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나 시선보다 제 멋에 사는 것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미오 jy3308@mhns.co.kr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문화뉴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영화 속 마지막 에피소드인 '프랑스 영화처럼'에서 수민이 여동생에게 답도 없는 기홍과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털어놓고 그녀의 의견을 듣듯, 우리도 시시각각 경험하는 일상에 대해 나누고 조언을 구할 누군가를 원하지만, 수민이 결국 그녀의 말을 그저 들을 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 또한 결국 내가 내리는 선택을 따른다.

영화 속 그들은 제멋대로이거나 우리가 기대하는 보편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택을 하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이들은 그들 각자의 입장에 가장 솔직한 사람들이다.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을 띠고, 총 4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다. ▲ A time to leave, ▲ A lady at the bar, ▲ A remaining time, ▲ Like a french film. 자칫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 네 개의 이야기는 시작 그리고 끝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연결고리를 가진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는 마지막을 선택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이기에 우리가 왜 이렇게 되어 왔고, 우리의 눈앞에 놓인 이런 결말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두 번째, 네 번째 에피소드는 시작조차 하지 못해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 건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보여준다. 시작과 끝. 결국, 이 영화는 우리네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 번째 이야기, A time to leave

자신이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이영란)는 네 딸을 한자리에 부른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도시와는 동떨어진 곳에 모인 이들은 그 장소만큼이나, 다섯이 함께 모여있다는 것이 생경한 느낌을 준다.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무색할 정도다. 조금만 대화가 이어져도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옥신각신하는 딸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아니 통보한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 내가 병간호를 했던 몇몇 이들처럼 마지막을 맞고 싶지는 않다고. 이곳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편안하고 행복한 3일의 시간을 보낸 후 자신의 선택대로 생을 마감하겠노라"

무슨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있나 싶어지지만, 죽음을 앞둔 그녀가 스스로 인생을 돌아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만도 아니다. 마음이 병든 아이들을 돌보고 치료한다고 평생을 애쓰며, 그 분야에서 나름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 사이 내 가정, 내 아이들과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게 틀어져 버렸다. 1년에 한 번도 서로 볼 일 없이 살아가는 나날들. 이렇게 부모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한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생각의 끝에, 그녀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서, 오히려 초연히, 내 인생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선택하겠노라 결정했을 게다.

후회되는 삶을 그저 그렇게 이어가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보다, 잠시라도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몸도 마음도 더 황폐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고. 이런 어머니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네 딸의 모습도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도 있다만, 우리 사회에서 엄연히 불법인 '자살'을 선택하겠노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뜯어말리거나 중지시키는 이 없다.

보통의 영화라면 죽음을 앞둔 이런 극적인 장면에서 과거를 후회하며 관계가 개선되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줄 만도 하지만, 딸들은 여전하다. 여전히, 잘난 척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셋째에게 막내는 '이제와 언니 역할 하려 들지 말라'며 날을 세우고, 남편들의 동업으로 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첫째와 둘째는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면서 뻔뻔하다', '그게 왜 내 탓이니, 너는 내가 죄책감에 죽어야 마음이 풀리겠니'라며 서로에게 상처 내기를 계속한다.

대체 이 순간까지도 왜 저러는 걸까 싶은…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 것일지 모른다. 부모의 장례식에 모여 내게 돌아올 지분이 얼만큼인지가 관심사인 이들. 잠시나마 슬픔을 함께하며 위로할지언정, 이 같은 극적인 한 순간으로 인해 관계의 본질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 중 누구 하나 어머니의 죽음을 막고, 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를 함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젖혀둘 수 있는 이가 없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퍽퍽한 현실인지 모른다.

두 번째 이야기, A lady at the bar

작은 바에서 일하는 여자(김다솜). 아는 형들과 술을 마시러 와 적잖이 취한 젊은 남자(정준원)는 그녀에게 시를 건네며,

'따로 한잔 하자, 나를 더 알아보지 않겠냐'

추파를 던진다. 그것뿐이랴. 어쩌다 그녀에게 빠져버린 건지 모를 뇌성마비 환자인 그도 그녀에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를 모르지 않냐, 내 얘기 좀 들어보라'며 매달린다. 그들에게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고 무관심하게 대하며 여러 차례 거절하지만 그런 그녀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결국, 내가 장애인이어서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냐고 따지던 그는 그녀에게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는 그럴만한 삶의 여유가 없다'는 말과 함께 따귀를 맞고서야 물러서고, '취해서가 아닌 진심'이라며 몇 번이고 말하던 다른 남자는 취해 잠들었다 일어나서는 어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겸연쩍어하며 자리를 뜬다.

   
 

그녀 역시 조금의 실망하는 기색 없이, 매일같이 있는 일이라며 별일 아니라 치부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끝이 난다. 밤, 그리고 새벽. 취해도 괜찮은, 평소 나 같은 모습이 아니어도 술과 분위기 때문이라고 핑계 댈 수 있는 시간. 헤어진 그 혹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말들을 해버리고도 다음날 '진심이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시간. 차라리 그 밤을 넘기고 아침이 밝아오는 그 시점에서 남자가 여전히 그녀에 대한 관심과 행동을 이어갔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진짜였구나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아니 적어도 연애라도 하고 싶다면 얼만큼 내가 좋아하고 진심인지, 자신의 입장만을 보여주기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한번은 해야 했던 게 아닐까. 매일같이 그런 치기어린 혹은 취기어린 타인들의 행동을 겪어내야만 하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된 그녀로서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 조금의 틈을 보이지 않고 선을 긋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세 번째 이야기, A remaining time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 여자 아버지의 반대를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지 고민하며 토닥이던 둘은 우연히 만난 점쟁이에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10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언을 듣는다. 지금처럼 함께 100일을 더 산다면, 둘 다 죽고 말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자리를 뜨려 하지만, 누군가가 죽고 사는 문제인데다, 말하지도 않은 그들의 과거를 소름끼칠 만큼 잘 맞추어내는 점쟁이의 말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마주앉아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지만 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100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일까? 처음 두 사람이 만났던 시간과 장소에서와는 달리, 한국으로 들어와 현실을 바라보게 된 그녀(소이)는 자꾸만 복잡한 사람이 된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스티븐 연)는, 낮은 학력에 과거 마약을 팔았던 경험을 '얼마나 자립적이냐며' 예비장인에게 솔직히 이야기할 정도로 (그녀의 눈에) 철이 없다.

그녀가 변해버린 것이 아니라, 원래 그와 그녀가 그만큼의 거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적당한 정도의 마음이라면 헤어지고 말겠지만, 서로 쉽게 놓을 수 없을 만큼의 마음을 가진 이들. 남은 시간은 100일뿐이라는 상황 앞에서도 이토록 다른 생각을 하는 이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토록 다른 서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다.

마지막 이야기, Like a French film

수민(신민철)은 친구의 친구, 다시 그 친구의 친구인 기홍(김다솜)과 우연히 알게 된다. 인연이 이어지며 그는 그녀에 대해궁금하고, 그녀를 이해하려 하고, 그녀의 부름이라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지만, 그런 그를 세상은 '사랑에 빠진 로맨티스트'가 아닌, '어장 속의 물고기', '호구'라 부른다.

'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

실제 그의 모습은 이 단어가 딱 들어맞다 싶을 만치 답답스럽다. 극중 수민의 동생 수빈이나 기홍의 모습이 시시각각 바뀌는 동안, 옷 한 번 갈아입지 않고 매 장면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수민은, 언제나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녀가 부르면 언제 어디가 되었든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대기조 같다.

   
 

그녀에게 몇 번이나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청첩장을 받으면서도, 그녀와 무슨 관계일지 모르는 남자와 함께 있는 상황에 불려나가 택시비일지 모텔비로 쓰였을지 모르는 돈을 주고 돌아오면서도, '비가 오니 네가 보고싶다'며 새벽에 전화해놓고,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시간에 그녀를 만나러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 수민은 안중에 없이 잠이 든 그녀를 보면서도, 그녀와 어쩌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놓지 못하는 수민이다. 이런 인연이 언젠가는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걸까? 대부분의 이들은 정신 차리라며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말하지만, 수민은 상관하지 않는다. 계속 그녀만을, 일말의 가능성만을 바라보며 전진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숨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복잡한 이슈들에 대해서다.

암 치료를 받지 않고 우아하게 죽음을 선택해도 되는 것일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구애하는 남자들에게 그녀는 왜 마음을 열지 않는지, 함께 살면 죽을 운명이라는 말을 듣고도 여전히 만날 수 있을지, 어장관리하고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도무지 내게 마음이 있는 건지 짐작 가지 않는 그녀를 계속 좋아해도 괜찮을지.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해 감독은 '프랑스 영화처럼' 답하려 한다. 그가,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 영화같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블란서 여배우 같은', '프랑스스러운'.

우리는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다른 그들의 문화에 대해, 일종의 동경하는 시선을 간직한 채 그런 표현들을 사용해오지 않았나.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다르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의 답을 따라 움직였다는 점에서 닮았다. 고통스럽게 치료받으며 죽어가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보낸 후 언제 죽을 것인지 선택했고, 가게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장애인을 동정하기보다 내 상황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판단하는 그들을 거절했다.

여자는 감당하기 버거운 그에게서 잠시 떠나있기로, 철없던 남자는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오기로 했고, 몇 번이고 그녀에게 이용당하고 허탕을 쳤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놓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의미 있는 사람임을 믿고, 그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나 그녀에 부름에 언제든 답하고픈 지금의 마음을 계속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이는 그리 일반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고 결정들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바였다.

제멋에 사는 것, 내키는 대로 하는 것. 규율이라든지, 사회의 시선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바를 좀 더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 정작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해 그리 생각할지 의문이지만, 우리의 시선으로 본 '프랑스다운' 것이라는 건 저런 것이지 않았을까.

'프랑스 영화처럼'이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유럽의 영화들이 그렇듯 우리와는 조금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지극히 우리의 현실,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정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 이 영화에 대해, 빠르고 정확한 결말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걸까' 답답함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언젠가 보았던 프랑스 영화를 떠올리는 수민의 대사를 읊조려보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건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지, 서로 사랑을 하긴 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의 내레이션처럼,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끊임없는 과정이고 명확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인생을 다룬 영화가 '명확한 결말'로 맺음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 인생과 괴리를 가지는 걸까. 어차피 정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인생 속에서,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등장 인물들은, 실은 누구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주체적으로 쫓는 인물들인지도 모른다.

그 결과로 비록 내가 원하는 100%를 얻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는 것. 남들 눈에는 '삶을 포기한 자, 관계를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자, 비겁하게 관계를 놓아버리는 자, 호구처럼 어장관리하는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자'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들 인생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비난받을 만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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