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고전, 재즈시리즈 2탄 - 재즈계의 거장들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김수영 panictoy27@mhns.co.kr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실용음악과 건반을 가르치면서 음악방송 '음악잡수다' DJ를 맡고 있다

[문화뉴스] 재즈라는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보컬 위주의 음악이 아닌, 악기들이 솔로 악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점이다.

악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들의 즉흥 솔로 연주가 가장 돋보이는 음악이 바로 재즈라는 장르다. 재즈의 맛을 확실히 살려주는 거물급 뮤지션들, 재즈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다면 바로 이들의 음악이 당신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캣의 창시자, 훌륭한 음악인이자 재주 많던 광대 -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루이 암스트롱.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음악계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아주 큰 역할을 끼쳤던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루이 암스트롱은 19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유명한 트럼펫터 이자 '스캣'(Scat)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스캣이란, 보컬리스트가 목소리를 악기화해 아무 뜻이 없는 음절들로 다양한 소리 들을 구사하는 창법 중의 하나인데 이 스캣을 처음으로 시도한 뮤지션이 바로 루이 암스트롱이다.

어린 시절에는 상당한 문제아이면서 반항아였고, 그런 이유로 경찰서와 소년원에 들락거리던 루이는 소년원 특활시간에 '코넷'이라는 악기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빠져들었고, 유명했던 코넷 연주자 '킹 올리버'(King Oliver)의 눈에 들게 된 루이는 킹 올리버의 소개로 그 당시의 인기밴드였던 '키드 오리'(Kid Ory)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키드 오리를 탈퇴하여 유람선의 어느 악단에서 연주를 하던 도중 다시 킹 올리버와 조우하며 킹 올리버가 직접 이끄는 악단에 입단하여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지만, 자신보다 더 큰 재능을 보이는 것에 질투심이 불타올랐던 킹 올리버의 은근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루이는 다시 악단을 나와 '핫 파이브즈'(Hot Fives)라는 독립된 자신만의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다.

훌륭한 연주실력과 재치있는 입담까지 소유했던 루이 암스트롱은 탁월했던 음악적 감각의 뮤지션이었고 또한 스캣의 창시자로서 후에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루이 암스트롱의 명곡,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What a wonderful world'

변해가는 음악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부하다 -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악단의 훌륭한 리더이자, 수많은 명곡을 직접 작곡한 듀크 엘링턴은 초기 재즈의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1899년에 태어나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시기는 1927년 즈음에 미국 뉴욕의 코튼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당시의 코튼클럽(Cotton Club)은 뉴욕 할렘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클럽이었으며, 흑인들이 공연할 수는 있었지만 백인들만이 관객으로 출입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인종차별적인 모습이 보이긴 하나, 어찌 보면 소위 잘나가는(?) 클럽에서 연주할 수 있었던 흑인들에게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 클럽에서 듀크 엘링턴은 자신의 이름을 건 악단의 리더로, 또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면서 5년 넘게 연주를 했다고 한다.

코튼클럽에서 자기가 작곡한, 혹은 편곡한 곡들로 주로 연주를 했고, 영화음악가로도 활동했다고 전해지며, 라디오와 영화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듀크 엘링턴은 재즈의 흐름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던 시대에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해갔던 뮤지션이다. 그가 작곡한 곡으로는 'Take the A train', 'C Jam blues', 'Satin Doll' 등의 곡들이 유명하다.

빅밴드 시절의 훌륭한 리더이자 연주자였던 스윙의 제왕들 -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 베니 굿맨(Benny Goodman)

빅밴드 시대의 가장 유명한 3대 악단이 있다. 바로 앞에 언급했던 듀크 엘링턴 악단, 그리고 카운트 베이시 악단, 베니 굿맨 악단.

카운트 베이시는 처음부터 악단을 만들었던 리더는 아니었다. 처음 '블루 데블스'(Blue devils)라는 팀에서 연주하던 도중 1930년대에 베니 모튼 악단으로 블루 데블스가 흡수되면서 거대한 빅밴드의 일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악단의 리더였던 베니 모튼이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면서 새롭게 이 빅밴드의 리더가 된 인물이 바로 카운트 베이시였다.

당시 유명했던 색소폰 연주자인 레스터 영(Lester Young)이 이 악단에서 솔로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스윙 빅밴드 시절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베니 굿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베니 굿맨은 190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클라리넷을 독학으로 습득했고 11세부터 청소년들을 위한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1927년에 벤 폴라크 악단의 입단을 시작으로 수많은 악단을 거쳐오며 연주자로서 명성을 떨치던 중 자신의 이름을 건 악단을 결성하게 된 것은 1934년의 일이다.

베니 굿맨은 악단의 리더로서, 훌륭한 연주자로서도 유명했지만, 실질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Let's dance'라는 제목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고 알려졌다.

유명한 재즈보컬리스트인 빌리 홀리데이의 첫 번째 레코딩 앨범에 세션으로도 참여했던 경력이 있는 그는 영화에도 출연하며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 수많은 영화와 광고에 쓰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곡이다.

비밥의 양대산맥 -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찰리 파커는 비밥 재즈의 창시자라 불릴 만큼, 비밥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알토 색소폰 연주자다. 새처럼 자유로운 연주자라는 뜻의 '버드'(Bird)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기도 했다.
1920년에 미국의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는데, 이 캔자스시티는 뉴올리언스에서 건너온 재즈 연주자들이 꽤 많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재즈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12세에 처음으로 어머니께 색소폰을 선물 받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재즈 음악에 빠지게 된다. 엄청난 노력형 천재로 알려졌으며, 음악에 대한 진중함이 유난했던 뮤지션이기도 했다.

재즈의 고전이라 불리는 수많은 명곡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곡으로는
'빌리스 바운스'(Billies bounce), '나우즈 더 타임'(Now's the time), '도나 리'(Donna Lee) 등이 있다.

찰리 파커가 여러 악단에서 연주하던 도중 만나게 되는 운명적인 인물이 바로 디지 길레스피다.

이 두 사람을 비밥 재즈의 양대산맥이라 부르는데, 그만큼 디지 길레스피 역시 재즈음악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디지 길레스피의 본명은 '존 벅스 길레스피'(John Birks Gillespie)이다. 변화무쌍하며 개성이 강한 그의 음악 스타일 덕분에 '디지'(Dizzy)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찰리 파커와 함께 비밥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극과 극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음악에 대해 누구보다도 진중했던 찰리 파커와, '디지'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던 디지 길레스피. 함께 여러 번 한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했지만 찰리 파커는 디지 길레스피의 괴짜답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3대 여성 재즈보컬리스트 - 사라 본(Sarah Vaughan),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상대적으로 악기연주자들의 즉흥 솔로 연주가 돋보이는 재즈 음악에서 보컬리스트의 영향은 다소 낮아 보이지만, 이 세 사람의 목소리를 접하는 순간 또 다른 재즈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는 아주 처절했던 인생을 살았기에 그 처절함이 목소리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온다. 특유의 깊고, 우울한 음색이 특징이며, 사라 본은 폭넓은 음역을 자랑하는 보컬리스트. 영화 '접속'에서 흘러나왔던 'A lover's concerto)가 바로 사라 본의 목소리다.

보컬리스트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로 유명한 뮤지션은 바로 엘라 피츠제럴드. 그녀의 노래를 듣다 보면 정말 딱 떨어지는 느낌의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보컬이 매력적이다.


▲ 어디선가 꼭 들어봤을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

재즈의 흐름을 주도한 뮤지션 -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재즈계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재즈의 흐름을 주도해온 인물이며,
재즈의 역사가 이 사람의 음악 인생에 그대로 묻어나온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1926년 미국 일리노이주 태생이며 본명은 마일스 듀이 데이비스(Miles Dewey Davis)다. 18세에 빌리 엑스타인 악단의 연주를 보기 위해 트럼펫을 가지고 공연을 보러 간 마일스는 마침 그날 공연에서 연주해야 할 한 명의 트럼펫터가 참여하지 못하는 바람에 트럼펫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함께 연주했던 연주자들이 바로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였다.

이 공연 이후로 재즈 음악에 심취하게 된 마일스는 음악에 더욱더 큰 열정을 보이며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했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음악적 갈증을 채울 수 없을 거라 판단하여 곧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비밥 재즈 이후로는 거의 마일스가 하던 스타일대로 재즈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쿨 재즈가 유행하다가 어느 순간 하드 밥으로 유행이 바뀔 때에도, 프리 재즈에서 퓨전 재즈로 흐름이 바뀔 때에도 늘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이며, 코드 위주의 솔로를 하던 방식에서 최초로 '모드'(Mode)라는 개념을 도입해 '모달 재즈'(Modal Jazz)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한 뮤지션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은 늘 화제였고, 존 콜트레인, 레드 갈란드, 빌 에반스, 소니 롤린스, 아트 블레이키, 델로니우스 몽크, 키스 자렛, 칙 코리아 등 재즈계의 수많은 거장들이 마일스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했다.

재즈를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이라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들을 꼭 들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만큼 재즈의 교과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 마일스 데이비스에 의해 만들어진 모달 재즈의 대표곡 'So what'

[도움말] '음악잡수다'

- 팟빵 앱· 홈페이지 : http://www.podbbang.com/ch/10372
- 아이튠즈 : https://itunes.apple.com/kr/podcast/eum-agjabsuda/id1055942908?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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