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김효상] 공연을 소개하고 공연을 이야기하고 공연을 만나보는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졸업 후 극단 ‘현장’에 입단해서 20년 넘게 극단 활동을 했으며 배우부터, 극작, 연출, 기획, 연극강사 등의 여러 영역을 섭렵하면서 2012년 세종문화회관 입사한 이후 여러 팀을 거쳐 올해 4월부터 돈화문국악당에서 팀장으로 재직중인 어연선 팀장을 만났다.

▲ 플스 87회 게스트, 어연선 팀장

 

[▶]을 누르면 어연선 팀장과의 인터뷰가 실린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Q. 기획했던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ㄴ2014년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했던 한글날 기념공연으로 진행한 ‘천강에 비친 달’이 기억에 남는다. 국악을 베이스로 한 재미있는 형식의 공연을 만들고 싶었고 지금은 많이 유명해진 김나니씨와 황석정 씨가 출연했다. 특별기념공연 성격이었기에 지속되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극단 ‘현장’에 있을 때는 1994년 ‘노동의 새벽’이라는 작품이다. 당시 문예회관 대극장 공연(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했는데 극단 ‘현장’은 이전까지 주로 야외공연을 많이 하던 극단이었다. 그리고 사회성이 강한 작품이어서 일반적인 공연장에서 그런 공연을 올린다는 것은 당시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 그 당시 민주화되어가는 사회 분위기와 접목되면서 극장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홍보마케팅도 대대적으로 진행해서 지금은 없어진 성대 앞의 육교에 광고현판도 걸어봤다. 출연하지 않은 단원들이 기획단을 구성해서 매일매일 발로 뛰며 티켓을 팔았다. 관객들 역시 아주 많이 와서 공연 전에 문예회관 대극장 건물을 빙 둘러쌌을 정도였고 객석도 넘쳐서 객석 사이의 계단에 앉아서 봤을 정도였다. 기획자라면 이런 무용담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민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지금보다 많이 열악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듣고 싶고 예전과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궁금하다.
ㄴ 일단 90년대에는 인터파크나 네이버가 없었다. 공연 홍보물이 나오면 직접 들고 예매처를 확보하는 게 일이었다. 기억나는 예매처는 종로서적, 세고비아 등이다. 대학가 앞의 서점들도 중요한 예매처다. 맡겨놓고 공연 끝나면 가서 판매금액에 대해 정산을 했다. 그래도 우리 티켓을 많이 맡아주고 팔아줬다. 그리고 각종 단체나 기업들 돌아다니며 단체 관람 유도하며 팔았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서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뭔가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사람들의 반응도 체크하면서 공연에 대한 감이 온다. 무엇을 더 해야 되는지 나름 방향성도 잡힌다. 요즘은 온라인이 발달하여 발로 뛰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온라인 작업만 해도 해야 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공연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기획자 한명 한명에 따라 업무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기획자의 자기 취향이나 경향에 따라 다른 방법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기획’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일이 되는데 지금은 점차 획일화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각기 성향이 다른 기획자들이 팀으로 모이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

 

 

 

Q. 관객들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ㄴ 90년대 초반은 대학로 소극장이 자리를 잡아갈 때였다. 그전까지는 연극이라고 한다면 대체적으로 번역극이 다수였고 프로시니엄 무대의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고 떠올리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소극장 연극이 활성화되면서 관객들은 바로 앞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같다. 그 당시의 문화소비층은 대학생과 2~30대의 지식인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연극은 사회적인 문제나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을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래서 대학생들 관람을 위해 꼭 4시 반 공연을 했다. 나부터도 소극장 공연을 보고 연극을 결심했으니 말이다. 번역극을 봤을 때는 그냥 ‘멋있다’는 생각이 들 뿐인데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연극으로 했을 때는 그 감동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무대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듯하지만 내 안에서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차츰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관객층은 점차 확대되기도 하고 다른 소비시장에 흡수되기도 했다. 어쨌든 공연시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이었으며 공연도 상품으로 발전되어 가던 때였다. 관객들의 눈높이도 점차 높아졌고 이런 과정을 통해 뮤지컬 등 대형 공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게 된 것 같다.

▲ 어연선 팀장

Q. 돈화문국악당의 창립배경과 추진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ㄴ 원래 주유소가 있던 자리인데 서울시 도시재생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매입해서 국악당을 만들었고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창덕궁 일대인 돈화문로에서 종로 3가까지는 국악의 근현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국립국악원의 전신이었던 이왕직아악부도 있었고, 운당여관이나 오진암 같은 곳에서도 국악 공연이 성행했다. 그래서 이 일대에 국악인들이 많이 살았고 아직도 살고 계시다. 그런 자취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사실 국악당 건립 이전부터 이곳을 국악의 거리라고 부르며 국악 활성화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서울시가 만들고 세종문화회관에 3년간 운영을 맡겼다.

 

 

Q. 돈화문국악당의 주요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ㄴ 극장의 입장에서는 예술가들이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고, 관객 입장에서는 국악 공연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공연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우리의 방향이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공모사업을 진행해왔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장르의 구분을 두지 않고 관객 대상에 따른 작품 공모인 ‘프리&프리’가 있고, 산조, 판소리 등 국악 장르를 선정하여 공동기획 하는 ‘수어지교’가 있다. 또한 명인들 중심인 ‘국악의 맛’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현재 국악계를 이끄는 대세 연주자들을 집중 조명하는 ‘미래의 명곡’도 작년에 이어 대표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악공연이 많은 것 같아도 실제 그렇지 않다. 대부분 행사성 공연들이기 때문에 국악에서 단독공연을 기획한다는 것이 예술가들이나 우리에게도 실험이었다. 일단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극장이었으면 좋겠고 자주 찾아와서 공연에 대해 상의하고 기획하는 극장이었으면 한다. 그러면서 돈화문국악당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 집중하고 싶다.

 

 

Q. 이번에 첫 제작공연을 하는데...
ㄴ적로라는 제목의 음악극으로 11월3일부터 11월24일까지 진행한다. ‘로’는 이슬을 의미하고 ‘적’이라는 음에는 여러 뜻이 있다. 이슬방울이라는 의미의 방울 적, 대금을 뜻하는 피리 적, 그리고 붉을 적이다. 박종기 김계선의 두 대금명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며 돈화문국악당의 김정승예술감독과 배삼식작가의 대본에 최우정 작곡, 정영두 연출이 제작을 이끌었다. 배삼식 작가는 희곡작가지만 음악과 극을 잘 섞을 수 있는 대본을 써주셨고 음악이나 대사가 분리되지 않고 모든 장면이 시처럼 꾸며져 있다.

▲ 어연선 팀장

Q. 창작진을 꾸리는 것에 고심을 많이 했을 것 같다.
ㄴ작품을 제작하기 전엔 극장에서 제작을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전통 국악을 쉽게 이해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있었다. ‘적로’는 연극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국악적인 요구를 모두 반영하기 어려운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정승예술감독은 ‘돈화문국악당의 이름을 건 대표작품으로 만든다’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추진되지 않았을까 싶다. 예술감독님을 포함한 창작진 네 분이 정말 많은 만남을 가졌다.

네 분 다 점잖으신 분들인데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치열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가 다시 정리해서 발전된 얘기들을 또 다시 논의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어떤 관객은 그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 작품에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연출과 이야기를 한 것 중에 분명했던 것이 ‘공을 들이자’였다. 그만큼 관객들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한계도 분명히 있지만, 공을 들인다면 관객들이 분명히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Q. <적로>의 작품특징은 무엇인지
ㄴ 대금, 아쟁, 장구, 클라리넷, 신디사이저를 쓴다. 이 악기 구성을 보고 누군가는 퓨전이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그냥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국악이냐 아니냐의 정체성을 따지기보단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음악이라는 영역이고 국악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출연하는 배우들도 두 명은 판소리전공이고 한 명은 정가를 공부한 사람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악기편성과 세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조화를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Q. 돈화문국악당의 관객개발과 정체성 확립에 대해 고민 하는 것이 있다면?
ㄴ 국악의 관객개발에 대해선 정말 갈 길이 멀다. 실험적인 공연에는 관객이 없고 무료공연이나 명인들 공연에만 관객이 많다. 지난여름에는 ‘낮잠 콘서트’를 했다. 창덕궁 앞에 있다 보니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좀 있다. 낮 2시에 한 공연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런 공연들을 기획하면서 차근차근 가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돈화문국악당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도 국악의 저변확대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나 기대를 해본다. 우리 공연장은 140석 정도의 작은 극장이다. 관객들과 배우들이 가까이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색다른 감흥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밌는 공연을 기획하면 자연스레 관객개발도 되고 우리 돈화문국악당의 정체성도 확립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공연기획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ㄴ요새는 예술경영학과가 많이 생겼지만 내가 입문할 때만해도 기획이라는 업무가 특별히 분리되어있지도 않았다. 일단 공연일이 본인이 좋아서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다음엔 ‘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번해보고 아니다 싶다고 금방 그만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업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민간에서 오래일했고 지금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의 일은 기획보다 행정일이 더 많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기관에만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공공기관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할 확률이 많다. 오히려 민간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연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같다. 기획자로서의 직장인이 될 것이냐 아니면 직장인으로서 기획자가 되고 싶은 건지 스스로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 플스 87회 방송을 마치고.

 

 

[글]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김효상. 플레이티켓 대표·공연전문프로그램 마포FM 김효상의 '플레이투스테이지' 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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