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파워' 중 마르셀(정현철)의 대사

[문화뉴스]

   
 

"혁신, 그거 아주 간단해. 옛날에 하던 거 그대로 하면 돼."

"민중은 개, 돼지"라고 말했던 한 고위 공무원이 생각나는 대사다.

연극 '더 파워'는 우리의 종말을 확신하며 예고한다. 연극은 세 가지의 불연속적인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며, 한 에피소드 내에서도 맥락을 떠나 개연성을 용납하지 않는 형태의 전개를 이루고 있다. 혼란과 소동 속의 극은 우리의 종말을 예고하는 동시에, 그 종말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맥락 없는 에피소드들 중에서 관객이 기댈 곳은 단 하나, 비르크(유승락) 뿐이다. 비르크는 세 에피소드들 간의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맥락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에피소드들이 끝나갈 무렵이면 비르크는 반드시 등장해 자신에게 도착한 의문의 편지의 행방을 묻곤 한다. 에피소드가 스스로 자신들의 의미를 정의 내리려고 할 때마다 등장해 막아버리는 비르크는 에피소드들의 서사적 연결을 허용하지 않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세 에피소드를 같은 세계 내의 일로 묶어주는 개연성 그 자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비르크가 인격적 모독을 받는 순간이 있다. 비르크가 다니는 회사의 고층에서 일하는 마르셀에 의해서다. 그는 '지속적인 개발'을 홍보 슬로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마가렛(김신록)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는 와중에 있다. 그가 마가렛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유는 마가렛이 '여자'이고, '경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혁신'을 아주 간단히 정의 내려버린다.

마르셀에 의하면 혁신이란, 옛날의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케케묵은 관습을 대중들의 눈과 귀를 속여 '혁신'이라 포장하면 된다는 것이다. 객석에 앉은 나는 반박할 수도, 분노할 수도 없었다. 우리의 혁신은 그런대로 대중들의 눈속임만 잘해오면 된다는 것이, 실제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선언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상황이 당연해져 버렸다.

 

   
 

연극 '더 파워'는 일관됐다. 연극의 형식적 혼란은 우리 사회의 혼란을 그대로 담아냈고, 혁신을 외치며 스스로 혁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말의 배반, 메시지의 배반, 이상(理想)의 배반 속에서 '더 파워'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지런한 위선보다는 적나라한 혼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 연극 정보
   - 연극 제목 : 더 파워
   - 공연날짜 : 2016. 10. 26 ~ 11. 13.
   - 공연장소 : 명동예술극장
   - 작가, 연출 : 니스-몸 스토크만, 알렉시스 부흐
   - 출연배우 : 정승길, 김승환, 이철희, 이기돈, 김신록, 김선아, 유승락, 정현철, 박찬희, 박시영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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