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성북동비둘기가 올해 공연한 연극 5편 포스터


[문화뉴스]
기존 형식과 충돌하는 새로운 표현 양식을 선보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오는 극단이 있다. 북적북적한 대학로를 지나 한적한 성북동에 자리하고 있는 '극단 성북동비둘기'다. 이들은 올 한 해 문화뉴스가 가장 주목한 극단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독특한 각색을 특징으로 하는 이 극단은 올해만 해도 무려 5편의 연극을 다양한 극장 무대에 올렸다.

 

   
지난 10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

지난 3월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는 '춘향전'을 각색한 '열녀춘향'이 올랐고, 5월에는 예술공간 서울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를, 6월에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각색한 '망루의 햄릿'을 공연했다. 또한 10월에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각색한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를 선보인 바 있다. 이들의 올해 마지막 작품은 '하녀들'이다. 이 또한 장 주네의 동명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며, 오랜만에 그들의 아지트인 '연극실험실 일상지하'에 돌아와 공연을 진행했다.

 

   
어제(28일) 연극실험실 일상공간에서 막을 내린 연극 '하녀들'

수백 년간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들의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는 '고전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이들의 연극은 고정적인 관념에서 탈피해, 새롭게 고전 읽기를 시도한다. 고전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충분한 여지들을 외면하며 읽어왔던 우리의 보편적인 '고전 읽기 방식'은 또 하나의 불변하는 캐논(정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국내외 고전명작들을 도발적인 시선과 날카로운 감각으로 재구성한 무대들을 선보이기에 두려움이 없다. 해체를 기반으로 하는 고유의 미학과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작품마다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켜 오고 있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곧 많이 접해보지 않은 예술을 접하게 되면 수용자(관객)들은 또 다른 설명, 즉 저자의 해석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따라서 '해체'적인 재구성은 다수의 수용자들에게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에 해석과 설명을 요하는 우려가 생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해체는 또 다른 해석적 권위의 창출을 범하고자 하지 않는다. 재구성한 작품은 '원작'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고, 관객 스스로가 작품의 해석을 찾아가게끔 만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대표인 김현탁 연출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해체하면 할수록 저자와 가까워지고, 관객들에게는 '김현탁 스타일'을 보여주며 원작을 읽고 싶게 만든다"고 얘기한 바 있다. ▶ 연출가 김현탁 인터뷰 보러 가기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그러나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습실이자 곧 무대였던 '연극실험실 일상지하(이하 일상지하)'가 곧 문을 닫게 됐다. 기반이 허약한 단체의 누적된 적자와 지역의 개발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공간 임대료 등의 이유로 이번 공연을 끝으로 성북동비둘기의 치열한 작업공간이었던 일상지하는 김광섭의 시 '성북동비둘기'처럼 지난 시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극단은 일상지하에서의 마지막 작품 '하녀들' 공연을 개막하기 전에, "시작도 그러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거친 콘크리트 천장과 기둥, 시멘트 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그냥 지하실'이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고 조명시설도 변변찮은 이 공간에서 '오늘, 우리'의 문제로 다시 조명한다"라 밝힌 바 있다.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일상지하는 대학로가 끝나고 성북동이 시작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경계적 특성은 주목할 만하다. 시끌벅적 노골적인 상업화가 만연한 대학로와 한적하고 고요한 성북동 사이에 위치한 일상지하. 그리고 '드라마'와 '퍼포먼스'라는 굵은 키워드로 나뉘는 동시대 한국 연극의 두 경향 사이에 위치한 극단 성북동비둘기. 이들의 경계성은 현재 우리 사회와 동시대 연극계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좌표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일상지하 뿐 아니라 다른 극장에서도 극단 성북동비둘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꽤 많았다. 비록 이제는 성북동에 위치한 연극실험실 일상지하에서 그들의 모습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공간에서 여전히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멈추지 않을 그들의 도전적인 모습을 기대해본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