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곰의 아내' 리뷰

   
 

[문화뉴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들입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유명해진 이 대사는, 2016년 여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는 직책을 맡은 고위공무원 나향욱에 의해 재발화됐다. 그의 발화는 영화를 통해 드러난 기득권 세력의 은밀한 욕망이 '실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성난 대중들에게 연신 사과를 거듭했지만,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고 그의 파면 여부를 둘러싼 징계위원회가 오는 19일에 열린다.

 

   
 

그리고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려진 연극 '곰의 아내'는 '곰'이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의 원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적'이란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어느 특성이 동물과 다르며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되묻는 것이다. 연극은 곰의 아내로 살다가 인간 사회로 돌아온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곰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같은 인간에게 "너는 인간이 되어야 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인간들,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은 부부 관계에 부담을 느끼며 점점 잔인하고도 몰인정한 태도로 변하는 남편, 그는 '인간이 되기 위해 곧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결국 가족을 버리고 떠나겠다며 외친다.

인간과 곰, 그 사이에 있는 '곰의 아내'는 자신이 도움을 베풀었던 인간들에게 모두 상처를 받는다. 숲에 버려진 남성의 목숨을 구하며 인연을 맺지만 그는 그녀에게 쓰라린 상처만 안기고 버린다. 그리고 약자인 줄 알고 도와줬던 환자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녀는 곰과 관계를 맺은 이후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를 받았던 자신이, 왜 인간이 돼야만 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확신도, 결연한 의지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자신이 '버린다고 버려질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짐승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게 인간이야."

곰의 아내를 버린 '남자'가 자신하는 그 한 마디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짐승보다 우위에 상정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말이다. 우리 모두가 확신하며 사는 이 전제는 곧 절대적인 명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연극은 더럽고 잔인하고 몰인정하고 악한 존재에 대해 '짐승 같다'고 말하는 우리의 언어적 관습에 대한 날카로운 의구심을 품게 한다.

 

   
 

'비인간적'이라는 관형사가 과연 인간을 함축하지 않는 범위의 단어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으며, '짐승 같다'는 형용사가 과연 인간과 전혀 닮아 있지 않은 대상에만 한정할 수 있는 단어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려야 하는 것일까? 절망적인 인간성을 마주한 우리에게, 현실은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하지만 연출가 고선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고 연출가는 이미 지난 3월 연극 '한국인의 초상'을 통해 현실을 디스토피아라고 인정하는 가운데서도, 유토피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초상'에서 배우 정재진의 "비가 와도, 안 와도 '나무다' 생각하고 살아"와 '곰의 아내'가 외치는 대사 "난 도망치지 않아.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해"라는 대사는 그의 주제의식이 강하게 표출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현실에 의해 절망했으니 현실에서 절망을 전복시킬 가능성을 찾자는 그의 소신에 의해, 고연옥의 '처의 감각'은 고선웅의 '곰의 아내'로 탈바꿈됐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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