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후 일민미술관에서 김용익 개인전 '가까이… 더 가까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용익 작가가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문화뉴스] 1970년대 한국 단색화부터 현재의 공공미술까지, 한국 현대미술사 곳곳에 남긴 김용익 화백의 고뇌 흔적이 선보인다.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일민미술관이 9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김용익 개인전 '가까이… 더 가까이…'를 연다. 이번 전시는 김용익 화백의 40여 년 화업을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단색화와 민중미술, 대안공간 운동과 공공미술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미술인으로 활동해 온 김 작가의 진면목을 선보인다.
 
1970년대 초기 작업부터 최근작까지 망라한 이번 전시엔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미술가로서 고뇌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김용익의 대형 회화, 설치 작품, 글 등 100여 점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김용익이 처음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 2015년까지 작가의 40년 작업 여정을 모두 아우른다. 전시는 굵직한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한 작품을 통해 작가가 자기 자신, 미술,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 김용익 화백의 1977년 작품 '평면 오브제'
 
김용익은 1970년대 중반 천 주름의 착시 효과를 활용한 '평면 오브제'로 화단에 입성했다. '앙데빵당'전, '에꼴 드 서울'전 등 당대의 유명 전시에 초대되며 모더니즘 계열의 막내 세대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홍익대학교 학부 졸업도 채 마치기 전인 197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1년, 김용익은 돌연 대표작 '평면 오브제'를 종이 상자에 집어넣었다. 당대 모더니즘 미술에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동년배 미술가 대부분이 엄혹한 정치 상황에 항거해 민중 미술을 표방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 후 김용익은 판지를 뚫거나 뒤집는 등 회화의 평면성을 재료로 삼는 작업에 몰두하며 시각 예술의 순수한 형식 실험과 당대 현실에 대항하는 실천으로서의 미술 사이에서 고뇌했다. 그리고 모더니스트로서 자신의 성향과 미술 작품의 현실적 효용이 만나는 지점을 구도하듯 찾아 헤맸다. 이후 판지와 MDF를 이용해 실재와 환영 사이의 형식을 실험하는 작업을 약 10년간 지속한다. 
 
   
▲ 2층 전시실에선 '절망의 완수'(가장 왼쪽)와 '땡땡이 회화'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일민미술관 1층 전시실엔 김용익이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작품이 전시됐다. 김용익 화백은 "내가 속해있던 질서나 미술씬을 뒤집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막연하고 어렴풋한 열정으로, 모더니즘 미술의 전복적 효과에 매력을 느꼈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1990년대가 되자 김용익은 전성기의 대표작인 소위 '땡땡이 회화' 시리즈를 다수 제작했다. 캔버스 위에 원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한 이 작업은 모더니즘 회화의 형식과 닮아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캔버스 구석에 작고 희미하게 적어놓은 글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장기간 작품이 방치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염된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희미한 메모와 그리고 덮기를 반복한 자국, 얼룩지고 삭은 세월의 흔적들이 모더니즘의 정밀하고 완결된 화면에 균열을 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더니즘 회화에 대한 김용익 작가의 태도를 드러내는 1990년대 회화 작업은 2층 전시실에서 전시된다.
 
   
▲ 김용익 화백이 2층 전시실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김용익 화백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 방법론을 더 심화시켜 자신의 예전 작품을 검은색, 금색 물감으로 지워버리는 '절망의 완수'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수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지우고 남은 부분과 캔버스 뒷면에 또다시 글을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포장재나 전시실 벽면에서 떼어낸 시트지 찌꺼기처럼 미술의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포장하는 등, 미술 제도 자체를 환유하기 시작했다.
 
최근 김용익은 '절망의 완수' 시리즈에 그치지 않고, 40년 남짓 진행해 온 작품 활동의 결과를 관 형태의 나무 상자에 봉인하고 그 위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도상과 글을 덧붙이는 제의적 행위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시신을 염하고 장례를 치르는 듯한 일련의 과정에서 그동안 많은 전환을 거쳐온 작업 여정을 스스로 반성적으로 정리한다.
 
3층 전시실에선 자신의 작업을 반성적으로 점검하는 태도가 보이는 '관 작업' 시리즈를 중심으로, '원 왕생', '지장보살-1', '풍장' 등 2000년대 이후 작품 10여 점이 공개된다. 또한, 3층에선 작가의 글, 사진, 신문기사, 도록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이를 통해 작가가 활동했던 작업 현장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해당 시기 김용익의 활동을 지켜보았던 주변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 김용익 화백이 1989년 작품 '두 조각'을 만져보고 있다.
 
한편, 1990년대 말부터 김용익은 활동의 영역을 넓혔다. 광주비엔날레 정상화와 관료적 문화행정 철폐를 위한 범미술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아트 스페이스 풀의 운영에 참여했으며, 공공미술과 관련한 각종 기획과 기고를 거듭하는 한편 양평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환경 및 지역 미술 운동에 관심을 뒀다.
 
그 과정에서 김용익은 미술을 둘러싼 환경과 제도, 공공의 영역에서 미술가의 역할을 고민하고 한국 미술계 안에서 자신의 활동을 반성하며 추이해 왔다. 이번 전시에선 다양한 기록자료를 통해 미술계의 여러 곳에서 활동해 온 작가의 행보를 살펴볼 수 있다.
 
일민미술관 함영준 책임큐레이터는 "이번 김용익 개인전은 한 미술가의 작품 세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미술가를 드러내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미술의 흐름에 가까이 다가 가보는 전시"라고 밝혔다. 이처럼 김용익의 40여 년간의 활동은 1970년대 단색화 시기부터 2010년대 공공미술 이후까지 이어지는 한국 현대 미술사의 결정적 쟁점들에 대면하고 있다.
 
   
▲ 김용익 화백의 2015년 작품 '삼면화'.
 
전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도록엔 김용익의 1970년대 작업부터 최근 작품 이미지 포함, 작가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과 인터뷰 등이 수록되어 시대별 정치, 사회, 미술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일민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도록은 작가 개인이 지탱해 온 역사에 관한 것이기도 하면서, 김용익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본 한국 미술계에 대한 주관적인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용익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이해해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지난 40여 년간 주요 전환 지점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를 초대하여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과 모더니즘, 대안공간 운동, 공공미술 등 작가가 천착했던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다각적인 시점에서 전시를 이해할 수 있는 강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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