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글로리아' 중 '딘'으로 출연 중인 배우 이승주 인터뷰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배우 이승주를 만났다

[문화뉴스] 120여 분의 시간 동안 관객들을 한 사건의 목격자로, 인간이 가진 욕심의 나체를 마주한 관찰자로 만든 연극 '글로리아'에서 딘이라는 역할로 출연 중인 배우 이승주를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얼마 전까지 부비동염으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는 이승주는 '몸은 힘들지라도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보다 많이 필요한 역할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맡은 딘이라는 역할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해석의 잣대가 허용되는 인물이 아니다.

1부에서는 회사원으로서의 애환과 더불어 일상의 수다스러움과 코믹함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딘의 모습이 나타난다면, 2부에서의 딘은 글로리아 사건 이후 트라우마와 욕망 사이에 사로잡혀 처절하고도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좋은 문화가 곧 '쉼표'가 된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쉼'의 순간들이, 연극이나 뮤지컬, 전시 등의 다양한 문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딘의 "우린 어떤 줄 알아? 졸업하고 한 번 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 곧 직업이, 인생이 돼 있어"라는 대사가 흘러가는 인생들의 뼈아픈 지점을 콕 집어주는 부분이라고 말했듯이, 그는 연극이 자신의 무심코 흘러가던 인생을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것이길 바라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연극 '글로리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배우 이승주의 여러 가치관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까지 진행됐다. 노네임씨어터와의 첫 호흡을 맞춘 배우 이승주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연극에 임하고 있는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연극 '글로리아'는 오는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다 들었다. 지금은 괜찮은지? 공연에 무리는 없었는지?

ㄴ 크게 무리는 없었다. 공연 중에 몸이 아픈 건 배우가 관리를 잘하지 못한 거다. 힘든 모습이 드러나거나 관객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된다면 배우 탓이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사실 공연하면서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극 '글로리아'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해주는 연극이기도 하지만, 회사원들이 실제로 많이 공감할 수 있는 극이기도 하다. 일반 회사원과는 다른 생활을 한 '배우'들, 공감할 수 있었을까?

ㄴ 연극이 회사 내에서의 이야기로부터 진행되고 있지만, 회사 생활에만 국한돼 있지 않고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물론 회사 다니시는 분들만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든 인간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감을 아예 못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일을 할까'에 대해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주변 회사원 친구들에게 '일하면서 이렇게 말을 많이 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웃음). 부서마다 다르고 직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글로리아'의 배경처럼 패션잡지회사라면 그럴 수 있다고들 하더라. 광고회사 다니는 친구들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딘은 유일하게 글로리아(임문희 분)의 집들이 파티에 참석한 사람이다. 왜 갔을까?

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켄드라(손지윤 분)가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다. 딘은 글로리아를 아예 매정하게 대하지 않는다. 켄드라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게 더 잔인할 수도 있다. 켄드라는 밝은 척하면서 어두운 생각을 품는 사람이 아니라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딘은 글로리아와 최소한의 관계는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글로리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 둘 다 있었을 것이다. 켄드라의 말대로 그 파티에 가면 자신의 인맥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건과 그것을 겪은 피해자들의 고통. 모두 실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자본의 수단이 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헷갈리는 것이 있다.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글로리아'로 바꾼 딘. 그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인물일까, 자본주의에 의해 삼켜진 인물일까?

ㄴ 사건 이후를 유추해보면 모든 관심이 딘에게 쏠렸을 것이다.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니까 말이다. 언론은 딘을 글로리아의 베스트 프렌드라 떠들었을 것이고, 딘이라는 사람을 선량하게만 묘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야기가 돈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여러 출판사에서 딘에게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약을 하고나서 이 친구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다. 어쩌면 그 사건을 겪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말이다. '사건이 잊히기 전에 글을 써야 되는데 왜 안 써지지?' 라며 능력의 부재 등으로 인해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 같다.

그게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보다 더 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두 가지(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책을 통해 돈을 벌려는 압박감)가 공존했을 것이다. 아무리 수정해서 글을 쓰려 해도 안 되고, 어렵사리 쓴 글을 에디터에게 갖다 주면 형편없다 소리를 들을 테고. 그러다보니 조금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았을 텐데, 그래서 책의 제목을 '글로리아'로 바꾸지 않았을까? 이 제목이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 더 구미가 당기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에 따라 자신이 작가로서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2부는 스타벅스 안에서 전개된다. 무대 뿐 아니라 배경음악까지 스타벅스 분위기처럼 꾸며놨는데, 방해는 안 되는지? 보통의 무대와 달리 실제 카페처럼 BGM이 흘러 나오는 무대가 곤혹스럽진 않았는가?

ㄴ 지금 그런 말을 함으로써 이 음악(실제 인터뷰 도중 카페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음악)이 인식된다. 그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 음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과 비슷하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혹은 내 앞에 관객이 앉아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배우의 연기는 더 안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물론 인식은 있어야 되겠지만 '저 관객, 저 조명, 모든 사람이 날 보고 있어'라고 인식하는 순간, 하고픈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긴장을 뛰어넘어야 좋은 배우가 된다.

똑같은 지점이다. 음악도 들으면서 박자나 음정을 떠올리면 (연기에) 집중이 안 된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부분이 더 힘들었다. 노래가 나오는 도중에 중요한 대사 부분에서는 음량이 줄어든다. 연극적으로 강조해서 표현돼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되지만, 연기하는 배우로서는 갑자기 내 호흡이 끊기는 느낌이 드니까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연출님 덕분에 장면이 더 풍성해졌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내가 맞춰야할 부분이다.

 

 

   
 

배우 이승주는 연극 '글로리아'에서 어떤 역할이 가장 매력적인가?

ㄴ 모든 인물들한테 어느 정도 마음이 간다. 모두에게 공감이 된다. 그들에게 나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골고루 매력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꼽으라면 로린(정원조 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재밌다. 팩트 체킹 팀에 있던 사람이 남들이 말하는 글로이아에 대해 팩트 체킹을 한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로린이 알고 있는 팩트 안에서 로린은 그것들을 체킹한다. 또한 관계 회복을 위한 로린이 나중에는 헤드폰을 낀다. 재밌는 캐릭터다. 요즈음은 로린이 나오면 관객들이 많이 웃는다. 그런 웃음 속에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캐릭터다.

극중 명대사를 꼽는다면?

ㄴ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딘이 애니(공예지 분)에게 "넌 그렇겠지. 우린 어떤 줄 알아? 졸업하고 한 번 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 곧 직업이, 인생이 돼 있어."라 말하는 부분이다. 나는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만큼 감수해야할 부분이 있지만 그런 걸 감내할 만큼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여러 인연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딘의 마인드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내 성적에 맞춰서'라 얘기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결국 교육의 문제라 생각한다. 실타래가 처음부터 잘 풀리면 모든 것들이 잘 풀릴 수 있듯이 말이다.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점수 맞춰 대학가고 졸업하고 스펙 쌓고, 내 스펙에 맞춰 직장 들어가고 거기서 치열하게 눈치 보면서 살다가 결혼하다. 내 주변엔 이런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은 다들 내게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도 어느 정도 그 친구들 이야기에 공감한다. 어느 날 눈 떠보니 한 번 쯤 졸업하고 나서 해보면 좋을 것 같은 일을 하며 사는 것. 나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학부를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여기서 공부하다 보니 연극을 좋아하게 됐다. 처음부터 '연극이 좋아. 연극만 해야지!' 하는 포부는 없었다. 딘의 이 대사는 흘러가는 인생들에게 뼈아픈 대사다.

 

 

   
 

연극 'M.Butterfly', '나는 형제다',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 등. 김광보 연출가의 러브콜을 꽤 받았다. 김광보 연출가가 이승주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ㄴ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웃음). 연출님은 정말 성실한 배우를 좋아한다. 나는 미련한 부분이 있다. 요령을 부리지 않으니 그런 걸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사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는 많다. 그러나 소통이 되냐의 문제는 연기와 별개다.

내가 유달리 잘 하거나 성실해서가 아니라, 같이 작업하는 데 있어서 연출님과 소통이 원활하게 되니까, 더 쉬운 말로 말하면 편하니까 그러신 것 아닐까 싶다. 연출가와 배우가 만나서 한 작업을 하면 보통 두 달에서 두 달 반 정도 연습 기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배우를 알아가는 데만 한 달 정도가 걸려버리면 그건 소모다. 이 배우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발전시켜야 되는 것 등이 이미 연출가의 머릿속에 있으면 그 두 달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데, 서로 알아가는 시간으로만 한 달 정도를 보내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럼 김광보 연출가와는 언제 처음 만났나?

ㄴ 연출님과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연출님과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연출님이 좋은 작품, 역할에 불러주고 계신다.

 

 

   
 

KBS 21기 공채탤런트 출신이다. 그러나 현재 공연계에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배우인데, 방송 대신 공연을 택한 이유는?

ㄴ 이게 더 잘 맞고 더 재밌기 때문이다. 연기를 하는 배우지만, 드라마 연기와 연극 연기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긴 호흡을 가지고, 라이브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러난 한정적 공간이라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컷으로 분할해서 나눠 연기를 찍는 것은 다르다. 나한테는 무대가 더 잘 맞고 재밌었다.

공연을 하다가 KBS 21기 공채탤런트에 도전한 것으로 안다.

ㄴ 맞다. 공연 하다가 우연찮게 시험 공지가 떠서 도전했는데 운 좋게 됐다. 거기서 연수받으면서 나를 좋게 봐주셨던 분이 드라마를 시켜주셨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하지 않은 채로 '이게 좋아' 라고 말하는 것과, 여러 가지를 겪어보고 거기서 고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영화도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독립영화도 해보고. 드라마도 해보고. 연극도 해봤다. 그러나 나는 연극으로써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루고 싶은 것들도 있고. 그래서 연극을 고집하는 거다.

 

   
연극 '글로리아' 공연 장면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ㄴ 이 답에 대해 예전 인터뷰에서 어떻게든 표현해보려고 하다가 잘 안 된 적이 있다. 머릿속에 있는 연기 같은 생각들이라. 머릿속에서는 명확한 형태인데 내뱉는 순간 흐릿해진다.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 큰 것이라,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다. 속으로 갖는 포부다. 그냥 좋은 연극인이 되고 싶다고 알아주시면 좋겠다.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도전했다. 그렇다면 뮤지컬 쪽은?

ㄴ 노래를 잘하지 못 한다. 모르겠다. 내 생각이나 기준에서 뮤지컬은 다른 분야 같다. 연기로써 같은 분야 안에서 도전해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분야 같다.

 

 

   
연극 '글로리아' 공연 장면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공연의 시놉시스가 스포되면 안 되는 연극에 출연 중이다. 그에 따른 애로 사항은 없는지?

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놉시스가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반대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글로리아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 다음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사건 이후 글로리아의 시선이나 입장에 대해 보여주지 않는다. 2막에서도 글로리아를 더 자세히 보여줄 것 같으면서도 그러지 않는다. 이 사건을 가지고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의 충돌이 나타난다. 결국 로린의 대사가 주제가 된다. 그래서 글로리아의 사건을 알면 김은 빠질 수 있겠지만 아주 큰 영향은 없을 것 같다.

스포에 대한 애로사항은 없다. 내가 홍보를 직접 해야 되는 입장이 아니니까 제작사 만큼 곤혹을 겪을 일이 없다. 사람들이 '글로리아'에 대해 무슨 연극이냐 물으면, 나는 '사람들 이야기야' 라고 대답한다. '이기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이렇게 편하게 쓴 것 같은 필체 속에 많은 이야기를 핵심만 쏙쏙 잘 쓸 수 있었을까 감탄하고 있다. 우리 연극에서도 젊은 작가들이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나 시의성 있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러기 위해 창작자 육성에 대한 지원이 많이 됐으면 한다.

현재는 좋은 작가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좋은 작가가 있어야, 좋은 희곡이 존재할 수 있고, 좋은 희곡이 있어야 좋은 배우가 존재한다. 희곡을 가지고 꾸려나가는 게 배우다. 좋은 희곡을 가지고 좋은 배우와 좋은 얘기를 해야 관객들이 더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부분에 대한 지원 관심이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

배우 입장에서 대본 받았을 때 이 대본이 재밌어야 연기하고 싶지 않나?

ㄴ 나는 배우, 조명, 음향, 무대, 연출 등등이 각각 '이 작품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자체가 재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역할을 통해 관객들과 무슨 대화를 하고 싶은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 대본을 많이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내 기준에서 느낌이 강하게 오는 작품을 무조건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한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ㄴ 연극에서 관객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지금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나 청소년, 아동 등의 여러 계층을 위한 연극이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동극도 소수만을 위한 아동극이 대부분이고, 아동극을 만드는 어른들의 마음도 아동스럽지 않다. 장르도 작품도 다양했으면 좋겠다.

현재 공연계는 소재나 장르, 그리고 관객과 창작진 등이 제한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ㄴ 그래도 극장을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 보면 너무 감사하다. 고마운 마음이 굉장히 크다. 관객 분들 덕분에 연극이 계속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관객이 없는데 어떻게 공연을 하나. 연극을 통해 사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품이나 시의성 담은 작품도 해보고 싶지만, 그런 목소리를 누구라도 들어줘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일방적으로 소리 지르는 것은 배우로서 최악이다. 연극을 통해 관객과 창작자는 대화를 한다. 지금 이 날씨에도 극장에 찾아주시는 관객들 보면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더 다양한 얘기,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것들을 교감하고 소통하는 연극들을 많이 펼치고 싶다. 관객들이 여러 반찬 중에 맛있는 것 하나 고르듯이 우리가 좋은 연극을 많이 차려 놓으면 골라보실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관객들도 그런 한정적인 것에 대한 갈증이 있을 것 같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2016.4.14~5.18.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비프 로먼' 역할을 맡았던 이승주 (왼쪽) ⓒ 예술의전당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나는 형제다' 등과 같이 최근작들에서는 세상을 잘 살아가는 유연함보다는 어설프며 뻣뻣한 캐릭터들을 꽤 맡았다. 인간 이승주는 어떤 편인가? 유연한가, 뻣뻣한가?

ㄴ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적당한 편인 것 같다. 적당한 소신도 있고 적당한 유연함도 있다. 고집이라고 할 정도의 소신이나 신념이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소신이 아예 없지는 않다. 마냥 둥글기만 하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는 있지만 내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의 답답함은 소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집이라 생각한다.

사실 너무 빠르다, 모든 것들이. 극중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곳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다들 글로리아는 잊었어"라는 켄드라의 대사가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일이 반복되며 덮인다. 그런 반복되는 일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제로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에 대해 그냥 생각만 가지고 불평과 불만만 얘기한다면 그건 고집이라 할 수 있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ㄴ 비밀이다(웃음). 조만간 좋은 작품으로 다시 관객 분들을 찾아뵐 예정이다.

 

 

   
연극 '나는 형제다' (2015.9.4~20.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형' 역할을 맡았던 이승주 (오른쪽)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ㄴ 나의 생각과 소신, 그리고 그 인물을 표현하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무대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배우가 돋보이는 연극보다는 인물이 돋보이는 연극을 봤을 때 굉장히 만족스럽다. 그렇게 하려면 그 배역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하고, 작품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자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명확한 배우들은 그게 연기에서도 보인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시선을 무대에서 녹여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래서 그걸 통해 관객들과 계속 얘기하고 싶다.

 

 

   
 

이승주 배우가 말하는 '관객과의 소통'이란 무엇인지?

ㄴ 연극이 자기와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로린의 대사 중에 '존재하고 싶다'는 대사가 있다. 내가 궁금한 건 이것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건지,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은 건지 말이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만, 나 자신과의 대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감정이 없는 기계와 소통을 많이 한다. 좋은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뮤지컬 등, 좋은 문화. 이 문화들을 '쉼표'라 생각한다. 좋은 쉼표가 되어야 한다. 좋은 쉼표를 봤을 때, 일상에서도 쉼표를 가지게 된다.

내가 치열하게 준비한 이 연극이 어느 한 관객에게 공감이 됐다면, 관객 본인이 주변과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고,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을 되돌아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짧은 생각일지라도 본인에게 쉼표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다른 매체보다 연극이 그런 여운을 보다 많이 준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이고 쇼킹한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남을 수 있게 하는 여운 말이다.

나도 아직 2000년대 초반에 봤던 연극 '청춘예찬'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다.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내가 그 청춘의 중심에 서있던 '나'였다. 그때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것이 정말 필요했던 시기에 만난 연극이다. 내가 하는 연극도 그런 연극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소통'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욕심 내보자면, 소통을 많은 분들이 누릴 수 있게 하는 작품이 많아질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연극 한 작품 제작하는 게 너무 힘들다.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다.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더라도 부딪히는 문제가 많다. 그게 안타깝다.

더 자유롭게, 다양하게 여러 연극들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들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현재는 그런 제도들이 잘못 진행되고 있지 않나 싶다. 내가 강하게 믿는 게 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면 나라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 우리나라가 좋은 예술, 창작자, 제작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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