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어디쯤 가고 있는가', 영비법개정안에 따른 영화계 대토론회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논의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 영화 산업이 점점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지만, 그 이면에는 CJ나 롯데를 비롯한 소수의 대기업이 제작·투자·배급·상영 등을 독점해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줄곧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 문제를 막고자 하나의 대기업이 영화 상영과 배급을 겸업할 수 없도록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말에 개봉했던 영화 '군함도'가 개봉 당일에 2,000여 개에 달하는 스크린 수를 가져갔다는 소식과 함께 그동안 곪았던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어 8월 초에 등장한 '택시운전사' 또한 극장 독과점으로 지적받으며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에 따른 영화계 대토론회가 있었다. 이날 배우 정진영이 토론회 사회를 맡았고, 1, 2부로 나뉘어서 무려 5시간가량 이어지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라인업 또한 그 면면이 화려했다.

1부에서는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 정상진 엣나인 대표,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최재원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대표,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가, 2부에서는 김무성 롯데엔터테인먼트 팀장, 이승호 KTB 상무, 정윤철 영화감독, 김광현 영화사 하늘 대표, 배우 김의성, 그리고 안병호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토론회 시작에 앞서,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김신성 한국영화기자협회 회장의 인사말과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국회의원의 축사도 이어졌다.

'대기업이 극장을 포기한다면?'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1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불꽃 튀는 설전이 오갔다. 특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이는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1부 주제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는 '만약 CJ CGV나 롯데시네마가 상영 사업을 포기한다면 영화 산업의 기반이 크게 흔들릴 것이냐'는 질문에 "동의한다. 제작과 배급, 상영 라인에서 대기업이 포기한다고 해서 스크린 쏠림이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견해를 밝혔다. 

▲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이 발언하고 있다. ⓒ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또한 "배급업을 포기한다면, 대기업 입장에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이 줄어들어 전반적인 제작비 감소로 이어질 것이며 이것이 영화산업 전반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다. 영비법 개정안들이 도입된다면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한국 영화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상진 대표도 "대기업들이 극장 사업을 포기한다고 해서 스크린 독과점이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영화관 상영 시간표를 지켜보면 위탁 운영을 하는 영화관들의 상영시간표가 독과점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영화관 운영하는 데 드는 자본 때문에 영화관 운영주들이 눈앞의 수익에 고민이 많아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영비법 개정안에 대해 정 대표는 "현재 영비법 내 영화관 설립 기준은 모두 멀티플렉스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에 대한 법률뿐이다. 현재 추진 중인 멀티플렉스 내 독립·예술영화관 의무화가 아닌, 공공기관과 개인들이 독립·예술영화관을 설립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대학로 소극장에서 규모가 작은 연극들이 시연되듯이, 독립 ·예술영화를 뒷골목 상권 내 극장이나 카페 등에서 상영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고영재 대표는 "현재의 영비법 개정안은 한편으로 상당히 광범위한 개정안이고, 다른 한편으로 현재 영비법이 갖는 한계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우선순위에 대한 논의 자체가 막히고 있는 한계도 있다"고 자기 생각을 전했다.

▲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최재원 대표 또한 영비법 개정안에 대해 "대기업의 겸업 금지나 소유 제한 등으로 단순히 소유구조에 국한시켜선 안 된다. 개별 영화의 스크린 한도를 정한다든지 하는 상영 쿼터제가 더 유효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대기업이 배급을 포기한다면?'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2부 또한 열띤 토론 분위기가 이어져갔다. 김무성 롯데엔터테인먼트 팀장은 "국내 영화 및 영상 관련 산업분야 전반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한국 영화산업 문제점의 원인을 기업의 소유나 수직계열화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시장의 소비자 변화나 경쟁상황 등 다른 원인에서 찾아야 하는지 먼저 검증부터 해야 한다"며 신중하게 입장표명을 했다.

▲ ⓒ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이승호 상무는 "투자·배급사업은 자체 자금력과 양질의 인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만약 CJ와 롯데가 배급을 포기하게 되면, 이를 대체할 세력도 결국 다른 대기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정윤철 감독은 "스크린 독과점으로 다른 영화가 교차 상영으로 밀려나는 사례가 10년 이상 되었다. 요즘 극장에서 1주차에 빛을 못 보면 바로 내동댕이치는 현상이 심해졌다"며 최근 심화된 박스오피스의 과열구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근 개봉했던 '대립군'을 예시로 들며 "개봉 5일 차에 '미이라'가 개봉하면서 교차 상영이 시작되었다. 5일 월요일에 7만 명을 기록했는데, 6일차인 화요일에 6만 명으로 줄었다. 그만큼 극장 수가 줄었다는 수치다. 1주차 관객 수에서 끝나버린 것이라 충격이었다. 창작자 입장에선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의 절박감을 느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 정윤철 영화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 문화뉴스 MHN 양미르

배우 대표로 참석한 김의성은 "CJ나 롯데가 배급에서 손을 뗀다고 해서 영화계 독점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하게 작품을 고른다고 느끼는 제작/투자자들이 병든 게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고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어 "만약 대기업이 투자에서 손을 뗀다면, 또다른 이들이 차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노하우는 조직원들이 가지고 있기에 이들이 다시 뭉쳐 다른 배급사를 만들고 자본을 투자받아 제작한다면 잠정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 여름에 있었던 '군함도' 사태에 대해 김의성은 "대형 제작영화들의 전략에 관객들이 피로감을 느끼던 찰나에 촉발된 것이다. 하지만 '군함도'는 필요 이상으로 비난받았다. 오히려 비슷하게 스크린 독과점을 했던 '택시운전사'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 배우 김의성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 문화뉴스 MHN 양미르

한편,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주최하고, 노웅래 국회의원실이 주관하며,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이번 토론회는 소수의 대기업이 제작·투자·배급·상영 등을 독점해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고착시키고자 있다는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영비법 개정안 적용의 찬·반의 문제를 떠나, 영화계에 미칠 영향과 파장을 진단하고, 후속 조치를 논의하자는 취지로 진행했다.

syrano@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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