극이 강세다. 각 사회에 따라 필요한 연극이 다른 것이다. 한국, 미국, 유럽을 보면서 그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어필되는 연극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상당히 깨어있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중들이 국립극단에 바라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윤철 예술감독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 것 같은가?
ㄴ 민간극단이 할 수 없는 공익을 위한 작품을 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앞으로 국립극단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공연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근대극을 재조명하고 있다. 우리의 근대극이 생각보다 훨씬 풍요롭다.
계속 신작만 하면서 일회성 공연에 치중하는 낭비적인 형태가 아직도 우리의 대세인데, 근대 연극의 개척자들은 단단한 구성과 뚜렷한 성격 창조, 사회적 시의를 정면으로 다루는 대담함 등 확실한 방법론을 가진 연극인들이었고, 희곡의 문학적 가치 또한 위대한 경우가 많다. 근대극 재조명 시리즈를 오영진 작 김광보 연출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를 했는데 참여한 배우들이 1940년대 작품이 2014년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어마하다고 말하더라.
근대극을 새로 읽는 일이 바로 그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연극의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하고 싶다. 대중이 원하는 연극보다는 국립극단으로서 해야 할 작품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국제적인 감각에도 부합하는 연극을 개척하려고 고심 중이다. 
 
 
 
▲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는 연극 '알리바이연대기', '살아있는이중생각하'
전적으로 동의한다. 창작작품에 대한 애정을 기사에서 느꼈다. 어떤 의미인가? 
ㄴ 예술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루는 작품, 서사 중심, 배우중심, 현대적인 감각 등을 기준으로 해서 새로운 작품을 고르고 있는데 쉽게 만나지지 않는다. 다행히 김광림의 '슬픈 인연' 이라는 작품을 만나서 내년 3월 말쯤에 초연할 예정이다. 근대극도 새로운 창작극이라는 의미로 계속 할 것이다. 근대극이든, 현대극이든, 번역극이든 창작극이든 모두 망라해서 우리들의 정체성을 물을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
 
공연예술을 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연극은 사람에 대한 예술이다. 삶에 대해서 사유를 깊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정확한 관찰이 먼저고 사회, 사람, 주변에 대한 분석적 관찰을 바탕으로 극을 쓰고, 연출,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상상력에만 의지해서 작품을 만들려고 하니 연극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예술에 현실감이 부족하기 일쑤다.
연극은 추상적인 사고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예술이니, 사람을 관찰하고 삶을 사유한 다음에 나온 작품이 관객들을 공감시킬 수 있다. 연극은 다른 예술과는 다르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연극한테는 인간이 정말 중요하다. 정말로.
 
 
 
 
 
연극이란? 
ㄴ 나에게 연극이란 내 삶의 헌법이다. 연극은 직업이기도 하고, 생명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하고 원수이기도 하고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문화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ㄴ 우리가 지금, 문화의 세기를 살고 있는데, 관객들의 사랑이 없으면 문화의 세기가 도래할 수 없다. 향수자들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 문화를 이해하고, 연극을 통해 행복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재) 국립극단에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
 
[글] 문화뉴스 박리디아 (Lydia Park)_본지 부사장 golydia@mhns.co.kr

[정리·사진] 문화뉴스 신일섭 기자 invuni1u@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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