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화, 판도라, 리뷰, 김남길, 재난영화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지난 9월, 한국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남부지역에 큰 지진이 있었고, 이는 한국에서 지진 관측 이래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기엔 충분했다. 남부지역엔 잠깐 통신이 마비되는 영화 같은 일도 있었다.
 
대규모 지진 이후 건축물의 내진 설계 문제와 함께, 큰 화제가 되었던 건 원자력 발전소였다. 이번 내진에 견딜 수 있는가. 그리고 이보다 더한 내진에 견딜 수 있는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를 바로 옆에서 목격했지만, 한국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지진은 다른 나라의 먼 얘기였으니까.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는 더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이 상황에 경고처럼 일어난 큰 지진으로 변화가 있을까 했지만, 현시점에 한국은 신경을 써야 할 문제가 너무도 많다. 그렇게 꺼질 것 같던 원전 이슈를 '판도라'가 다시 꺼내려 한다.
 
   
 
 
마비된 사회 시스템
올해 여름, 한국 영화계는 두 편의 재난 영화로 뜨거웠었다. '좀비'를 소재로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는 재난을 보여준 '부산행'과 무너진 터널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 '터널'은 한국형 재난 영화의 정점을 찍었다. 이전에 '감기', '연가시' 등의 재난 영화와 올해 두 편의 영화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사회 시스템, 안전망의 무능력함과 부재다. 감염자(피해자)를 숨기고, 외부와 격리해 혼란을 줄이려는 정부,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지 못하는 언론,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바쁜 관료의 이기주의 등 신문과 뉴스에서 봤던 이야기들이 극대화되어 영화에 녹아있었다.
 
'세월호' 이후 재난 영화엔 사회 시스템의 오작동이 항상 등장하고 있다. 그게 현실이고,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을 반영하기 위한 영화의 선택이다. 영화적 상상력보다 현실의 비참함이 더 영화적으로 느껴지는 이런 기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를 그대로 모방하는 게 좋은 이야기인지, 그리고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런 시스템의 부재를 묘사한 것은 매우 현실적이었고, 이미 목격한 진실이 근거가 되기에 더 파괴적인 공포가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판도라'는 최근 겪은 재난과 여전히 겪고 있는 정부, 사회 시스템의 부재 덕분에 극한의 호러가 된다. '내부자들'이 현실이 되었듯, '판도라'도 현실이 될 예언서 같아 더 섬뜩했다.
 
   
 
 
한국형 재난영화 공식 - 신파
'판도라'는 앞서 말한 현실적 묘사와 함께, 감동을 유도하는 신파가 눈에 띄는(혹은 거슬리는) 영화다. 천만 관객이 반응한 '부산행'에서도 있었듯, 신파는 한국 영화의 트랜드이고, '판도라'는 신파 한 숟갈이 더해져 한국 재난 영화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가혹한 재난 앞에서 남성 영웅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고, 이는 감동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 마지막 선택을 카메라는 꽤 오래 붙잡아두며 관객의 눈물을 쥐어짠다.
 
'판도라'의 전개와 구성은 비슷한 계절에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둔 재난 영화 '타워'와 닮았다. '판도라'의 김남길은 '타워'의 설경구와 오버랩 되는 지점이 많다. 그리고 '타워'에서 클리셰로 느껴지던 부분 역시 '판도라'가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가 절정의 순간으로 갈수록, 신파적인 부분도 닮아간다. 다른 무엇보다 관객은 이 신파적 요소에 민감하고,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 중요한 순간 뜬금없이 키스 장면이 있듯, 한국 재난영화는 중요한 순간 신파를 거쳐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원자력 문제라는 변별점
'판도라'의 변별점이자 특별한 성취는 원자력 발전소 문제를 재조명하는 용기에 있다. 아수라장이 된 발전소를 보며 관객은 원전 폭파, 피폭 등의 참혹한 현장을 간접 체험하고, 학습하며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영화 속 대사를 통해 '판도라'가 직설적으로 한국의 원자력 문제와 시스템, 정부를 비판하는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이 시국엔 더 와 닿을 수밖에 없다)
 
'판도라'가 선택한 '신파'는 가장 많은 관객에게 원자력 발전과 핵 문제를 보여주고, 경고하며, 몰입하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뉴스가 취재했어야 할 일, 다큐멘터리가 비판했어야 할 일, 행정부가 밝혔어야 할 일, 정치인이 늘 경계했어야 할 일을 '판도라'라는 상업 영화가 대신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사회 문제적 사안을 영화에 노골적으로 반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좋은 스토리텔링의 방법이자 영화적인 방법인가는 여전히 고민하게 된다. 그렇지만 '판도라'가 지금 이 나라에서 필요한 시기에, 해야 할 말을 하는 영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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