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남자 중에 제일 못난 남자. 한심하고 유치하고 등신, 쪼다, 머저리에 비겁하기나 하고 허세 작렬, 꼰대, 착각, 위선을 아주 큰 양동이에 뒤섞어서 벌컥벌컥 마셔대는 미련 곰탱이같은 남자동물" - 극 중 '단단'의 대사

류승범과 박해수, 손병호와 김뢰하 등 남성미 넘치는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돼 눈길을 끄는 연극 '남자충동'이 거칠고, 박력 있는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다. 2월 16일부터 3월 26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진행되는 '남자충동'은 전라도 목포를 배경으로, 남자들의 세계 속 억압과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4년 이후 13년 만에 공연되는 '남자충동'은 1997년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극찬 속에서 제21회 서울 연극제 '희곡상', 1998년 제34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제34회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대상' 등 각종 연극상 13개 부문을 받았다.

연극 '남자충동'은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살아가길 원하는 주인공 '장정'의 이야기로, 가정 내 폭력을 통한 가족 간의 불화,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입은 채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조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연극 내내 거친 욕과 폭력적인 묘사들이 가득한 '남자충동'을 보며 관객은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며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사회의 모습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폭력에 지쳐 남자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여장 남자로 살아가는 단단의 말에는 '강한 남자'가 돼야 한다는 그 시대 남자들의 위선과 강요적인 태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한 사회적 시선에 못 이겨 분풀이의 대상으로 '가족'을 선택한 '이씨'의 모습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19일 오후 2시에 열린 연극 '남자충동' 연습실 공개에서 조광화 감독은 "'장정이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살면 멋있겠다'고 착각하듯이 가짜 욕망을 권장하고, 얻으려고 하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히며, '남자충동'의 의미를 밝혔다.

또 연습실 공개에 이어 연출 조광화, '장정' 역의 류승범, 박해수, '이씨' 역의 손병호, 김뢰하, '박씨' 역의 황정민, 황영희, '유정' 역의 전역산, '달래' 역의 송상은이 참석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황정민, 황영희, 전역산, 송상은, 손병호, 김뢰하, 조광화 연출, 류승범, 박해수

연극 '남자충동'이 20주년을 맞이했다. 연출 데뷔 20주년이기도 하다. 소감이 듣고 싶다.

ㄴ 조광화: '남자충동' 20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다시 시작해보자는 이야기가 생겼다. 해마다 계속 다시 하려는 논의가 있었지만,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항상 난관에 부딪혔다. 이번 기회에 오래전부터 원해왔던 두 배우가 함께하고, 그 외에 다른 배우들도 같이 해줘서 설레고 기대된다.

   
 

작가와 연출 두 입장으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는지.

ㄴ 조광화: 작품을 쓴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처음 희곡을 썼던 때에는 연극에서 폭력적인 소재가 별로 없었다.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나지만, 다루지 못했던 폭력 소재를 다루며 관객과 소통하려는 의도가 컸는데, 지금은 오히려 폭력적인 소재가 너무 많아서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부장적인 사회 모습을 지금 이 시대 관객과 트렌디하고, 특별하게 소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했다.

장정을 맡게 된 소감은 어떤가.

ㄴ 류승범: 처음 장정 역할을 받고 '배우 인생에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업하면서 연출과 선후배 배우들을 통해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뜻깊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ㄴ 박해수: 2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한 것에 굉장히 감사하다. '남자충동'이란 어려운 작품을 말씀해주셨을 때도 사실 '내 나이에 가능한 작품일까' 생각했다. 참여하는 다른 선배들도 대선배님들이라 존경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현재는 류승범과 함께 한다는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연극을 준비하는 내내 감사한 선생님이셨다. 오랜만에 연극을 하게 돼서 감사하고 기쁘다.

   
 

조광화 연출과 친분이 깊은데 작품에서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조광화 연출은 평소 이미지와 연출할 때 이미지가 얼마나 다른지.

ㄴ 김뢰하: 알게 된 지는 30년 정도 됐다. 대학로에서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한 번도 같이 작업을 못 해봤다. 밖에서만 만나고 서로의 작품들을 부러워만 했다. 그러다가 '남자충동' 출연 제의를 받아서 출연하게 됐다. 상당히 젊잖고 말 수 없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었다(웃음). 연출 스타일이 상당히 꼼꼼하고 치밀하고 말수가 많다. 아무튼 불러줘서 고맙다(웃음).

ㄴ 손병호: 마찬가지로 30년 친구다. 오랜만에 만나보니 나도 컸지만, '연출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큰 사람이 됐구나'하는 마음이 크다. 20년 축하 공연을 같이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겠다.

역할을 맡은 소감은 한마디씩 한다면.

ㄴ 황정민: 공교롭게도 나만 원년 멤버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화합하려고 노력했다. 20년 전으로 고정돼 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하려고 노력했다. '남자충동'이 20주년이 된 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더 엄마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다.

ㄴ 황영희: 조광화 선생님을 20대 때부터 존경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항상 책으로만 접했는데, '남자충동'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준비 중이다. 정말 감사하다.

ㄴ 전역산: 뮤지컬만 계속하다가 처음 연극에 도전했다. 조광화 선생님 한 분만 믿고 왔다(웃음). 와보니까 정말 대단한 선배님들이 계신 것을 보고,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연극인데 정말 복 받은 것 같다. 연극을 통해 좀 더 발전할 것 같은 기대감에 열심히 연습 중이다.

ㄴ 송상은: 두 번째 연극인데 너무 막내라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걱정과 다르게 너무 따뜻한 분위기에서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많이 배웠다. 어서 공연이 올라가길 바란다.

   
 

매체 연기를 주로 하다가 연극을 하게 됐는데 연극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ㄴ 류승범: 일단 희곡을 받고, 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그랬더니 굉장히 해보고 싶어졌다. '과연 연극 예술이라는 게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호기심에 한 번 대학로에 왔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구경을 왔다면, 이번엔 본격적으로 연극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사투리가 굉장히 많다. 따로 코치를 받았는가.

ㄴ 류승범: 영희 누님이 전라도 분이라서 개인적으로 많이 도와주신다. 워낙 희곡 자체에서 대사가 맛깔나게 적혀있기도 하다. 굉장히 정확하고 맛있게 써있다고 느꼈다. 대본에 써있는 뉘앙스 위주로 연습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배우들과 의견을 나눠가며 연습했다.

   
 

지금 관객들이 다시 이 연극을 본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지.

ㄴ 조광화: 우리 연극이 시작하고, 영화 '넘버3'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조직에서 중간보스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다가 실패하는 이야기였다. 그 시대는 주변에 폭력이 난무했다. 또한, 조폭들이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느끼는 아픔에 공감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조폭 영화가 많아졌다. 그리고 '조폭'에 대한 식상하고 싸구려 같은 느낌이 많아졌다. 그런 장르를 뒤따라 가는 걸로 오해 받을까 봐 '남자충동'도 못 하고 있었다. '장정이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살면 멋있겠다'고 착각하듯이 가짜 욕망을 권장하고, 얻으려고 하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지 못한 채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요즘도 그런 게 있나?'하는데 가짜 욕망은 존재한다. 슈퍼맨을 보고 보자기를 두르고 뛰어내려서 다치듯 헛된 망상, 헛된 욕망을 쫓아가느라 스스로 불안하게 한다. 그러한 마음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에는 과한 폭력들을 보여주며 소통하려고 했다면, 현재는 살짝 포장해서 폭력을 줄였다. 오히려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마음들을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배우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두 배우의 캐스팅 이유와 매력을 꼽자면.

ㄴ 조광화: 공연 문화의 배우 트렌드가 소프트해졌다. 특히 뮤지컬은 야들야들해졌다(웃음). 연극도 TV나 영화처럼 쉽게 가고 싶어 한다. 극단적인 면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하는 문화 속에서는 관객이 강한 모습을 불편해할 수 있다. 배우도 마찬가지로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서 거친 매력의 배우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장정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같이 있어야 했다. 류승범은 계속 거절하다가 직접 연락이 왔다. 영화에서 봐왔듯 무모하고 반항적인 느낌이 있었다. 더 젊었을 때 했던 작품들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들, 어처구니없는 허풍도 보였다. 계속 원했던 장정의 느낌이었다. 박해수는 연극 '풀 포 러브'에서 단역을 했다. 그때 본 박해수는 굉장히 센스있고 유머 있었다. 거기에 남성적인 우악스러움도 있었다. 공연을 올리고, 박해수에게 대본을 갖고 갔다. "장정을 찾고 있었는데 류승범은 너무 멀리 있고, 당장에 너는 될 것 같다. 같이 하자"고 했는데 스케줄 문제로 이제야 하게 됐다. 난 복이 많다. 원하던 두 배우가 한 번에 '남자충동'에 왔다.

연극 14년만인데 특별히 다시 도전하게 된 이유가 있나.

ㄴ 류승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영화를 하면서 지낸 시간이었을 뿐이다. 최근에 연극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겨서 이 자리에 오게 됐다. 연습에 임하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하고, 배우고 있다.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가 어떻게 다른지.

ㄴ 류승범: 처음에는 무대에서 걷고, 뛰고, 말하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숙지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혼란스러웠다. 물론, 지금도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즐겁게 배우는 중이다. 배우로서 연극 예술에 참여하고, 무대에 선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촬영과 연극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은지.

ㄴ 박해수: 나는 원래 연극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배우다. 계속 공부하는 배우이자, 앞으로 계속 무대에 서고 싶은 배우다. 무대를 진행하다 보면 관객을 만나며 생명력을 받는다. 그래서 더 하고 싶고, 항상 감사하다. 매체를 왔다 갔다 하기가 힘들지만, 둘 다 재밌어서 포기할 수 없다. 선배와 동료들도 양해해주셔서 즐겁게 촬영하고, 연습하고 있다.

조광화의 페르소나라고 생각된다. 조광화 연출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특별한 시너지가 있는지.

ㄴ 박해수: 페르소나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연출님과는 연출과 배우 사이의 관계를 좀 떠난 것 같다. 거의 아들로 생각해주신다.

ㄴ 조광화: 늙었잖아(웃음).

ㄴ 박해수: 그럼 동생(웃음). 어쨌든, 가족처럼 생각해주신다. 이제는 애매한 디렉션을 주셔도 받아들일 수 있다. 선생님의 호흡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처음보다 개선된 부분이다.

[글] 문화뉴스 박다율 인턴기자 1004@mhns.co.kr

[편집·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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