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전문가와 가짜 무속인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미오 jy3308@mhns.co.kr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문화뉴스] 의사, 변호사, 운동선수, 정치인, PD, 연예인…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직업은 다시금 사람들에게 회자하고 인식된다.

이 직업군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분야라고 한다면 직업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일면 위험성을 함께 가져가는데, 그리 일상적이지 않은 직업이라면 화면 속에서 비치는 모습만으로 어떤 오해와 편견이 생길 수도 있다.

'임상심리전문가를 중심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상처를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드라마 '마담 앙트완'. 한 주의 방영을 마치고 이미 '심리학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 '심리학 실험에 있어서의 윤리'라는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고, '드라마를 현실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대중이 우매하지는 않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 논쟁들은 살짝 접어두고, 필자는 현직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상담하는/심리 치료하는 사람'의 자질에 대한 논점에서 이 드라마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담 앙트완'에는 두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임상심리학자' 최수현(성준)과 '무속인' 고혜림(한예슬).

최수현은 젊은 나이에 무려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임상심리학자이고, 고혜림은 사실 신내림 같은 걸 받은 적도 없으면서 점을 보는 척하는, 말하자면 '감 좋은 사기꾼 점쟁이'이다.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남자, 그리고 '그런 전문성은 개나 줘라'고 외치는, 타고난 심리 파악의 달인인 여자. 각자 눈앞에 놓인 상대를 간파하는 것이 내 특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상담에 대한 인식은 점차 변화되고 있다. 드라마 첫 화에서 스트레스로 인해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체조선수는 '전환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나 정신병자 아니거든요. 미친 거 아니에요"라고 항변한다. 이는 '정상'인 것과는 다른 '이상'한 사람이 될까 두려운, 우리들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극에서만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를 방문했던 것이 불리한 기록이 되지는 않을지, 내가 이상하다는 주변의 시선이 생기지는 않을지 고민하지만, 실제의 현장, 임상장면에서 체감하기에는 많은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건강검진'과 같은 개념으로 내 상태, 혹은 내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고 확인해보기 위해 심리검사를 받아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 사회 안에서 정상적으로 기능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여지에 대해 받아들이는 흐름이 확장되고 있다. 멀쩡히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에 대한 복지 차원에서, 기업들이 회사 내 상담소를 마련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1-2화에서 관찰되는 '최수현'의 모습은 사실 '상담가'라기보다는 '과학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자신이 증명하고자 하는 명제를 밝히기 위해, 연구를 계획하고 실험하는 그. 하지만, 그 명제(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여성은 '사랑'이 아닌, '돈'을 보고 사람을 택한다)라는 것은 아마도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상당히 편협하다(극의 재미를 위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1-2화의 내용 중 최수현이 어린 시절의 일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시사되는 단서가 제공된다.

상담가라기보다 과학자답다고 그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심리학은 과학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심리학적 지식들은 이처럼 과학적인 과정을 통해 입증되어 왔다. 심리학은 분명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학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방법론적인 한계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더군다나 '심리상담'이라는 것은 그렇게 딱 짜인 듯 예측대로, 공식대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심리치료에 있어서 최근의 흐름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증거가 기반이 되는 치료(Evidence-based therapy)'의 강조다. 효율성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심리치료 또한 효과가 확실히 보장되고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내담자가 보이는 증상을 진단하고, 그 진단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바 있는 치료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행해야 함이 중요시된다.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특정 장애는 심리검사를 통해 빠르게 진단하고, 그에 따른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으로 개입함으로써, 더 빠른 증상의 개선 등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모든 개인이 같은 효과를 보일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심리상담이 좀 더 보편화되어 가면서, 더 덜 심각한 증상과 문제를 가진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이 늘어난다면, 이 경우에 내담자를 어떠한 유형과 진단으로 미리 한정 짓고 바라보는 것은 더욱 위험할 소지가 많은 접근이 될 수 있다.

좋은 심리치료자의 자질이란 무엇인가?

극중 최수현은 고혜림에 비해 분명보다 많은 과학적, 전문적 지식과 기술의 소유자다. 반면 그런 지식은 없지만 고혜림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데, 바로 사람을 보는 감, 직관을 활용한다. 그녀는 남들과 주파수를 맞추어 보고 느낄 줄 아는, 통찰력이 있는 여자로 묘사된다. 최수현이 '머리'를 사용한다면, 고혜림은 '가슴'을 사용한다고 하겠다. 이 둘의 갈등이 전문가이냐, 비전문가 사기꾼이냐 하는 밥그릇 싸움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이들이 활용하는 두 가지 능력이 '심리치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

수련 시절, 과연 이 사람을 잘 상담하고 있는 걸까 자신 없어 하는 내게, 당시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의 내담자는 그의 치료자인 김지연(미오) 선생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거에요. 그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가 나아지기를 누구보다 온 마음으로 바라는 선생님이 그의 가장 잘 아는 치료자이니 그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가져요."

그 말씀은 초보 상담가이던 내게 많은 힘이 되었다. 그때의 나처럼 이제 막 상담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사례회의에서도 흥미로운 경우가 자주 있는데,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하고, 실수도 많은 상담자임에도 내담자들이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는 때다.

비록 전문가적인 스킬이나 지식은 부족할지 몰라도, 내담자를 돕고 싶다는 상담자의 마음과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이, 둘의 관계 속에서 신기하게도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이는 상담에 있어 전문가적인 지식이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어쩌면 좋은 상담은 그러한 스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전환장애로 눈이 멀어버린 체조선수에 대해, 최수현은 '그녀의 주변 관계, 과거의 히스토리, 모든 것을 다 조사해봐'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혜림은, 그녀와 잠시간의 시간을 가지며, 그리 전문적인지는 모르겠는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주된 스트레스가 '주변으로부터의 괴롭힘으로 인한 힘듦'이었음을 알아낸다.

치료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녀에 대한 둘의 태도도 차이가 있다. 최수현은 냉정한 한 수를 둔다. '내 마음을 열고 싶거든 이렇게 해봐요'라며 이런저런 행동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내가 왜 열어야 하지? 싫어. 지금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너야.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너야. 심리치료는 네가 움직인 만큼 얻어가는 거야. 변화할 생각이 없다면 나도 할 생각 없어.'라고 말한다. 물론 상담자를 제멋대로 조종하려거나 이용하려는 내담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강한 한 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극 초반에서 보이는 최수현의 모습은 상당히 성급하고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내담자와의 라포(치료적 관계)가 채 형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수를 둔 것이, 지금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 한 수일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만이 이런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의문점을 가져볼 만하다.

또 다른 환자의 케이스에서도 둘의 접근 방식은 차이를 보인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최수현에게 심리치료를 받던 남자는, 고혜림과의 만남 이후 치료를 중단하겠노라 말한다. 죽은 아내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고, 자신의 남편도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그는 위로받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답답한 최수현은,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거냐, 당신은 지금 그저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그를 직면시킨다.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려는 이들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문제 이전에, 최수현의 접근은 성급했던 것이지 않을까. 내담자의 목소리, 그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듣고, 우선시하고, 그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순간에 직면했던 것일지. 그게 아니라, 미신을 믿고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내담자에게 전문가로서 자신의 입장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던 거라면, 그건 치료 행동이었다고 할 수 없겠다.

'나는 전문가니까'라는 말은 극중 최수현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이야기된다. 내담자를 분석하고, 내면을 보고, 진단해 치료하는 전문가. 그러나 그런 생각이 '차가운 치료자'를 만들어낸다면 그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다. 심리치료에서 '상담가'라는 존재, 나라는 하나의 인간은 가장 중요한 치료 도구가 된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자기분석과 공부가 필요하고, 이 사람이 상대에게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상담가도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고, 상담가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지금-여기'의 문제에 대해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내담자보다 상담자 자체가 가진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치료 과정은 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기 쉽다. 나는 치료자이고, 너를 분석하고 꿰뚫고 있다는 지배적이고 위압적인 태도로는 어렵다. 치료를 통해 그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함께해 나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치료자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증상과 원인, 치료 방법이 무엇인지 이론을 아는 게 먼저이지만, 그 이후 결국은 스킬만이 아닌 진심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종류의 치료자가 존재하지만, 나는 상담에서 언제나 중요시되는 '공감'을 위해 상대에 대한 '인간적인 따뜻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최수현과 고혜림, 둘 중 누가 승자가 될까?

결국, 결말에 가서는 서로에게 윈윈인 결과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지금 최수현의 모습은 바람직한 상담가의 모습이 아니다. '임상심리전문가', 혹은 '상담전문가'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다소 우려될 만큼, 현재의 그는 똑똑한 머리로 쉽게 성공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어린 스타, 그 이상이 아니다.

이는 많은 드라마에서처럼 '외모, 지적 능력, 재력 등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모난 성격을 가진, 그런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진심을 믿지 않고, 사랑은 과학이고 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그가, 결국은 좋은 사람, 좋은 임상심리전문가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드라마는 그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이 믿지 않고 부인했던 '사랑'을 하며 달라지는 그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로코 드라마의 당연한 전개이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마음'이 왜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이 단지 '스킬'만으로 좋은 상담가가 될 수는 없다. 고혜림 또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리라 기대된다.

아마 스스로도 사기라도 믿어왔던 자신의 방식에 대해 어떠한 신념을 갖게 되고, 전문가적인 방식을 익히면서,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치료자에 조금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전에 접해본 적 없는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며 의기양양한 최수현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고혜림이지만, 앞으로 이 둘이 겪어갈 과정 중 어느 것이 더 어렵겠냐고 한다면, 꼭 혜림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머리를 쓰고 채우는 일보다, 가슴에서부터 달라지는 일이 어쩌면 훨씬 더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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