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무엇이든, 진심은 통한다는 홍상수의 메시지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미오 jy3308@mhns.co.kr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문화뉴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솔직한 우리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날 것이거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거나, 혹은 지루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분명 전형적인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만의 묘한 매력이 있는 홍상수식 연출. 욕망이 중요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고, 사회 그리고 관계 속에서 어떤 지위로 인정받고픈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데, 그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자연스레 그런 몇몇 인물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다.

그렇게 관찰자로 시작해,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그/그녀에게 공감하기도, 그들을 우습거나 처량하게 바라보기도, 때로는 속물적이고 졸렬한 내 속을 들킨 것만 같아 가슴 한구석이 쿡 찔리기도 하면서 그의 영화에 관망하듯 참여한다.

그런데 그의 최근 작품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조금 다른 시도를 보인다.

떠들어대는 말이 실제 행동과 일치하지 않고, 오가는 말들 속에 진심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홍상수식'으로 관계를 조망하는 것이라면, 영화 반절이 흘러갈 때까지 영화는 '역시 홍상수답네'라는 느낌이 들게 진행된다. 그러나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방금 본 것과 같은, 아니 같은 듯 아주 미묘하게, 하지만 많이 다른 이야기가 다시금 시작되면서 우리는 '이건 뭐지?' 싶어지는 마음으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vs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영화감독 '함춘수'와 화가 '윤희정'에 대해 다루지만, 첫 번째 버전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두 번째 버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함춘수는 전혀 다른 두 명의 인물 같다. 감독이라는 직업, 내일 열릴 영화제를 위해 이 낯선 곳에 하루 먼저 도착한 것, 20대에 일찍 결혼했고,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윤희정'이라는 여자에게 끌리는 취향을 가졌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는 이 둘은 기본적인 태도나 말, 행동이라는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는 아마 이 두 명의 함춘수가 만들어낸 영화도 비슷한 듯 굉장히 다를 것이라 예상한다. 반면 두 이야기에 등장하는 '윤희정'은 동일 인물에 가깝다. 그가 함춘수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건 이 둘이 다른 인물이어서 라기보다는 그가 마주하고 있는 함춘수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영향을 받고 달라지는 것에 더 가깝게 보인다.

나쁜 남자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으로 '나쁜 남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편의상 '남자'로 지칭할 뿐, 남녀 모두에 적용 가능한 이야기임을 밝힘-). 관계는 상호적이고 양방향적인 것이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한다고 본다면, 물론 누구를 만나더라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그 사람이 맺는 각각의 관계가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인 '나쁜 남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쁘다'는 단어는 '1 좋지 않다, 2 옳지 않다, 3 건강 따위에 해롭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남자라는 표현도 엇비슷한 뜻이지 싶다. 영어로는 'Not good, Wrong, Harmful' 정도가 될까? 착하지 않거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거나, 이 남자를 만나는 것이 내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남자.

좀 더 와 닿게 풀어 말하자면,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이면서도, 미안함이나 거리낌이 없는 남자, 배우자가 있어도 외도 등 도덕이나 법의 기준을 대었을 때 걸림이 있는 행위를 하는 남자, 나를 예민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셋은 대부분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분명 나쁜데 정작 그 당사자가 되는 상대에게 '나쁘지 않은 남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두 번째 이야기의 '함춘수'가 그렇다. 첫 번째 함춘수와 두 번째 함춘수는 여느 홍상수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듯, 결혼한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고 관심 가는 새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인물들이다. 그런 마음이 불가피한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논쟁은 차치하고. 일단 이 점에 있어 이들은 이미 '나쁜 남자'의 두 번째 요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남자를 충족한다.

하지만, 첫 번째 함춘수와 두 번째 함춘수를 바라보는 상대, 그리고 주위의 시선은 극명히 차이가 나는데 그 시선을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극중 '윤희정'의 아는 언니로 등장하는 최화정 분의 '방수영'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동생과 함께 술자리에 참석해 피상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함춘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그에 대한 들었던 좋지 않은 소문들을 언급하고, 미혼인 여자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견제하듯 이리저리 캐묻는다.

   
 

결국, 이 자리에서 본인의 의지와 관련 없이 함춘수는 자신이 기혼자임을 밝히게 된다. '아, 일찍 결혼하셨구나…'라고 읊조리지만 그때부터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진 희정은 결국 자리를 뜨고,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 한 채 곁에 와 집적대는 함춘수에게 '그냥 가시는 게 좋겠다'며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아마 그녀에게 함춘수는 '아내와 가정이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미혼인 자신과 연애하려다 운 나쁘게 들킨, 뻔뻔하고 사기꾼 같은 나쁜 남자'로 기억되겠지. 반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의 함춘수는 더없이 솔직하다. 희정에 대한 욕망이 있지만, 그는 그것을 욕망이라 생각하고 표현하지 않는다, '사랑'이라 한다. 몇 시간 전 만난 여자에게 웬 사랑? 하지만, 재밌는 것은, 매사 솔직하고 진솔하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히는 그를 우리는 솔직하지 못했던 이전의 함춘수에 비해 뻔뻔하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아까 당신을 본 순간부터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함께할 수는 없어 슬프다. 나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한다'며 울컥해 눈물을 쏟아내는 그를 '희정'은 속았다든지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보다 애틋해한다. 진작, 더 빨리 우리가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애통해하며, 솔직하기 그지없는 함춘수를 심지어 귀엽게 바라보는 그녀. 아마 '윤희정'은 '함춘수'를 '비록 더 일찍 만나지 못해 함께할 수 없는 사실이 아프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을 알았고,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것만으로 의미 있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물론 '아내가 이미 있다'며 눈물을 쏟는 그를 보며 관객은 씁쓸하고 허탈한 웃음이 난다. 그러나 우리 역시 그 다음 순간 갸웃거려진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아내를 배신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그를, 철없고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버텨내도록 해주었던 아내 곁을 떠날 생각은 차마 하지 않지만, 진심으로 어떤 대상에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느꼈다는 그를 과연 비난하는 게 맞을까? 그냥 조금, 이해해 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 흔들리기도 한다.

   
 

여전히 그에 대한 견해에는 아직 두 가지 옵션이 남아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행동과 말일 뿐이니까. '희정'이 진심이라고 느꼈던 두 번째 이야기의 '함춘수'가 실은 첫 번째 함춘수와 같은 인물이면서 표현하는 방식만이 달랐던, 남들의 시선을 '정말로' 신경 쓰는 계산적이고 진정 약은 인물이라면, 이건 블랙 코미디이다. 혹은 이 두 번째 함춘수는 우리가 보고 들었던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자신마저 푹 빠져 200%의 진심이라고 믿는 인물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그는 '나쁘지 않은 남자'를 넘어서 '좋은 인연'으로 기억되었고, 이후 희정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와 사랑할 기회를 얻을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 말만 할 뿐, 실은 어리석은' 첫 번째 함춘수보다 그가 훨씬 높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사실 희정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정에 자신도 푹 빠져 이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남자건, 희정에게 좋은 모습으로 어필해 어떻게 한번 잘해보려는 남자이건,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대단한 화가처럼 자신을 띄워주다 결국 결혼한 남자이면서도 자신에게 집적댔다는 사실이 밝혀져 불쾌한 하루의 기억을 남긴' 함춘수보다는, '이뤄질 수 없어 더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에 대한 기억을 남겨준' 함춘수가 더 고마울 테니. 결국, 홍상수는 연애든 사랑이든 하고 싶다면, 쓸데없는 헛소리나 잘 보이려는 마음, 허세는 집어치우고, 매 순간 솔직하게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은 게 아닐까.

 

* 두 배우의 인터뷰에서 함춘수의 결혼이 밝혀진 부분을 두고, 윤희정 역의 김민희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 함춘수 역의 정재영은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냐, 함춘수는 그저 행궁에서 만나 커피 마시자, 작업실 구경하고 싶다, 술 한잔하자고 한 거지 윤희정이 오해한 거다 거짓말한 적 없다'고 논쟁한다. 두 인물의 입장에 푹 빠진 이 둘의 말이 아마도 극중인물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말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착한 거짓말'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것=거짓말'인가, 그렇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생각에서 관계, 그리고 솔직함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엿보이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말하는 쪽을 선택하는 이와 함께하고 싶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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