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pjg5134@mhns.co.kr

▶공연메모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극단 하땅세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작 윤조병 예술감독 윤시중 연출의 위대한 놀이
- 공연명 위대한 놀이
- 공연단체 극단 하땅세
-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Agota Kristof)
- 예술감독 윤조병
- 연출 윤시중
- 공연기간 2017년 9월 28일~10월 1일
-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관람일시 10월 1일 오후 3시

[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극단 하땅세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Agota Kristof) 작, 윤조병 예술감독, 윤시중 연출의 <위대한 놀이>를 관람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Agota Kristof)는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8세 되던 해 자신의 역사 선생과 결혼했다. 1956년 반체제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갓난아기를 안고 조국을 탈출했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정착해 시계공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헝가리어로 시를 썼고, 망명 문인들의 동인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27세에 대학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웠고 7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했다. 지은 책으로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등이 있다.

윤시중(1969~)은 서울예대 연극과, 방송통신대학 영문과, 뉴욕시립대학원(MFA) 출신의 연극연출가, 무대미술가다. 서울예술단, 인천시립예술단 소속이었고, 현재 용인대학교 뮤지컬연극학과 교수, 극단 하땅세 대표다.

연출작품으로는 <타이투스 앤드로니커스>, <붓바람>, <싱크로나이즈>, <하땅세>, <리회장 시해사건>, <갈매기>, <3cm>, <마라사드>,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 왕자>, <찬란한 오후>, <포트>, <백무동에서> 외의 다수작품을 연출했다.

제48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밀양연극제 대상, 연출상, 연기상, 아시테지 최우수작품상, 특수부문상, 김천전국연극제 대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연극 <위대한 놀이>는 충격적이다. 충격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가다 크리스토프의 모국인 헝가리의 소도시에 실재했던 이야기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작가가 이 실재세계를 ‘상상세계’로 돌려버린다는 것에 있다. 가차 없이 비정하게, 그러나 가장 순수하고 절대적인 슬픔과 사랑의 힘으로.

필자가 읽은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의 원작의 제목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한 권의 책이다. 작가가 오 년여에 걸쳐 쓴 세 편의 제목은 각각 <두꺼운 사전>(1986), <증거>(1988), <50년간의 고독>(1991)이다.

<위대한 놀이>로 제목을 바꾼 연극에서는 ‘두꺼운 사전’이 등장하고, 9살 난 쌍둥이 형제를 엄마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대도시로 돌아간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남편을 독살한 ‘마녀’로 불리고, 비정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문맹이고,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고 아무데서나 오줌을 누는 더러운 노파이다. 그녀는 쌍둥이들과의 첫 대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덮을 것들이라고! 흰 셔츠에 에나멜 구두라! 내, 너희들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내가!”

쌍둥이를 ‘개자식들’이라고 부르고 부엌에서 모포도 없이 잠을 재우며, 대도시의 엄마가 보내는 의복을 챙겨주기는커녕 숨겨버리고, 옷조차 빨아주지 않는 괴팍한 노인 밑에서 쌍둥이는 삶의 비참과 잔인함을 겪게 된다. 할머니의 냉혹, 그리고 그와 다르지 않은 마을 사람들과 세상의 ‘동정 없음’과 폭력에 맞서기 위해 이들은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서로 뺨을 갈기고, 혁대로 때리고, 칼로 몸에 상처를 낸다. “하나도 안 아프다”라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또 ‘바보, 얼간이, 부랑배……’ 등 온갖 욕설을 서로에게 퍼부으며 정신을 단련시킨다. 이들은 욕설과 비난보다 더 무서운, 이들을 허물어트릴 수 있는 애정 어린 말들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같은 엄마의 말들을 무수히 퍼붓고, 무감각해지고, 이 말들을 버린다. 단식연습, 구걸 연습,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 잔혹연습 등을 통해 이들은 ‘있을 수 있는’ 결핍과 수치, 고통에 단련된다. 쌍둥이들의 작문연습을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서로의 작문을 읽고 고쳐주며 ‘잘 했음과 잘못했음’이라고 평가한다. 잘 했음과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진실인가. 쌍둥이 이웃집에는 미친 아주머니와 언청이 딸이 산다.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버림받아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그의 딸 언청이는 개와 수간을 하고, 마을 남자들의 성노리개가 되기도 한다. 굶주린 이들 모녀를 위해 ‘우리’는 할머니의 식료품을 빼돌리고, 언청이를 성희롱한 신부를 협박하기도 한다. 쌍둥이가 이들을 돕는 것은 동정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서이다.

쌍둥이는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타인의 요구에 응답한다. 심지어 언청이가 군인들의 윤간 끝에 죽고 그녀의 엄마도 죽음을 갈구하자 이를 들어준다. 면도칼로 목을 긋고 집에 불을 지른다.

이외에도 쌍둥이는 마조히즘(masochism) 성향이 있는 동성애자 외국인 장교(독일군으로 추정)의 요구대로 채찍질을 해주고,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태인들을 희롱한 ‘하녀’를 아궁이 속 폭탄으로 처벌하고, 뇌출혈을 앓는 할머니를 그녀의 소원대로 독살한다.

쌍둥이의 행동은 대체로 세속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지극한 선행으로 또는 지극한 악행처럼 보이는 어떤 경계 선상에 있는 것들이다. 마치 인색하고 비정한 할머니가 유태인 행렬 앞에서는 일부러 ‘사과’를 흘려 나누어 먹도록 하는 모습이나, 쌍둥이의 더러운 옷을 빨아주고 도와주던 하녀가 구걸하는 유태인을 희롱하는 모습처럼.

쌍둥이가 새로운 출발로 나가려 하는 데에는 엄마와 할머니의 죽음이 놓여있다. 전쟁 끝 무렵 쌍둥이의 엄마는 이들을 데리러 온다. 그러나 갑자기 마당에 쏟아진 폭격을 맞고 즉사하고 만다. 엄마도 죽고, 할머니도 떠나보낸 쌍둥이는 할머니 집에서 일상을 이어나간다.

종전과 함께 소련군이 점령한 헝가리는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고, 어느 날 그들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할머니 생전에 그들을 찾아왔지만, 엄마의 외도와 죽음을 확인하고 떠나버렸던 그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체제가 바뀌고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후 환멸을 느끼고 국경을 넘으려 한다.

국경지대에 다다른 쌍둥이 형제에게 월경을 부탁하자, 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철조망을 넘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뢰를 밟아 폭사하고, 아버지의 시체를 밟고 형 클라우스(Klaus)는 철조망을 넘어 저쪽 나라로 가고, 동생 루카스(Lucas)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의 죽음을 의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클라우스의 월경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가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아버지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증명들을 불살라버리는 치밀함, 그리고 아버지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는 아들의 잔혹함은 이제까지 이끌어왔던 이야기를 갈가리 찢어발기는 듯 한 폭파력을 보여준다.

또한 언제나 ‘우리’였던 쌍둥이가 ‘각자’가 된다는 설정 또한 놀랍다. 단 한 번도 잔혹과 비정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증폭시켜왔던 이 잔혹 동화 같은 연극은 대단원에 폭발물을 터뜨려 마무리를 짓는다.

무대는 특별한 장치 없이 색색의 스카치테이프로 바닥에 직선을 긋고 그 선을 붙이거나 뜯어 떼면서 장면설정과 동 선에 맞춘다. 극 속에 등장하는 닭이나 개를 출연자들이 연기로 묘사하고, 음향효과로 처리하기도 한다.

지뢰 폭발장면에서는 색색의 스카치테이프를 출연자들이 분산시켜 뜯어냄으로써 상징적으로 연출되고, 할머니의 누더기 의상에서부터 군인 정장, 쌍둥이의 똑같은 의상과 모자, 이웃 하녀의 붉은 색 머플러가 적절한 어울림으로 설정된다.

연극은 도입에서 마무리까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두 명의 악사의 연주에서 극적 분위기가 창출되고, 이와 동시에 출연자들의 호연과 열연은 물론 기계체조선수나 무용가와 다름없는 배우들의 유려한 동작에서 관객은 시선을 집중시키고 대단원에서 갈채를 퍼붓는다.

문숙경과 이수현, 이 두 쌍둥이로 분한 여배우가 뛰어난 연기력과 유려한 동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연극을 이끌어 간다. 남미정이 할머니로 출연해 명연을 펼치며 탁월한 기량으로 연극의 중추역할을 한다. 김지성이 언청이와 하녀 그리고 엄마 역으로 제대로 된 성격설정은 물론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서상권과 김경호가 아코디언 악사로 출연해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유독현이 장교, 김형기가 형사, 김지혜가 언청이와 하녀 그리고 엄마, 이주광이 당번병으로 출연해 출연자 전원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터그 김옥란, 작곡 음악감독 서상권, 조명디자인 조인곤, 음향디자인 정혜수, 무대디자인 윤시중, 의상디자인 김상희, 사진 이은경, 음향오퍼 안소정, 조명오퍼 신민규, 기획 문숙경 김지혜, 홍보디자인 정경은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극단 하땅세의 아고타 크리스토프 (Agota Kristof)작, 윤조병 예술감독, 윤시중 연출의 <위대한 놀이>를 연출가와 연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룬 한편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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